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납일

토마스 에스 몬스 부대관장

대관장단 제1보좌


Thomas S. Monson
주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우리의 가정과 삶을 같은 방법으로 재헌납 할 수는 없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헌납일에 저의 마음과 영혼의 감미로운 느낌을 잘 표현해 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여러분의 마음도 잘 나타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즐겁고 기쁜 날에
거룩한 이름 찬양해
성스럽게 예배 드려
영화롭게 외치세
맑고 청아하게
우리 주님 우리 왕께
환희의 송가 노래 부르세 1

1863년 4월 7일에 찰스 시 리치는 모임 장소인 태버내클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버내클에 관해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우리는 현재 그 같은 건물이 주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미룬다면 언제 건물이 지어지겠습니까? 그 건물을 건축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건물이 주는 축복과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전을 짓든, 태버내클을 짓든, 가난한 자를 도우러 외진 곳에 사람들을 보내든, 우리에게 요구되는 다른 어떤 일을 하든, 똑같은 원리가 우리가 맡고 있고 해야 될 모든 일에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어떠한 일도 우리가 일터에 가서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댈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터에 가서 맡은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2

그들은 가서 일했습니다.

우리의 고귀한 예언자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분은 선견자의 통찰력으로 이 훌륭한 건물이 필요함을 깨닫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일하러 가셨습니다.” 그 결과가 이렇게 오늘 우리 눈 앞에 놓여 있으며 오늘 아침 이 건물은 헌납 될 것입니다.

감사의 상징으로서, 주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우리의 가정과 삶을 같은 방법으로 재헌납 할 수는 없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는 우리의 건물에 대한 의의에 사도적인 통찰을 더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3

개인적으로 자신을 헌납하고 새롭게 다짐해야 하는 일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처한 곤경을 잘 설명해 주는 몇 개의 신문 기사를 잠시 훑어 보겠습니다.

연합 통신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자유 언론이라는 이름 하에 대법원은 성인 전용 케이블 TV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는 연방 법 조항을 철폐했다.”4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 있는 기사입니다. “독일은 유럽 경제의 원동력인지도 모르지만 일요일에는 쉰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압력은 독일의 전통적인 휴일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미국식[주 7일] 쇼핑[이미 그렇게 하고 있음], 24시간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 그와 같이 엄격한 매장 원칙은 “옛 시절의 성곽과도 같이 굳건하다.” 세계의 다른 도시와 경쟁하기 위해 베를린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돈을 더 벌고 싶다’”5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환영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고대의 예언자가 삼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 기록한 내용을 힘들게 배우고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6

존경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우리가 처한 곤경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풍성한 천혜의 수혜자였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습니다. 수적으로, 부와 국력에서도 성장했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우리를 평화롭게 지켜주고 번성케 하고 풍요롭게 하고 강하게 해준 은혜로운 손길을 잊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면서 우리는 이 모든 축복이 자신의 뛰어난 지혜와 덕행으로 인한 것이라고 헛되이 상상해 왔습니다. 깨지지 않는 성공에 취하고 자족이 너무 지나쳐 우리를 보호하고 구속하는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며, 너무 교만해져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기도드리지 않습니다.”7

인생의 바다에 폭풍이 불 때, 현명한 선원은 평화로운 항구를 찾습니다. 옛적부터 알아 왔듯이 가족은 평화로운 피난처입니다. “가정은 의로운 삶의 근거가 되며 다른 어떤 기구도 그 위치를 대신하거나 그 중요한 기능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8 사실상 가정은 집 이상의 것입니다. 집은 목재와 벽돌과 돌로 지어집니다. 가정은 사랑과 희생과 존경으로 만들어집니다. 집은 가정이 될 수 있고 가정은 가족들의 안식처가 될 때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가치와 기본적인 덕행이 사회의 가족들을 뒷받침할 때 희망이 절망을 이기고 신앙이 의심을 이겨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그러한 가치관을 배우고 생활화 할 때 그 가치들은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 같을 것입니다. 사랑이 생길 것이며 가장 훌륭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결심이 고양될 것입니다. 덕성과 성실함과 선함이 자라날 것입니다. 가족은 우리의 생활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이야말로 책임감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미래를 건설하고 현재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가정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와 자매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사는 특징을 띱니다. 또 어떤 가정은 편부모와 한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떤 가정은 한 명으로만 구성되기도 합니다. 가족의 수나 형태가 어떻든 간에 행복한 가정임을 나타내 주는 특성들이 있습니다. 그 특성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생활.

배움의 산실.

사랑의 전통.

