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본부 초등회 회장단 알아보기

제공: Church News 기자

  • 2016년 4월 11일

새로 부름 받은 본부 초등회 회장 조이 디 존스 자매(중앙), 제1보좌 진 비 빙엄 자매(왼쪽), 제2보좌 보니 에이치 코든 자매(오른쪽).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2016년 4월 2일 연차 대회 토요일 오후 모임에서 다음 구성원들이 본부 초등회 회장단으로 지지받았다.

조이 디 존스, 본부 초등회 회장

조이 디 존스 자매에게 부모는 영웅 같은 존재였다.

존스 자매는 전기 기술자였던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재료만 있으면 가족이 먹는 음식에서부터 입는 옷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놀라운 여성이었다고 말한다. “제게 어머니는 성인 같은 분이셨고, 저는 자라서 어머니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조이 디 존스 자매, 본부 초등회 회장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로버트 비 존스 형제와 본부 초등회 회장 조이 디 존스 자매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존스 자매는 부모인 알도 하먼과 엘리너 엘스워스 하먼에 대한 소중한 기억 외에도 오리건 주 지방부 대회에서 로버트 엘 백맨 장로의 말씀에 귀 기울이던 어릴 적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현재 명예 총관리 역원인 백맨 장로는 당시 선교부 회장이었다.

존스 자매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매우 강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이전에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느꼈지요. … 저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참되다는 증거를 영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조이 다이앤 하먼은 1954년 7월 20일, 오리건 주 더 댈즈에서 태어났다. 그녀와 미래에 남편이 된 로버트 브루스 존스 모두 오리건에서 자랐으나, 만난 곳은 미국 유타 주 프로보의 브리검 영 대학교였다. 두 사람은 1974년 8월 14일에 유타 맨타이 성전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다섯 자녀와 열일곱 명의 손자녀를 두었다.

존스 자매가 가정학 학사 학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오리건 주 포틀랜드로 이사했고, 이후 캘리포니아 산타로사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존스 형제는 척추교정 의사로 일했다. 22년 전 존스 형제 부부는 유타 주 드레이퍼로 이사하라는 느낌을 받았다. 존스 자매는 그때 이후로 성전 가까이에서 사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녀는 “조던리버 성전은 제게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으며, 저는 성전의 힘과 성전이 제 삶에 가져다준 평안과 인도에 대한 간증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존스 자매는 와드 상호부조회 회장, 초등회 회장, 그리고 와드 및 스테이크 상호부조회, 청녀, 초등회 회장단 보좌로 봉사했으며, 최근에는 본부 초등회 임원으로 봉사했다.

진 비 빙엄 자매,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1보좌

진 비 빙엄 자매,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1보좌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1보좌 진 비 빙엄 자매와 브루스 빙엄 형제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진 배러스 빙엄 자매는 거의 6년 동안 본부 초등회 임원회에 부름받아 봉사하는 일을 대단히 좋아했다. 회원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초등회에 참석하면서 그녀는 전 세계의 후기 성도들, 특히 초등회 어린이들의 강한 신앙을 목격했다.

최근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1보좌로 지지받은 빙엄 자매는 생애의 많은 시간을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며, 사랑하면서 보냈다. 그녀는 함께 자란 형제자매, 두 친딸과 수양딸, 손자녀, 집에 찾아온 방문객, 혹은 본부 초등회 임원회 임원으로서 만난 사람들이건 간에, 숱한 이들의 옹호자이자 힘의 원천이 되어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각각의 어린이에게는 놀라운 잠재력이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빙엄 자매는 1952년 6월 10일에 미국 유타 주 프로보에서 이디스 조이 클라크와 로버트 롤런드 배러스의 아홉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태어나고 석 달 후, 가족은 아버지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인디애나 주로 이사했다. 빙엄 자매의 생애 중 처음 6년 동안 그녀의 가족은 네 개의 주에서 살았다.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빙엄 자매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유타 주 프로보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지낸 지 2년째 되던 해에 그녀는 십 대에 부모님과 함께 침례를 받은 일리노이 주 출신의 시골 청년이자 미래의 남편인 브루스 브라이언 빙엄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72년 12월 22일에 유타 프로보 성전에서 결혼했다.

그녀의 삶에는 와드 초등회 회장, 청녀 회장, 그리고 상호부조회 회장단 보좌, 스테이크 청녀 회장, 성전 봉사자, 새벽 세미나리 교사로 교회에서 봉사한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빙엄 형제는 아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43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하며 제가 본 아내의 생활 방식은 영의 속삭임을 한결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아내는 주님께서 그녀에게 하기를 바라시는 일을 거듭해서 해 왔습니다.”

보니 에이치 코든,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2보좌

보니 에이치 코든,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2보좌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데릭 코든 형제와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2보좌 보니 에이치 코든 자매 사진: 스코트 지 윈터튼

보니 힐럼 코든은 아이다호 주 남동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많이 배웠다. 이 새로운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2보좌는 농장에서 일하고, 놀고, 생활하면서 자립, 각고의 노력, 그리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부모인 해럴드와 캐럴 라스무센 힐럼이 가르친, 주님의 도움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코든 자매의 아버지는 “능력에 한계는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코든 자매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새로 부름받은 선교사로서 포르투갈어를 배우며 고생하는 중에도 그 지식에 의존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기적을 구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저는 제가 힘든 일도 해낼 수 있으리란 것을 알았습니다.”

수많은 기도와 노력 및 인내의 결과로 점차 유창하게 포르투갈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여러 해가 지난 후 남편과 함께 브라질 쿠리치바에서 봉사하도록 부름받았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주님께서 우리를 한 번에 조금씩 준비시키고 다듬어가시는 방법은 흥미롭습니다. 그 방법은 항상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더 잘 이해가 되곤 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지니기만 하면 됩니다.”

보니 힐럼은 1964년 3월 11일 미국 아이다호 주 아이다호폴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선교 사업을 마친 후 미국 유타 주 프로보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데릭 레인 코든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우정은 사랑으로 발전하여 1986년 4월 25일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결혼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삼남일녀와 세 명의 손자를 두었다.

두 사람은 수년 동안 교회의 여러 부름을 받아 봉사했다. 그녀는 남편이 브라질 쿠리치바 선교부를 감리하는 동안(2010~2013년) 함께 봉사했으며, 스테이크 청녀 회장, 유아반 지도자, 세미나리 교사, 그리고 와드의 청녀, 상호부조회, 초등회 조직에서 봉사했다.

코든 자매는 새로 맡은 직책을 수행하면서 교회의 초등회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진리,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