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칼레도니아에서 교회의 성장을 기념하다

기사 제공  태평양 지역 공보 선교사인 제프리 라슨 장로와 카렌 라슨 자매 기사 제공

  • 2012년 6월 26일

2012년 5월 27일, 태평양 지역 회장인 칠십인 정원회의 제임스 제이 해뮬러 장로가 뉴칼레도니아에 첫 번째 스테이크를 조직했다. 그의 왼편에 서있는 사람은 1969년 뉴칼레도니아에서 봉사했던 첫 번째 선교사인 제임스 에이 태튼과 라일 더블유 파커이다.

기사 하이라이트

  • 2012년 5월 27일, 뉴칼레도니아에 첫 번째 스테이크가 조직되었다.
  • 새로운 뉴칼레도니아 누메아 스테이크는 2,000 명의 회원들과 8개의 집회소로 이루어져 있다.
  • 뉴칼레도니아의 첫 번째 단위 조직은 1961년 10월에 조직되었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고 받아들임에 따라 뉴칼레도니아의 성도들은 물론 모든 국민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칠십인 정원회 제임스 제이 해뮬러 장로, 태평양 지역 회장

2012년 5월 27일, 뉴칼레도니아에 첫 번째 스테이크를 조직하기 전에 태평양 지역 회장인 칠십인 정원회의 제임스 제이 해뮬러 장로는 이 날을 기점으로 “뉴칼레도니아 교회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우고 받아들임에 따라 뉴칼레도니아의 성도들은 물론 모든 국민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프랑스령인 뉴칼레도니아 섬은 뉴기니아로부터 피지에 이르는 남태평양 지역 멜라네시아의 일부로서, 호주에서 동쪽으로 약 1,50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해뮬러 장로는 1968년 5월 2l일,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이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몬슨 장로로서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했다고 말씀했다.

“만과 누메아 시가 내다보이는,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한 언덕에서 몬슨 회장님은 다른 몇 분과 함께 서계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이 위대한 땅에 하늘의 축복을 기원하셨으며, 이 땅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곳으로 헌납하셨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이곳에서 우리는 그 기도의 성과를 목격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은 또한 이 땅을 사랑하시며, 오늘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새로운 스테이크인 뉴칼레도니아 누메아 스테이크에는 2,000 명의 회원을 비롯하여 8개의 집회소가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조지 구이디를 첫 번째 스테이크 회장으로, 마크 모셀린과 티에리 고로디를 그의 보좌로 불렀다.

“ 이 새로운 스테이크 조직은 교회 회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뉴칼레도니아의 모든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구이디 회장은 말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뉴칼레도니아 국민들에게 복음과 복음의 모든 원리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들과 그들의 가족, 일터와 지역사회에는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대회에는 800명의 교회 회원들이 참석했다. 그밖에 뉴칼레도니아의 전직 주지사인 필리페 고메즈, 의회 의원인 소니아 라가르드, 정부 고관인 엘렌느 이카웨 역시 이 스테이크가 탄생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현지 텔레비전과 신문기자들도 이 행사를 다루었다.

이 스테이크는 1961년 10월 뉴칼레도니아에 소규모 단위 조직이 처음 구성된 지 50여 년 만에 조직되었다. 이 섬의 첫 번째 집회소는 1972년에 세워졌다.

1969년 뉴칼레도니아에서 봉사한 최초의 젊은 선교사들은 제임스 에이 태튼과 라일 더블유 파커였다. 그들 두 사람은 첫 스테이크의 탄생을 보기 위해 그 나라를 방문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은 옛 선교사들은 교회의 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교회 회원 및 친구들과 재회하게 되어 감사했다.

교회 회원인 요민과 마리아 느콰이초우는 특별히 태튼 형제와 파커 형제의 방문을 몹시 기다렸다. 느콰이초우 부부는 오래 전 선교사로 봉사하던 두 사람을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그 부부는 길에서 선교사들을 만났는데 그 장로들은 그들에게 몰몬에 관한 역사가 담긴 책을 주었다. 그 때에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법으로 금했기 때문에, 몇 분 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선교사들과 느콰이초우 부부는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하지만 느콰이초우 부부는 이 젊은 장로들에게 감동을 받았으며, 이렇게 씨앗이 뿌려졌다. 6년 후 법이 바뀌었고, 다른 두 선교사가 그들 집 문을 두드렸다. 느콰이초우 부부는 영을 느꼈으며, 복음의 가르침을 흔쾌히 받아들여 곧 침례를 받았다.

대회 모임 중 해뮬러 장로는 이 초기 선교사들을 칭찬하며 그들을 오늘날의 젊은 선교사들과 비교해 말씀했다.

“나이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헌신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 선교사들은 뉴칼레도니아에 주어진 주님의 약속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뉴칼레도니아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와 그들 인생에서 희생을 바쳤던 모든 선교사를 대표합니다.

뉴칼레도니아의 교회

  • 1943~1946년: 뉴칼레도니아의 첫 번째 회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이곳에 주둔했던 군인들이었다.
  • 1946~1950년대: 1950년대까지는 드러난 교회의 활동이 없었으며, 이때에는 타이티 회원 몇이 니켈 제련소에서 일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했다.
  • 1961년 10월 21일: 누메아 지부가 조직되고 티후마누 마노이가 지부 회장으로 부름 받았다. 이 지부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선교부 소속이 되었다.
  • 1960년대: 비자 발급 제한과 반대로 선교 사업이 수 년 간 지연되었다.
  • 1968년 5월 2일: 토마스 에스 몬슨 장로가 누메아 시와 바다가 내다보이는 마운트코핀 언덕에 서서 복음 전파를 위해 뉴칼레도니아를 헌납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선교부 칼 엠 리차즈 회장과 누메아 지부 티후 마노이 회장이 이 자리에 함께했다.
  • 1968년 7월 15일: 최초의 선교사로 결혼한 부부였던 해롤드 리차즈와 지닌 리차즈가 딸을 데리고 도착했다.
  • 1968년 11월 16일: 당시 13세였던 에티엔느 선이 뉴칼레도니아에서 처음으로 침례 받았다.
  • 1969년 1월 20일: 뉴칼레도니아의 최초의 젊은 선교사로 제임스 에이 태튼 장로와 라일 더블유 파커 장로가 도착했다.
  • 1972년 12월 24일: 누메아 지부 집회소가 헌납되었다.
  • 1975년 6월: 뉴칼레도니아와 누메아 지부가 피지 수바 선교부로 편입되었다.
  • 1976년 5월: 누메아 지부가 분리되고 집회소가 확장되었다.
  • 1977년: 뉴칼레도니아 지방부가 조직되었다. 이 지방부에는 2개 지부, 즉 누메아 지부와 톤투타 지부가 포함되었다.
  • 1982년 2월: 정부가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할당했던 인원 제한을 철회하고 프랑스인이 아닌 네 명의 선교사들에게도 입국을 허용했다.
  • 1992년: 교회 회원 수가 1982년에 비해 2배가 되었다.
  • 2002년: 회원수가 1,631명에 이르게 되었다.
  • 2012년: 태평양 지역 회장인 칠십인 정원회의 제임스 제이 해뮬러 장로가 뉴칼레도니아 누메아 스테이크를 조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