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만드는 건축가입니다

제럴드 코세

감리 감독단 제1보좌


 
제럴드 코세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밤 여러분에게 말씀하게 되어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에 대해 깊이 감탄하며, 오늘 밤에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

이 아름다운 태버내클에는 몇천 명의 청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볼 수는 없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수천 개의 집회소에는 더 많은 분이 참석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의를 기울이며 배우기를 열망하고 있음을 압니다. 거리상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 성신이 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위성 방송보다 더 훌륭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성신의 임재입니다. 저는 성신이 오늘 저녁 우리와 함께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며, 영감을 주기를 기도합니다.

인생에는 깜짝 놀랄 일들이 많다

우리는 솔트레이크시티를 세운 개척자들의 신앙과 근면을 기리는 역사적 기념비와도 같은 장엄한 장소에 있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 때 이 태버내클에 처음 들어와 봤습니다. 처음으로 미국을 여행하던 때였습니다.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가시게 된 아버지께서 저에게 함께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프랑스 남부 아이인 저는 그 제의를 듣고서 기뻐서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마침내 미국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여정에는 주말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연차 대회에 참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저의 열의는 더욱 컸습니다.

임대한 포드 무스탕을 타고 유타에 도착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여러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며 눈보라 속을 뚫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오렌지 빛깔의 장대한 협곡들과 웅대한 산들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저에게 그 풍경은 미국 서부를 특징짓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카우보이나 인디언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다녔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한 친절한 친구분 덕분에 이 태버태클 맨 앞줄에 앉아 연차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모임 내내 저는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몇 마디 영어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지금도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님의 말씀을, 실제로 그분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 어린 마음속에 박힌 깊은 인상을 기억합니다. 저는 제가 꿈속에서 굉장한 모험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제가 오늘과 같은 밤을 맞으리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이 태버내클에서 그때와 똑같이 이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할 줄을 어떻게 상상했겠습니까?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놀랄 일이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저도 5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절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가족과 함께 파리에서 살았고 우리의 삶이 완전히 설계돼 있는 듯했습니다. 우리의 다섯 자녀는 모두 집 근처에 있는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파리 변두리에 있는 평화로운 주택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저녁, 몬슨 회장님께서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면서부터 우리의 삶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제 가족과 저는 유타에서 사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사적지, 산행, 해 질 녘 뒤뜰에서 해 먹는 바비큐, (최고와 최악을 비롯한) 온갖 햄버거를 맛보고, 쿠거 풋볼 경기며 아메리카 원주민을 구경하는 것 등을 즐깁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할 한 가지는 내일 여러분이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보게 될 카우보이가 바로 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미지의 세계이다

감리 감독단 일원으로서 제가 하는 일은 신 나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 일은 제가 청소년기에 계획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경험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질 좋은 교육을 시키기로 작심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투탕카멘으로 알려진 어린 이집트 왕이 나오는 책을 주셨고, 그 책을 본 저는 고대 문명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주말이면 고대 전투 장면을 그리는 게 일쑤였고, 제 방의 벽은 그런 그림들로 도배되다시피 했습니다. 언젠가는 이집트에 가서 고대 이집트 신전과 왕들의 무덤을 발굴하는 데 참여하리라는 꿈을 간직했습니다.

