2010~2019
주는 나의 빛
2015년 4월


주는 나의 빛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굳건하고 진실하게 자리 잡고 서서 구주를 따르는 능력은 의로운 가정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단합한 와드와 지부 안에서 놀랍게 강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절 기간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속을 되새기며 기쁨을 느낍니다.1

세상의 사악함 때문에 만연해진 전 세계의 소란은 감정에 상처를 입힙니다. 현대의 소통 방식으로 부당하고 불평등하며 정의롭지 못한 영향을 입은 많은 이들은 삶이 본래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큰 시련이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성스러운 중재를 치르신 일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주께서는 말 그대로 “사망을 이기고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분은 자비와 연민으로써 우리가 행한 죄악과 범법을 친히 짊어지셨고 그렇게 하여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회개하고 당신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2

그분의 위대한 속죄 희생은 필멸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서 모든 것을 초월할 만큼 중요합니다. 이 은혜로운 행위는 미처 헤아리지 못할 만큼 큰 화평을 안겨 줍니다.3

그렇다면 우리는 주변의 가혹한 현실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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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yellow flowers on a mound of dirt.

제 아내 메리는 늘 해바라기를 좋아했습니다. 길가의 예상치 못한 장소에 해바라기가 보일 때면 아내는 무척 기뻐합니다. 저희 조부모님이 사시던 마을에는 집으로 가는 길에 비포장도로가 있습니다. 그 길에 들어설 때면 아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도 그 경이로운 해바라기 밭을 보게 되는 건가요?” 농기계와 제설 장비로 짓밟히고 야생화가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물질이 쌓여 있는 땅에 해바라기가 만발해 있는 광경은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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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flowers by some water

쾌적하지 못한 땅에서 자란다는 것 외에도 어린 야생 해바라기는 또 한 가지 놀라운 특징을 보입니다. 그것은 이 어린 꽃봉오리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태양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그렇게 해서 영광스러운 노랑으로 피어날 때까지 생명을 유지할 힘을 얻습니다.

어린 해바라기처럼 우리도 세상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따를 때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잘 성장하여 영광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 빛이요 생명이십니다.

구주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범법을 저지르고 부당한 일을 하는 자들을 당신 왕국에서 거두어 내시겠다고 제자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4 그러나 충실한 이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5라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소동이 한창인 이 적대적인 세상에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한 명 한 명은 구주의 사랑에 뿌리 박고 겸손히 그분의 가르침을 따를 때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삶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굳건하고 진실하게 자리 잡고 서서 구주를 따르는 능력은 의로운 가정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단합한 와드와 지부 안에서 놀랍게 강화될 수 있습니다.6

우리 집의 현재 시각은

하나님 계획에서 가족의 역할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에서 올바른 원리를 배우도록 우리를 도우며 영생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7입니다. 가정에서 아름다운 전통으로 내려오는 종교 활동이 자녀의 가슴 속에 단단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제 삼촌인 본 로버츠 킴볼은 훌륭한 학생이자 전도유망한 작가였고 브리검 영 대학교 미식 축구팀의 쿼터백이었습니다. 진주만 공격이 일어나고 그다음 날이었던 1941년 12월 8일, 삼촌은 미 해군에 입대하셨습니다. 뉴욕 주 알바니에서 입대할 청년들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삼촌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짧은 글을 기고하셨습니다. 잡지사는 원고료로 200 달러를 지불하고 1944년 5월 호에 “우리 집의 현재 시각은”이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실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실린, 삼촌 본인이 수병으로 등장하는 그 글의 일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 집의 현재 시각은

뉴욕 주 알바니에서 보낸 어느 저녁, 나는 한 수병에게 시간을 물었다. 수병은 큰 시계를 꺼내더니 ‘7 시 20분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이른 시각일 리 없었기에 다시 물었다. ‘시계가 멈췄군요, 그렇죠?’

그는 말했다. ‘아닙니다. 산악 표준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유타 남부 출신입니다. 제가 입대할 때 아버지께서 이 시계를 주시며 이게 집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바늘이 새벽 5시를 가리키면, 아버지가 우유를 짜러 나가실 무렵이란 걸 생각하게 됩니다. 저녁 7시 30분이면, 온 가족이 잘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고, 아버지는 음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를 지켜 주십사 간청하실 것입니다. ... 저는 제게 가장 편안한 장소의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유타의 현재 시각입니다.’”8

이 글을 투고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삼촌은 태평양에서 군함에 오르셨습니다. 1945년 5월 11일, 삼촌은 오키나와 인근에서 USS 벙커 힐(USS Bunker Hill) 호를 타고 임무 수행 중이었는데, 자폭 특공기 두 대가 날아와 군함을 폭파했습니다.9400여 사망자 중에는 본 삼촌도 계셨습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장로님은 본 삼촌의 아버지께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며, 본 삼촌의 합당함과 “내 안에서 죽는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니, 이는 죽음이 그들에게 달 것임이니라.”10는 주님이 주신 확실한 약속을 얘기하셨습니다. 본 삼촌의 아버지는, 본 삼촌은 수장되었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하늘 집으로 삼촌을 데려갈 것이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11

