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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췌럴 시 렌트 자매
본부 초등회 회장
청년 성인을 위한 CES 노변의 모임 • 2007년 9월 9일 • 브리검 영 대학교

췌럴 시 렌트 자매저는 오늘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하나를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대도시에 살았던 젊은이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모로 볼 때 그 도시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 유사했습니다. 몹시 붐비고, 시끄러웠으며, 일하고 즐기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애쓰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도시는 유혹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젊은이의 관심을 끌려는 목소리도 많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물질, 권력, 명예, 쾌락을 위해 이기적인 욕망에 빠지게 하려는 목소리, 여기서 조금 부정을 저지르고 저기서 조금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목소리, 모두가 다 그렇게 하니까 거기에 동참하라고 조롱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대부분의 우리 가족들과 아주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 가족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여 자녀들에게 올바른 원리를 가르치고 자녀들이 주님을 따르기를 바라는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이런 일을 하면서 이따금 실수를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젊은이의 부친은 신권 지도자였으며 가족과 교회에 대한 책임을 부지런히 수행하였습니다. 가족의 자녀 중 몇몇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했습니다. 다른 자녀들은 우리 가족 구성원의 일부처럼 자신들의 생각과 뜻대로 살고 싶어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오늘밤 이곳에 모인 젊은 여러분과 같습니다. 그는 똑똑하고 진지했으며, 공경할 줄 알고, 부지런하며, 순종적이었습니다. 그는 부모와 가족,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처럼 그는 부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공경했으며,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러했습니다. 부친의 말씀은 그를 친구들과 주변 세상으로부터 구분 지었습니다. 그는 부친의 가르침이 참된 것인지 스스로 알고 싶었고, 또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다.

경전에는 그가 어떻게 했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자 심히 원하였던지라, 이러므로 내가 주께 부르짖었더니, 보라, 그가 나를 찾아오사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으므로 나는 나의 부친이 하신 말씀을 모두 믿었느니라.” (니파이전서 2:16)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내려야 했을 때 이 젊은이는 겸손하게 기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향했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니파이입니다.

니파이에게도 삶에서 선택해야 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선택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의 시대와 크게 다르다고 해도, 그를 유혹하던 영향력은 우리를 유혹하는 영향력과 아주 흡사합니다. 니파이는 세상의 것과 주님의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선택에 직면합니다. 니파이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주님의 뜻과 일치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진리와 의의 유일한 근원이 되시는 분께 다가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주시는 응답에 귀 기울이며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기도라는 이 단순한 행위는 니파이에게 기회와 축복이 가득한 위대한 삶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니파이는 니파이전서 19장 23절에서 우리가 “모든 경전을 우리에게 비유하여 그것이 우리의 유익과 배움이 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밤 우리는 니파이가 가르친 복음의 위대한 원리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이해를 돕기 위해 경전과 선지자의 말씀을 찾아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우리 자신의 삶에 “비유”해볼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러분의 삶에서 기도에 대해 생각해보고 제가 던질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 질문은 이렇습니다. 나의 삶에서 무엇에 대해 기도해야 할까? 언제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기도할 때 나는 열정과 신앙으로 기도하는가?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가? 주님께서 응답해주시리라고 정말로 믿는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어떻게 오는지를 알고 있는가?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 주님의 응답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가? 나는 진심으로 기도하며 그에 대해 내가 받는 응답에 따라 생활하는가? 나는 기도의 응답에 따라 행동하며 나아가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전에 먼저 기도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기도는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님은 우리에게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모든 영혼에게 주시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8쪽) 우리가 누구이든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이 필요하든지, 무엇을 했든지 간에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하늘에 계시고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 향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귀 기울이십니다.

기도는 많은 일들을 합니다. 기도는 감사를 표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기도는 위안과 평안을 가져오며, 간증을 얻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근심과 소망을 말할 때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명확하게 하도록 도와줍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계시를 불러 오며,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회개가 시작되고, 우리가 용서 받았는지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방향을 찾고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영과 신체에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모든 해악의 근원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간구할 때 모든 영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로 구할 때 우리는 삶의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게 됩니다. 저는 기도에 치유의 권능, 즉 우리의 몸과 영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여러분이나 저와 같은 개인뿐만 아니라 신회 전체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신회를 구성하는 세 분은 다음과 같이 우리의 기도에 관여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성신을 통해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신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느낍니다.

기도에 관한 이 원리들이 참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원리들은 경전과 선지자들의 말씀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살아 오면서 기도의 많은 축복을 경험했기에 기도의 권능에 대해 개인적인 간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저는 여러분이 기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하늘의 권능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를 활용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앞서 했던 질문들을 다시 살펴봅시다.