40년이 흘렀지만, 저는 아직 고고학자가 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집트에도 가보지 못했고, 총관리 역원이 되기 전에는 식품 유통 관련 일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계획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대체로 청소년 시절은 인생을 설계하기에 이상적인 시기입니다. 우리는 각자 어린 시절에 꿈이 있었습니다. 청년 독신인 여러분은 각자 미래에 대한 꿈을 간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운동 경기에서 거두는 성취, 위대한 예술 작품 창작, 또는 노력과 끈기를 통해 학위 취득이나 전문 직업을 얻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 그 사람의 외모, 성격, 눈이나 머리카락 색깔, 여러분의 가족에게 축복이 될 예쁜 자녀들이 아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그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소원 중 몇 개나 실현될까요? 인생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놀라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몇 년 후에 여러분이 어디에 있을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인생은 줄거리를 짐작하기 매우 어려운 서스펜스 소설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인생행로를 순식간에 바꿔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들을 맞을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은 불과 한 번 보는 것, 한 차례의 대화, 계획에 없던 한 번의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발레리에와 저는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일은 파리에 있는 우리 청년 독신 와드가 합창 연습을 하던 중에 일어났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서로 연애 감정을 품은 적이 절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때 뭔가가 일어났습니다. 1초가 영원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새로운 기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최근에 몬슨 회장님이 선교사 봉사의 연령에 관해 발표하신 것도 그런 기회에 속합니다. 선지자께서 그 발표를 하신 후, 필시 수천 명의 청남 청녀들이 선교 사업 계획을 수정하고 있을 것입니다.1

인생행로를 변경하는 일은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나 좌절감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인생에서 처하는 상황을 일부분밖에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불확실성은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전혀 다른 미래가 닥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낳기도 합니다.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도 실패를 두려워하여 그 일에 전념하기를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혼, 교육, 자녀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일을 미루거나 안정된 직장에서 자리를 잡는 것, 그저 “어울려 다니기”를 선호하거나 부모님의 안락한 집에서 눌러 사는 것 등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을 제한하는 또 다른 철학은 “내일 우리가 죽으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니파이후서 28:7)는 표현에 잘 나타납니다. 이 표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것이며, 우리는 모두 결국 죽게 되므로 현재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런 철학은 결과에 개의치 않고 즉각적인 만족에 탐닉하는 것을 두둔합니다.

행복의 길을 따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두려움과 의심 또는 방종이 아닌 다른 길이 있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인생에 평안과 자신감, 평온을 가져다 주는 길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직면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제어할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행복을 만드는 건축가입니다.

저는 지난 연차 대회에서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님이 전하신 다음과 같은 현명한 말씀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좀 더 자주 뒤를 돌아보며, 외적인 상황은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지 못하며,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2

행복은 정말이지 삶에서 처한 환경에서 나오는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여러분이 인생에서 기초를 두는 영적 비전과 원리에서 생겨나는 결실입니다. 이런 원리들은 이 지상 여정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예기치 않은 도전과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에 관계없이 여러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본질적인 원리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라

첫 번째 원리는 이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십시오.

올해 여름에 저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름다운 프로방스에서 휴식을 취하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해가 지고 그 고장 주위로 땅거미가 내려앉자, 저는 야외에 있는 안락의자에 누워서 고요한 순간을 보내 보기로 했습니다. 사방이 캄캄했기에 주변을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흑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섬광처럼 빛이 하나 나타났고, 그런 다음 두 개, 또 그 다음에는 세 개가 보였습니다. 점차 제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무수한 별들이 눈에 들어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어두운 하늘이 은하수로 변신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각자와 하나님이 맺는 관계하고 약간 비슷하군. 그분이 저 멀리에 계신다고, 또는 존재하지 않으신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인생이 몹시 어두운 암흑이라고 여긴다. 그런 사람들은 그분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저곳에 계신지 보기 위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 노력도, 그럴 시간도 들이지 않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우주를 생각하고, 저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토록 웅대하고 장대한 우주 앞에서 나는 무엇인가?’ 하고 자문해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한 성구가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성구인데, 제게 늘 영감을 주는 다윗의 시편 중 하나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 8:3~4)

그리고 바로 이어서 위안을 주는 이 구절이 이어집니다.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편 8:5)