28년이 지나고,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도 연차 대회에서 제 삼촌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일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가족을 잘 알았습니다. … 저는 [이들]과 수 차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 가정에서의 훈련은 이 대가족에 영원한 축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킴볼 회장님은 모든 가족에게 “무릎을 꿇고 … 아들과 딸들을 위해 하루에 두 번씩 기도”12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가정에서 가족 기도, 경전 공부, 가정의 밤, 신권 축복 및 안식일 준수를 충실히 한다면, 우리 자녀들은 지금이 가정에서 무엇을 할 시간인지를 알 것입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든지 우리 자녀들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가정을 위해 준비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자신이 가정에서 사랑받고 있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협력자입니다.13 부부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보완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내가 자녀를 낳는 것은 온 가족의 축복입니다. 남편이 신권을 받는 것도 온 가족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은 가족 평의회에서 동등한 협력자로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어떻게 자녀를 가르치고 훈육할지, 어디에 얼마나 돈을 지출하고 어디에서 생활할지를 비롯해 가정의 여러 사안을 결정합니다. 이는 주님의 인도를 구한 뒤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목표는 영원한 가족입니다.

주님의 빛은 주님의 모든 자녀가 가족의 영원한 본질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우리 교회 회원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작가 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하지만] … 가족은 진실하고 견고하며 영원한 것이다. 돌보고 보살피며 충실해야 할 대상이다.”14

교회는 우리가 가족으로 단합하여 구주에 초점을 맞추도록 돕습니다

가족과 더불어 교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칠 수 있도록 조직과 방법을 제공[합니다.] 교회는 구원과 승영을 받기에 합당하고 기꺼이 그렇게 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승영의 의식을 집행할 수 있는 신권 권세를 제공[합니다.]”15

세상에는 갈등과 부정이 만연하며 문화의 이질성과 불평등도 크게 두드러집니다. 교회에서는 언어별 단위 조직을 제외하고는 지리적인 기준으로 와드와 지부를 구분합니다. 계층이나 계급으로 구분 짓지 않습니다.16 우리는 모든 인종과 문화가 의로운 회중으로 한데 섞여 있음을 기쁘게 여깁니다. 와드라는 가족은 발전하고 행복해지며 그리스도와 더욱 닮아가기 위한 개인의 노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흔히 문화는 사람을 구분 짓고 폭력과 차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17 몰몬경에서는 폭력과 전쟁, 악행과 부정, 백성과 나라의 파멸로까지 이어진 사악한 조상의 전통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말들로 묘사했습니다.18

경전에서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교회 문화를 설명하는 그 시작점으로, 제4니파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2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니파이인이나 레이맨인이나를 막론하고 온 땅의 백성이 모두 주께로 돌이켰고, 저들 중에 다툼이나 논쟁이 없었으며, 사람마다 서로 대하기를 바르게 하였더라.” 16절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시기함이나, 싸움이나, 소동이나, 음행이나, 거짓말하는 일이나, 살인이나, 여하한 종류의 음란함도 없었으니, 정녕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모든 백성 중에서 이들보다 더 행복한 백성이 있을 수 없었더라.”19 우리가 염원하는 문화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문화의 심오한 가치와 믿음은 우리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희생, 감사, 신앙, 의로움의 전통은 소중히 여기고 보존할 것들입니다. 가족은 신앙을 키우는 전통을 누리고 지켜내야 합니다.20

어떤 문화든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언어입니다. 제가 살았던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는 일곱 개의 언어별 단위 조직이 있었습니다. 언어를 존중한다는 우리의 교리는 교리와 성약 90편 11절에 잘 나타납니다. “무릇 그 날에 이렇게 되리니, 모든 사람은 … 자기 자신의 방언과 자기 자신의 언어로 복음의 충만함을 듣게 되리라.”

하나님의 자녀가 모국어로 기도할 때에 이 언어는 그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언어입니다. 이런 마음의 언어가 모든 사람에게 소중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제 형 조셉은 수년간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의사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연로한 사모아인 교회 회원이 형에게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 형제님은 심각한 통증으로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형제님은 신장 결석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충실한 회원은 자신이 찾아온 원래 목적이 어디가 아픈 건지 알아서 건강 문제를 하나님 아버지께 사모아어로 기도드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복음 원리에 따라 기도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회원들이 자기 마음의 언어로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21

언어가 다르고, 유익하고 아름다운 문화적 전통도 다 다르지만, 우리는 단합과 사랑으로 마음이 엮여야 합니다.22 주님은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형제를 자신과 같이 여[기고] … 하나가 되라. 만일 너희가 하나가 되지 아니하면, 너희는 나의 것이 아니니라.”23 우리는 적절한 문화적 다양성을 귀히 여기되,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문화와 관습과 전통 안에서 단합하고자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지금 더없이 굳건합니다