무엇에 대해 기도해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은 나의 삶에서 무엇에 대해 기도해야 할까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 다른 일 때문에 걱정하고 있습니까? 과중한 부담이나 혼란을 느끼십니까? 분명히 도전과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몰몬경에서 앰율레크는 우리가 기도해야 할 몇 가지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앨마서 34장 17~2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들을 놓치지 말고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로 회개에 이르는 너희의 신앙을 행사하기 시작하게 하시고, 너희로 그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게 하사,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참으로 그에게 부르짖어 자비를 구하라. 이는 그가 구원하시기에 능하심이라.

“참으로 스스로 겸손하고, 쉬지 말고 그에게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의 들에 있을 때, 참으로 너희의 모든 양 떼를 위해 그에게 부르짖으라.

“너희의 집에서, 참으로 너희의 모든 권속을 위해,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그에게 부르짖으라.

“참으로 너희 원수들의 권력을 막아 주시도록 그에게 부르짖으라.

“참으로 모든 의의 원수인 악마를 막아 주시도록 그에게 부르짖으라.

“너희 밭의 작물을 위해 그에게 부르짖어, 그것들로 너희가 형통하게 하라.

“너희 들판의 양 떼를 위해 부르짖어, 그것들로 증식하게 하라.

“그러나 이것이 모두가 아니니, 너희는 너희의 골방과 너희의 은밀한 장소에서 또 너희의 광야에서 너희의 영혼을 쏟아 내어야만 하느니라.

우리가 무엇에 대해 기도할 수 있다고 이 구절에는 나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앨마는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자비를 간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속죄가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간구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재산이 형통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탄과 유혹으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앨마가 골방과 은밀한 장소, 광야에서 기도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가 기도할 수 있는 장소, 또는 적어도 장소에 한정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또한 앨마에게 자신만의 비밀과 염려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모든 역경과 약점에 대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을 우리의 삶에 비유해 본다면, 기도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학교 과제, 취업 준비, 영원히 맺어질 합당한 동반자를 찾고 만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새 가족과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건강과 자신의 개인적인 합당성에 관한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개인적인 간증, 주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는 소망, 회개할 필요성, 유혹에 대항해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우리의 기도에 포함될 수 있을까요? 모든 일에서 성신이 여러분을 인도해주기를 기도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기도는 단지 원하는 것들을 위해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주의 깊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그분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저 혼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방법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가?

이는 두 번째 질문인 언제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가로 이어집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배운 대로 아침과 밤에 하는 개인 기도처럼 규칙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가족 기도를 하고 모임에서도 기도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해야 한다고 배운 첫 번째 기도입니다. 유의하지 않는다면 이 기도들은 기계적으로 되뇌는 일상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재빨리 기도하고 문 밖으로 달려 나온 뒤 두 번 다시 그 기도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는 때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저녁에 기도하다가 잠들거나 혹은 너무 피곤해서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이 애쓰셨는지,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의지하는지에 대해 고려해 본다면 우리는 잠시 멈추어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잠시 명상하는 것은 성신이 우리에게 말하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가족 기도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단합되고 시련의 시기에는 더욱 더 강화될 것입니다. 가족 기도는 보호막이 되고 위안과 평안을 가져옵니다. 제 자녀들이 선교 사업을 나가 있었을 때 저희는 저희 집과 선교 임지의 시간 차를 계산하고 선교사들의 시간계획을 알아내어서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제 자녀들이 우리가 몇 시에 집에서 자신을 위해 가족 기도를 하는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그 자녀들 중 몇몇은 그러한 가족 기도를 느낄 수 있었고 그 기도가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에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을 강화시켜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형식을 갖춘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경전에서 배웁니다. 앨마서 34장 27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주께 부르짖지 아니할 때는, 너희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하여, 너희의 복리[를] … 위해 끊임없이 그에게 기도하[라].”

우리는 항상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그것이 우리의 영혼이 하늘, 즉 하나님 아버지께로 닿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순간적이지만 “감사 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제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은 무엇입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처럼 강한 느낌입니다. 기도는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서 위안과 힘, 인도를 갈구하는 소망입니다. 기도는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뻐하는 느낌입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삶에서 성신이 작용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계속 대화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우리가 원한다면 얼마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과 환경, 그리고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 기도를 조절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좋은 음악일지라도 큰 소리로 계속 듣는다면 기도하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기도 전에 그 마음이 사라져버리게 하는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이 무질서하고 어수선하며 혼란스럽다면 성신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일상 생활로 너무 바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늘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성신이 거할 수 없는 곳에 있게 되면 우리의 기도는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영화, 텔레비전에서 보거나 읽는 것들을 통해 부적절하고 추악한 이미지들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되면 하늘과의 소통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화내고 짜증내거나 분노하면 우리의 마음이 닫힐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일상 생활의 일부인데,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우리가 허용할 때에만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통제하는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삶을 돌아보고 하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이르려고만 한다면 하늘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이르려는 그 행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영적인 것들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과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 열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늘 향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제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주님과 가깝게 해줍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저에게 생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열정과 신앙으로 기도하는가?