이것은 역설이자 창조의 기적입니다. 우주도 광대하고 무한하지만 동시에 우리 각자도 창조주 보시기에 영화롭고 무한하며 굉장한 가치가 있습니다. 제 육체적 존재는 매우 작지만 제 개인적인 가치는 하나님 아버지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우흐트도르프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어떻든 간에 여러분은 잊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루하루가 암울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이 보잘것없게 느껴지더라도,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 여러분을 잊지 않으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여러분을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하며 영화로우신 분이 여러분을 알고 기억하십니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다스리는 왕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3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알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 삶을 비추고 의미를 주는 빛과 같습니다. 저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한 노변의 모임에서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모임 후에 한 젊은 여성이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녀는 감정에 겨운 목소리로 자신의 여동생이 걱정과 괴로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동생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도록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종종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사랑과 관심에 근거하여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종종 불완전하고 불충분하거나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고 비이기적입니다. 내가 누구이든, 나에게 친구가 있든 없든, 인기가 있든 없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박해를 받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우리의 근심을 헤아리시며, 몹시 축복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그분의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 그분은 구주에게서 쓴 잔을 제거하지 않으셨으며, 그분의 아들이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그분도 당연히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그 위대한 속죄의 일부분은 나를 위한 것이었으며, 현재의 나를 위해 예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 주신 이 무한한 은사는 내가 그분께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시듯이 자신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비심과 사랑과 자신감으로 자신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의 영원한 가능성을 하나님께서 아시듯이 여러분도 안다면 그것이 삶에 미칠 영향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분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실재하심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을 찾으십시오! 탐구하고 연구하십시오. 기도하고 간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분이 실재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증표를 여러분에게 보내 주실 것임을 약속합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 올 수도 있고, 여러분을 위로하고 위안하는 성신의 부드러운 영향력일 수도 있으며,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영감이나 새로운 힘일 수도 있습니다. 딱 알맞은 때에 딱 알맞은 곳에서 여러분의 삶을 축복해 주기 위해 나타나는 가족, 친구, 또는 신권 지도자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뻗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분은 자신이 여러분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이 되라

자, 두 번째 행복의 원리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되십시오.

“너 자신이 되라.”는 유명한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가 한 말로4, 역설처럼 들립니다. 나는 이미 나인데 어떻게 내가 되라는 말입니까?

이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디어 미[Age of Reason]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한 은행가로서 세계 곳곳으로 출장을 다니며 회의에 참석하는 등 매우 바쁜 삶을 사는 마거릿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녀는 결혼을 했음에도 자녀를 낳아 키울 시간은 없다고 말합니다.

마흔 살이 되던 날, 마거릿은 이상한 편지를 하나 받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친애하는 나에게, 나는 오늘 일곱 살이 되어 내가 이성을 지닌 나이에 했던 약속을 기억하게 해 주려고, 또 너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기억나게 해 주려고 이 편지를 쓴단다.” 문득 마거릿은 그 편지를 쓴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며, 그것이 일곱 살 때 쓴 편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여러 장의 편지에서 그 어린 소녀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마거릿은 어린 소녀였을 때 되고 싶었던 사람이 현재의 자신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마음속에 그렸던 사람을 되찾기로 결정하자, 체계적이고 잘 계획된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고 맙니다. 그녀는 가족과 화해하고 여생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합니다.5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만일 지금 여러분의 과거로부터 편지를 받는다면, 거기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여덟 살이 되어 침례를 받던 날에 자신에게 편지를 썼더라면 거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요? 그보다 훨씬 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분이 전세에 있던 때 보낸 편지를 받을 수 있다면, 거기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비록 잊어버렸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으로부터 그런 편지를 오늘 받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지 모릅니다. “친애하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기억나게 해 주려고 이 편지를 쓴단다. 나는 지구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서 기뻐하며 소리쳤지. 지상 생활은 내가 성장하고 내 가능성에 최대로 도달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임을 알아. 나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임을 기억해 주길 원해. 나는 그분의 계획을 지지하기에, 지상에 가면 그분의 구원 사업을 돕고 싶어. 그리고 세세 영원토록 함께하게 될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점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 생각을 하니 교회의 프랑스어 찬송가에 나오는 아주 아름다운 노래가 하나 떠오릅니다. 다른 나라 찬송가에는 나오지 않는 노래입니다. “Souviens-toi”라는 노래인데, 그 뜻은 “잊지 마라”는 것입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작곡한 신세계 교향곡을 붙인 이 찬송가는 부모가 갓난아기에게 불러주는 노래입니다.