신앙과 간증을 강화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문이나 걱정거리가 생긴 회원들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로 그런 염려를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염려하는 문제가 있는 분들은 독립된 신앙과 간증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끈기 있고 겸손하게 공부하고 상고하고 기도하며, 복음 원리를 따르고 적합한 지도자와 의논하는 것이 의문과 걱정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과거보다 지금이 더 교회를 떠나는 회원들이 많아졌고, 의심과 불신도 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지금 더없이 굳건합니다. 교회 기록상 이름을 삭제하는 회원은 항상 극소수였으며 최근에 그 수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기도 했습니다.24 현재 성전 추천서를 소지한 엔다우먼트를 받은 회원, 온전한 십일조를 내는 성인 회원, 선교 사업 중인 회원 등 수치화할 수 있는 영역의 숫자는 놀랍도록 증가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지금 더없이 굳건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큼을 기억하[십시오.]”25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당면한 혹독한 현실이 어둡고 힘겹고 견디기 어려워 보인다면, 영혼을 괴롭히는 겟세마네의 어둠과 헤아릴 수 없는 갈보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구주께서 속죄를 치르셨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 이생에서 주어지는 가장 가혹한 짐이 우리에게서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구주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그 일을 겪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당신 아버지를 사랑하시며 아버지께 순종하시기에 그분은 그 일을 겪으셨습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구조될 것입니다. 아무리 깊은 바닷속에 묻히더라도 말입니다.

이생과 영원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개인 및 가족의 의로움, 교회의 의식, 그리고 구주를 따름을 통해 보호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폭풍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는 피난처입니다. 혼자라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속죄가 여러분의 이해력을 능가하는 보호와 축복을 주리라는 지식으로 결연하게 의로움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구주를 기억하고 성약을 지키며, 어린 해바라기가 햇빛을 따라가듯 하나님의 아들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의 빛과 모범을 따르면 기쁨과 행복, 화평이 옵니다. 시편 27편과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26라고 찬양하듯 말입니다.

이 부활절 주말을 맞아, 저는 구주의 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엄숙히 전합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저는 그분의 음성을 압니다. 그분이 신성하시고 속죄가 참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아멘.

  1. 니파이후서 9:20~22 참조.

  2. 모사이야서 15:8~9 참조.

  3. 빌립보서 4:7 참조.

  4. 마태복음 13:41 참조.

  5. 마태복음 13:43.

  6. 교리와 성약 115:5~6 참조.

  7. 지침서 제2권: 교회 관리 (2010), 1.1.4.

  8. Vaughn R. Kimball, “The Right Time at Home,” Reader’s Digest, May 1944, 43.

  9. 미 해군 USS 벙커 힐 호의 대령 지 에이 사이츠가 본 킴볼의 부친 크로지어 킴볼에게 보낸 편지, 1945년 5월 25일 자, 유타 주 드레이퍼 참조.

  10. 스펜서 더블유 킴볼이 크로지어 킴볼에게 보낸 편지, 1945년 6월 2일자; 그리고 교리와 성약 42:46 참조.

  11. Crozier Kimball, Marva Jeanne Kimball Pedersen, Vaughn Roberts Kimball: A Memorial (1995), 53 참조.

  12. Spencer W. Kimball, “The Family Influence,” Ensign, July 1973, 17. 당시 스펜서 더블유 킴볼은 십이 사도 정원회의 회장이었다.

  13.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129쪽 참조.

  14. Carla Carlisle, “Pray, Love, Remember,” Country Life, Sept. 29, 2010, 120.

  15. 지침서 제2권, 1.1.5.

  16. 제4니파이 1:26 참조.

  17. 문화는 오늘날 세계에서 많이 논의되는 말이다. Merriam-Webster.com은 2014년 올해의 단어로 문화(culture)를 선정하기도 했다.

  18. 앨마서 9장; 힐라맨서 5장 참조.

  19. 제4니파이 1:15.

  20. 독일 철학자 괴테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조상의 유산을 물려받아 정말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요한 볼프강 본 괴테, 파우스트 중에서)

  21. 교회가 50가지 언어로 복음을 가르치고 110가지 언어로 몰몬경을 번역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는 각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문제이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라나는 세대가 현재 그들이 사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도록 돕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자녀들이 모국어를 마음의 언어로 삼게끔 도와야 한다.

  22. 모사이야서 18:21 참조.

  23. 교리와 성약 38:25, 27.

  24. 지난 25년간, 교회를 떠난 회원의 실제 숫자는 줄고 교회는 거의 두 배로 규모가 커졌다. 교회를 떠난 사람의 비율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25. 교리와 성약 18:10.

  26. 시편 27:1; 또한 “주는 나의 빛”, 찬송가, 48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