다음 질문은 기도할 때, 나는 열정과 신앙으로 기도하는가 입니다.

앨마서 34장 17~27절을 다시 보면, 이 구절들 전체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열정과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행사하다”, “거룩한 이름을 부르다”, “그에게 부르짖어”, “영혼을 쏟아내어”, “기도하는 데 마음을 기울이다”라는 말에 유의하십시오. 이것은 서둘러서 하는 의무적인 기도 이상의 것입니다.

모든 기도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많이 주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축복을 언제라도 주실 준비가 되신 주님께 우리가 서둘러 기도하거나, 기도하다가 잠들어 버리거나, 혹은 마음이 딴 곳을 향한 채 기도하거나, 우리의 말이 조심스럽지 않고 공경을 표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불쾌하게 여기시겠습니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분을 까마득히 잊어버립니까?

때로 우리의 기도는 도움을 구하는 긴급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뜰에서 놀던 세 살배기 아들이 없어졌을 때 저도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갓난아이를 살피느라 잠시 그 아이에게서 눈을 뗀 짧은 순간 동안 그 아이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저는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즉시 드렸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 아이가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의 수영장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수영장은커녕 그 아파트 단지에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영장은 건물 내에 있었고 언제나 잠겨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심지어 수영장이 거기에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아주 강했습니다.

달려가면서 저는 자전거를 타고 있던 열 살난 아들을 불러서 최대한 빨리 그 수영장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수영장에 도착한 제 아들은 남동생과 그 또래의 다른 아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둘은 수영장 끝에서 물이 얕은 부분으로 막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옷이랑 신발을 전혀 벗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문이 열려있었는데도 그곳에는 그 두 아이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기도는 강렬하며 응답이 당장 필요하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기도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평소에 늘 기도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우리가 절실하게 그분을 필요로 할 때 그분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열렬히 기도한다는 것은 그 기도가 응답될 수 있다는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중 몇몇의 신앙은 단순하고 어린아이와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거나 그 신앙이 한번도 시험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신앙이란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단 한번의 경험을 통해서 위대한 신앙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이후에 신앙이 시험 받을 때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분이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기도할 때 여러분의 신앙은 더욱 더 강하게 자라날 것이며 여러분의 인생에서 이러한 것들이 사실임을 알게 될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믿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가?

다음 질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가 입니다.

한 어린 소년의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브레이든은 대여섯 살 정도의 아주 어린 남자 아이였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몰몬경을 읽었습니다. 그 가족은 매일 몇 구절씩 읽고 가족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모로나이서 10장 4절을 읽었습니다. “또 너희가 이 기록을 받거든, 내가 너희를 권면하거니와, 너희는 혹 이 기록이 참되지 아니한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 보라. 너희가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진정한 의도를 지니며,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할진대, 그는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에게 이것의 참됨을 드러내어 주시리라.”

그날은 브레이든이 기도할 차례였습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늘 사용하던 단어와 방식으로 기도를 시작했지만, 그런 후에는 뭔가 다른 말을 했습니다. 브레이든은 “하나님 아버지, 몰몬경이 참된가요?”라고 말하고는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가 오래 지체하자 그의 아버지는 브레이든이 기도를 마치는 데 도움이 필요한지 보려고 곁눈질로 그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브레이든은 도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는 간단하게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며 기도를 마쳤습니다. 성신이 그 가정에 임했고 가족 모두에게 그 경전 말씀이 사실임을 증거했습니다. 브레이든의 기도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신앙이 깃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브레이든처럼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께 여러분의 가치는 심히 큽니다. 그분은 경전에서 “항상 기도하라”고 거듭 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속죄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분이 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응답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응답하실 것이라고 약속드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구심을 가져야 할 것은 주님이 아니라 아마도 자신의 합당성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지 잘 알지 못해서 의구심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를 더 잘 알고 답하기 위해, 다음 세가지 질문과 함께 생각해봅시다.

“나는 기도의 응답이 어떻게 오는지 알고 있는가?”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

“주님의 응답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가?”