여러분에게 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잊지 마라, 내 아가야. 동틀 녘에
우리는 바람 속에서 뛰노는 친구였단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으로부터
위대한 인생의 계획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내 아가야, 그 저녁에 우리는 약속했단다.
사랑을 통해, 신앙을 통해 다시 만나기를.6

“잊지 마라, 내 아가야.” 인생에서 커다란 모험 중 하나는 우리가 진실로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며, 그런 후에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존재의 목적과 시종일관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브리검 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배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훈은 여러분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그것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와야 했습니다. ……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것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것들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 또한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7

최근에 제 딸들은 저에게 이 원리가 영화 라이온 킹에서 비유적으로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세대는 이 영화를 보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심바가 왕이었던 아버지 무파사의 방문을 받는 장면을 기억할 것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후 심바는 그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왕국으로부터 멀리 도망쳤습니다. 그는 왕위를 계승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타나 이렇게 경고합니다. “넌 네가 누구인지를 잊었고 나마저 잊어버렸구나. 너 자신을 살펴봐라, 심바, 너는 지금의 너보다 더 큰 존재란다. 인생의 궤도 속에서 네 자리를 찾아가야 해.” 그런 후 이런 권유를 몇 차례 반복합니다. “네가 누구인지를 잊지 마라. 네가 누구인지를 절대로 잊지 마라.”

이 일로 완전히 동요된 심바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심바는 친구인 주술사 원숭이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으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원숭이는 “변화는 좋은 것이야.”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심바가 말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무얼 해야 하는지 알죠.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를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오랫동안 도망쳐 왔는데 말이죠.”

원숭이가 묻습니다. “어디로 갈 거니?”

이에 심바는 이렇게 외칩니다. “전 다시 돌아갈 거예요!”8

우리는 모두 인생의 궤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거나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참된 자신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진정한 정체성을 찾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그런 후에 그 지식과 일치하는 삶을 살 때, 삶에서 균형을 이루는 능력과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이제 세 번째 행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저는 동기를 부여하는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의 다음 말씀을 아주 좋아합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신앙처럼 밝습니다.”9 인생에서 얻는 성공과 행복은 우리의 운명을 실현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과 신뢰에 크게 좌우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놀랄 만한 위업을 이룩하는 남성과 여성들이 종종 어렸을 때부터 미래에 대한 커다란 확신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예로 유명한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스물세 살에 인도에서 기병대로 복무하던 시절에 그는 모친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제가 세상에서 뭔가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10 이 얼마나 예언적인 말입니까! 실제로 그는 자신이 조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될 것임을 기대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대영제국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젊은 회원 여러분에게는 자신을 인도해 줄, 하늘의 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지켜보시며 여러분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말라기에 나오는 한 성구는 복음의 회복에서 핵심이 되며, 모로나이 천사는 어린 조셉 스미스를 방문할 때마다 그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 천사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들에게 한 약속들을 자녀들의 마음에 심을 것이요, 자녀들의 마음은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이키리라.”(조셉 스미스-역사 1:39)

사랑하는 젊은 형제 자매 여러분, 회복 덕분에 여러분은 약속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받은 약속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약속으로 여러분은 고귀한 세대에 속하게 됩니다.

제 말을 듣고 계시는 분 중 다수는 고결한 개척자들, 용기와 희생으로 회복된 교회 건립을 도운 위대한 영혼들을 조상으로 두었습니다. 여러분에 앞서 용감한 성도들의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분들은 자신의 가족과 고국에서 개척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사슬에서 첫 번째 고리입니다. 각자의 내력이나 유산이 무엇이든 간에 교회 회원으로서 여러분 모두는 영의 가족으로 연결됩니다. 영적 계보에 따라 여러분 각자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그 조상들의 후손이 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상속받습니다.

