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크자 버튼

제16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

2012~현재


 

린다 케이 버튼

십대 시절 린다 크자 버튼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교회 모임을 하던 중에 갑자기 깨달았다. “저는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고 버튼 자매는 회상했다. “제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또한 깨달았죠.” 그 간증은 이제 그녀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하는 데 밑받침이 될 것이다.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마저리 시 크자와 모리스 에이 크자 사이에서 태어난 버튼 자매는 열세 살 되던 해에 뉴질랜드 남 선교부를 감리하도록 부름 받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유타를 떠났다. 여섯 자녀 중 둘째인 버튼 자매는 뉴질랜드 교회 대학(Church College of New Zealand)에 다니며 태평양 건너편의 십대 후기 성도들과 우정을 쌓았다. 그녀는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올 때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특히 주님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키우게 되었다.

버튼 자매는 유타 대학교를 다니던 중 크레이그 피 버튼을 만나 1973년 8월에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결혼했다. 이 부부는 즉시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했고, 약 일 년 뒤 여섯 자녀 중 첫 번째 자녀가 태어났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협력하여 남편이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동안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봤다. 이 부부는 결혼 초반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우린 주님의 도움으로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하고 그녀가 설명했다.

이 가족은 간소한 휴가를 보내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버튼 자매는 청녀, 초등회, 주일학교, 본부 초등회 및 상호부조회 위원회에서 봉사했다. 그녀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서울 서 선교부를 감리했던 남편과 함께 봉사했다. 버튼 자매는 선교부 임지에서 어린 시절 뉴질랜드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은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한국에서 한 친구로부터 배운 것을 새로운 부름에서 다시 적용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매님의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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