우리 자신이 합당해져서 스스로 자격을 갖출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합당하다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해롤드 비 리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원하신다면, 그냥 무릎 꿇고 기도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구하고자 하는 축복을 받기에 합당해지도록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자신을 준비하십시오.” (Stand Ye in Holy Places [1974년], 244쪽)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알기 위해 그리고 주님의 응답을 인식하기 위해 영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도하고 응답을 받기 위해 우리가 완전해지거나 완전에 가까워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며 완전해지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영원히 우리를 축복하실 방법으로 항상 응답하십니다. 이것은 원리이며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래, 혹은 안돼, 혹은 지금은 아니란다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분의 대답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대해 전혀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과 그분께서 정하신 때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응답이 올 때, 그 응답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응답들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키기 위해 조금씩 옵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의문을 즉각 밝혀주시거나 우리의 모든 행위를 지도하신다면 경험을 하고 신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우리 인생의 목적은 좌절되고 말 것입니다.” (The Lord's Way [1991년], 36쪽)

어떤 응답들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주님은 우리가 그 응답에 따라 행동하리라 믿으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두 가지 다 좋은 것을 두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간구하면 주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의지의 권능을 사용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아마도 기도에 대해 구체적인 응답을 받으려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과 우리가 받은 응답을 받아들이려는 것을 꺼려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 그것도 지금 당장 원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점은 응답이 어떻게 오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셉 스미스의 첫번째 시현처럼 어떤 기도들은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개 기도의 응답은 더 조용하게 옵니다. 교리와 성약 8편 2~3절에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임하여 네 마음에 거할 성신으로 말미암아 네 생각과 네 마음에 말하리라.”

“이제 보라, 이것은 계시의 영이니.”

첫 번째로 언급된 방법은 우리의 생각에 있습니다. 이 응답들은 생각, 지식처럼 성신의 고요하고 작은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이 응답은 스치는 영감처럼 우리가 곧 인식할 수 있는 것이거나 고심 끝에 떠오르는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응답들은 대개 좋은 느낌을 동반합니다.

두 번째로 언급된 방법은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느낌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안돼라는 것임을 알려주는 부정적이고 혼란스런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혹은 감미롭고, 평온하며, 안심과 위안을 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응답이 긍정적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느낌들은 때때로, 강렬하게 타는 듯한 느낌으로 비유되기도 하며 혹은 매우 미묘한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원리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슴속 깊이 이것을 알고 있다면 실망하거나 그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응답을 곧바로 인식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분의 방법을 알기 위해 계속 기도하면서 충실하게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신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응답이 오며 그 응답들이 어떤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마다 다르고 우리가 하는 경험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항상 성신을 동반하기에 합당할 때,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들을 더 분명히 깨닫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응답에 따라 행동하는가?

마지막 질문은 내가 받는 기도의 응답에 따라 생활하는가,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응답에 따라 행동하는가 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하더라도 듣고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주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려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101편 7~8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주 그들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더디 하였으니, 그러므로 그들의 환난의 날에 주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그들에게 응답하기를 더디 하시느니라.”

“그들의 평화의 날에는 그들이 나의 권고를 가벼이 여기더니, 그러나 그들의 환난의 날에는 그들이 부득이 나를 더듬어 찾는도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미 응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응답을 계속 찾으려 한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기억하고 신앙으로 기도의 응답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이제 여러분께 질문 하나를 더 드리겠습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니파이후서 32장 8절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는 영에게 귀 기울일진대, 너희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임이라. 이는 악한 영은 사람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에게 기도하면 안 된다고 가르침이니라.”

브리검 영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가 되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Discourses of Brigham Young, John A. Widtsoe 발췌, [1954년], 44쪽)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삶의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새로운 학기, 새로운 경험을 할 시기, 새로운 관계 혹은 영원한 관계를 이룰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하고 있고 앞으로 중요한 결정들을 많이 내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결정과 관련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생각하고, 노력하고, 우리의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삶을 그분의 손에 맡기면서 그분의 방법대로 결정하려 할 때, 그 일은 더욱 쉬워질 것이며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전 안내서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및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기꺼이 허락하고자 하지만, 얻기 위해서 우리가 구해야만 하는 축복들을 받기 위한 것이다.” (“기도”, 39쪽)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겸손히 그분을 향하여 간구하고, 그런 후에는 귀 기울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때로 우리는 인생을 힘들게 살지만 인생이 그처럼 힘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3니파이 18장 18~20절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보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유혹에 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여야 하느니라. 이는 사탄이 너희를 밀같이 체질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함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항상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여야 하느니라.”

“또 너희가 받을 줄로 믿으며, 옳은 것으로서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보라, 너희에게 주어지리라.”

니파이의 모범을 따릅시다. 겸손한 기도로 하늘 아버지께 향합시다. 그분께서 우리와 우리 가족을 위해 예비하신, 헤아릴 수 없는 큰 축복들을 받도록 합시다.

저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두 분은 우리 각자를 알고 사랑하시며,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겸손한 기도로 그분들께 향함으로써 신속히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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