자신이 받은 축복사의 축복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축복문에서 주님은 여러분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한 지파에 연결되어 있음을 확언해 주시며, 그렇기에 여러분은 충실함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약속받은 막대한 축복을 누릴 상속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마다 [그의] 이름으로 불리울 것이요, [그의] 자손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그들은 일어나 [그를] 그들의 조상으로 찬양하리라”(아브라함서 2:10)고 약속하셨습니다. 축복사의 축복문을 읽으면서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하신 약속들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 약속 중 하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의 몫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앨마가 아들 힐라맨에게 성스러운 기록들을 넘기던 날에 했던 이 말씀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기억하라, 내 아들 힐라맨아, ……

…… 만일 네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거룩한 이것들을 가지고 행하기를 주께서 네게 명하시는 바대로 하면, …… 보라, 땅이나 지옥의 능력이 이것들을 네게서 빼앗지 못하리니, 하나님은 권능이 크시므로 그의 모든 말씀을 이루심이니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하실 그의 약속을 다 이루실 것임이니, 이는 그가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그의 약속을 이루셨음이라.” (앨마서 37: 13, 16~17)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은 언제나 그 약속에 부가된 율법을 순종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는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가 행할 때에는 내 말을 지킬 수밖에 없으나,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너희는 아무 약속도 받지 못하느니라.”(교리와 성약 82:10)

한편, 이런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의 기대와 소망에 일치할 것임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분의 뜻에 일치하는 것임을 보증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칠 것입니다. 또 때로는 약속된 축복이 오래도록 늦추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련과 지연됨이 우리의 유익과 영원한 진보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인생에서 소망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우리의 뜻을 주님의 뜻에 일치시켜 그분의 의제를 삶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에게는 없는 시각으로 보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원리를 제 경험을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프랑스 최고 명문인 경영 대학원에 들어가고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 준비를 위해 일 년 내내 매일 열심히 공부해야 했는데,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해 초에 저는 해야 할 공부가 아무리 많더라도 일요일 모임과 일주일에 한 번 참석하는 종교 교육원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제가 속한 청년 독신 성인 와드에서 서기 부름까지 받아들였는데, 그 부름은 매주 여러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의 충실함을 알아보시고 제가 목표를 성취하도록 도와주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연말이 되어 시험이 다가왔을 때 저는 제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와 금식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 명문대의 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저는 주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제 바람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가장 자신 있었던 구두시험은 뜻하지 않은 재난에 봉착하여 몹시 열망했던 그 학교에 들어갈 정도의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극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꾸준히 충실함을 나타내 보였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저를 버리실 수 있단 말입니까?

두 번째로 지망한 학교에서 구두시험을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의심과 불확실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는 시험은 대학원 원장이 감독하는, 면접관 앞에서 45분간 진행되는 면접이었습니다. 면접 초반부는 통상적인 내용이었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 다음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학생이 이 시험을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학생이 공부 외에 어떤 활동을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습니다. 저는 일 년 동안 공부와 교회에 가는 것, 그 두 가지만 했습니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면접관이 제가 이 교회 회원이라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해석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는 제 원칙에 충실히 남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입니다.” 그런 후 약 15분간 안식일 모임, 종교 교육원 수업, 와드 서기 일 등 제가 교회에서 한 일들을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마치자 면접관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어서 기쁘군요. 나는 젊었을 때 미국에서 공부했지요. 당시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몰몬이었어요. 아주 뛰어난 청년이었고, 인간성이 정말 훌륭했어요. 그래서 나는 몰몬들은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여기지요.”

저는 큰 안도감을 얻었습니다. 그날 저는 높은 점수를 받아 그 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친절하심에 대해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최고 명문대에 떨어진 일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는 실패감과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그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놀라운 축복이었음을 이해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습니다. 그 두 번째 학교에서 저는 중요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교제한 것은 직장 생활 내내 유익이 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저와 제 가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주께서 제게 인생 후반에 성취하도록 요구하실 사명을 미리 아시고서 그 젊은 나이에 저의 발걸음을 인도하셨음을 압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한 후에도 여러분이 소망했거나 기대했던 방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는 그분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은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귓가에 속삭이는 이 고요한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모든 육체는 내 손안에 있음이니,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교리와 성약 101:16)

저는 최근에 윌리와 마틴 손수레 부대의 역사를 그린 매우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습니다. 1856년 5월에 천 명이 넘는 성도들로 구성된 두 무리가 잇따라 영국을 떠나 유타로 이주했습니다. 6개월 후,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하여 그 위험한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을 때는 그들 중 200명을 잃은 뒤였습니다. 그 대부분은 자신이 “시온”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던 길에 질병이나 굶주림, 체력 소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에 묘사된 개척자 중 한 사람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부대 사람들에게 훌륭한 유머와 열의를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통상적인 개척자들 대부분과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작은 키에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는 그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용감한 개척자가 영국 첼트넘에 살았던 로버트 피어스라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정을 함께한 어느 동료는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여행하기에 그토록 극심한 장애를 겪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다리는 마비되었고 몸도 심한 기형이지만, 그의 신앙은 강하다. 그는 목발을 짚고 놀랄 만한 속도로 전진한다.”11

어느 날, 로버트 피어스는 길을 잘못 들어서 자신의 부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몇몇 사람이 그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아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고목 주위로 커다란 회색 늑대 두 마리가 서성이고 독수리 여섯 마리가 나무 위를 맴돌면서 그가 비명과 목발 휘젓기를 멈추기만 하면 나무뿌리 아래에 웅크린 그에게 달려 들어 먹어 치워버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

우리는 제때 도착하여 최후가 임박한 그를 구해내 우리가 끌고 온 손수레에 태워 야영지로 돌아왔다.”

이제 그 마음씨 좋은 로버트에 대해 들어 보십시오. “그 가엾은 친구는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면 자신이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줄곧 걸어가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하면서 걸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런 후 이 이야기의 슬픈 부분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구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을 때였다. 6일째 여정을 마칠 즈음, 이 세상에서 겪는 그의 고난은 끝이 났고, 그는 엘크혼 강둑에 묻혔다.”12

로버트 피어스의 이야기를 편찬한 졸린 올핀 자매님은 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버트 피어스가 그 험난한 여행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목발로 무려 965킬로미터를 걸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성도들을 시온으로 모아 들이고 싶다는 소망이 숨 쉬고 있었으며, 그는 여정에서 어느 동료에게도 짐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 로버트는 어떠한 동냥이나 특별 대우도 바라지 않았습니다.”13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자문해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신앙을 지닌 사람을 늑대와 독수리들로부터 기적적으로 구해 주시고는 겨우 며칠 만에 길가에서 죽음을 맞게 하셨을까?’

그의 죽음은 매우 평온했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선교사들은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언젠가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었지! ……

나는 항상 튼튼한 몸을 원했어. 이제 그걸 갖게 되겠군. 자네들이 시온에 가면 나를 기억해 주게.”14

로버트 피어스에 관해 생각할 때 저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서한이 떠오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브리서 11:13, 14, 16)

결국, 로버트 피어스는 자신의 궁극적 목적지가 솔트레이크밸리가 아닌, 하늘 왕국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를 보증합니다. 하나님의 선견에 따라 각자는 다른 여정을 따를 것입니다. 상황은 바뀔 수 있으며, 뜻밖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어려움이 생길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우리의 충실함을 통해 보증됩니다.

앤 시 핑그리 자매님은 주님의 약속 안에서 신앙을 갖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매님은 먼저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그 충만하고 순수한 형태의 신앙은 우리의 호소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또 [그분이 정하신 시간에] 우리의 탄원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흔들림 없는 확신, 그리고 ……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합니다.’ 우리도 또한 그것을 믿음으로써 지금이나 미래에 ‘신앙 안에서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나 우리가 처한 개인적인 환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매일의 의로운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그 신앙은 필멸의 세상에서 겪는 마음의 고통, 실망, 성취되지 않은 약속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약된 모든 것[을] 성도들[이] 받을’ 그날을 고대하도록 이끄는 신앙을 지닌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15

형제 자매 여러분, 현재 제가 생활하는 환경은 제가 여러분 나이 때에 계획했던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이처럼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무 살 때 누군가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 인생이 어찌 펼쳐질지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 삶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신앙만큼 밝다

여러분에게 발레리에와 저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행로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록 우리가 젊은 시절에 영생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던 것이 큰 차이를 낳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가족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이 지상에 있고 우리의 영원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 보시기에 우리에게 커다란 가치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그분이 정하신 좋은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응답하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그분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 했던 것이며, 지금도 계속해서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따르고 자신을 그분께 바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몬슨 회장님과 더불어 여러분의 “미래[가] 여러분의 신앙처럼 밝[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여러분의 행복은 여러분이 생활하는 외적 환경보다는 여러분이 따르기로 선택하는 원리에 더 많이 좌우됩니다. 그런 원리에 충실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알고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영원한 계획과 조화를 이루며 생활한다면, 그리고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빛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꿈과 목표가 있습니까? 좋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성을 다해 노력하십시오. 그런 후에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여러분 혼자서는 가지 못하는 곳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 혼자서는 될 수 없는 존재가 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분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서, 그분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그분이 양육하시는 남성과 여성이 되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기를, 그분이 여러분을 신뢰하듯이 어떻게 자신을 신뢰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에게 저의 사랑을 전하며, 여러분이 온 세상에 보이는 모범과 힘에 감탄과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이생은 영원 속에서도 놀라운 한 순간임을 간증드립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목표, 즉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며, 그분의 속죄는 영원한 행복의 문을 여는 무한한 사랑의 은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완전한 형태로 다시금 이 지상에 존재하며,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 교회를 이끕니다. 이 교회에 속하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자 특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 2012 Intellectual Reserve, Inc. 판권 소유. 영어 승인: 5/12. 번역 승인: 5/12. We Are the Architects of Our Own Happiness의 번역. Korean. PD50039056 320

참조 보이기

  1.  

    1. 토마스 에스 몬슨, “대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nsign 또는 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4~5쪽 참조

  2.  

    2.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후회와 결심에 관하여”, Ensign 또는 Liahona, 2012년 11월호, 23쪽

  3.  

    3.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물망초”, Ensign 또는 리아호나, 2011년 11월호, 122~123쪽

  4.  

    4. Pindar (ca. 522–443 B.C.), Pyth. 2.72 참조

  5.  

    5.  L‘âge de raison 또는 디어 미[With Love … from the Age of Reason], 감독: 얀 사뮤엘(프랑스, 2010; 한국[미국], 2011), 영화

  6.  

    6. “Souviens-toi,” Cantiques (1993), no. 179

  7.  

    7.  Discourses of Brigham Young, sel. John A. Widtsoe (1954), 269.

  8.  

    8.  라이온 킹, 감독: 로저 알러스, 롭 민코프(1994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홈 엔터테이먼트, 2011년), DVD

  9.  

    9. 토마스 에스 몬슨, “기뻐하라”, Ensign 또는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92쪽

  10.  

    10. Winston Churchill, quoted in John Charmley, Churchill: The End of Glory, A Political Biography (1993), 20

  11.  

    11. John William Southwell, quoted in Jolene S. Allphin, Tell My Story, Too, 8th ed. (2012), 287

  12.  

    12. Southwell, in Tell My Story, Too, 287

  13.  

    13. Allphin, Tell My Story, Too, 288

  14.  

    14.  17 Miracles, directed by T. C. Christensen (2011; EXCEL Entertainment and Remember Films, 2011), DVD

  15.  

    15. 앤 시 핑그리, “[약속들을] 멀리서 보고”, Ensign 또는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1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