이에 관해 미대륙에 살았던 니파이의 동생 야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두터운 신앙으로 구하라.”9

한 저명한 판사가, 우리가 세계 국가 시민으로서 범죄와 불법을 줄이고 우리의 삶과 국가에 평화와 만족을 가져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가족 기도라는 예전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권합니다.”

우리의 생활과 가정을 배움의 산실로 만들어야 하는 일에 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책에서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또 연구와 신앙으로써 학문을 구하라.”10

표준 경전은 제가 말씀 드리는 배움의 산실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 자녀들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우리의 삶은 가족 도서실에 있는 책 가운데 자녀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범은 따를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아들 딸들이, “나는 아빠의 모범을 따르고 싶어요.” 또는 “나는 엄마처럼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활합니까? 서고의 책들은 그 표지에 내용이 가려지지만 우리의 생활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부모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가정 도서실에 있는, 펼쳐진 책입니다.

다음, 우리는 사랑의 전통의 좋은 예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가정은 그렇습니까? 버나딘 힐리는 졸업식사에서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사람들의 임종 순간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려온 의사로서 한 가지 비밀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그들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또한 그들은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가 여러분을 사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고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과거의 삶에 대한 훌륭한 척도가 됩니다. 그것은 가장 가치있는 선물입니다.”11

우리의 주님이신 구세주의 메시지는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승영으로 가는 우리 개인의 길에 빛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꺼져가고 있던 한 아버지는 그가 지상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수 많은 학술 저서를 펴낸 존경 받는 저술가였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을 한 권 덜 쓰고 아이들과 낚시를 더 자주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간은 빨리 흐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 자녀들은 성장했으며 그들이 다시 부모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어디로 갔는가?” 하고 그들은 묻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며 현재의 시간을 정지시킬 수도 없고 현 시점에서 미래를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시간은 미래를 위해 옆으로 제쳐 놓아야 할 것이 아니라 현재 현명하게 사용해야 할 은사요 보화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의 영을 키웠습니까?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관장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참된 몰몬의 가정은,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신다면 기꺼이 머물러 쉬기 원하시는 곳이어야 합니다.”12

우리의 가정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은 그런 가정에 합당합니까?

인생의 여정에는 불의의 재난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생으로 이끄는 이정표를 떠나 우회하지만 결국 그것이 막다른 길임을 알게 됩니다. 무관심, 부주의, 이기심 및 죄는 모두 인간의 삶에서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명되지 않은 이유들로 다른 북소리를 듣고 따라간 후 나중에야 슬픔과 고통을 주는 무책임한 지도자를 따라왔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이 단상에서 전 세계에 있는 분들에게 초대의 말씀을 보냅니다. 지친 여행자들이여, 방황하는 길로부터 나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향해 오십시오. 가정이라는 하늘의 안식처로 오십시오. 그 곳에서 여러분은 진리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 곳에서 여러분은 신회가 실재함을 배우고 구원의 계획이 주는 위로와 결혼 성약의 신성함과 개인적인 기도의 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 오십시오.

어린 시절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납치당하여 먼 곳에 있는 마을로 가게 된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 소년은 그의 실제 부모와 지상의 가정에 대해 모르는 채 성장하여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집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들의 이름만이라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청년의 일이 그토록 절망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필사적으로 그는 유년 시절의 가물거리는 기억들을 더듬었습니다.

섬광처럼 영감이 떠올라 그는 매주 안식일 아침에 마을의 교회 종탑에서 울리던 종소리를 기억해 냈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젊은이는 귀에 익은 종소리를 찾아 다니며 방황하였습니다. 어떤 종소리는 비슷했고 또 어떤 것들은 기억 속의 소리와 아주 달랐습니다.

마침내 지친 젊은이는 어느 일요일 아침 전형적인 한 마을의 교회 앞에 섰습니다. 종이 울리기 시작하자 그는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소리가 귀에 익숙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들었던 다른 종소리들과 달랐습니다. 그것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에서 울리던 종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종이었습니다. 그 울림은 똑같았습니다.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으며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뛰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젊은이는 무릎을 꿇고 종탑 위 하늘을 올려다 보았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억 속의 종소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는 진지하게 구하는 자들의 영혼에 그렇게 울릴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진실하게 울리는 종을 찾아 개인적으로 먼 길을 여행해 오셨습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간청합니다. 선교사들에게 여러분의 문을 여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여십시오. 진리를 증거하는 조용하고 작은 음성을 향해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영혼을 여십시오.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도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13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제가 말씀 드린 그 소년처럼 무릎을 꿇고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축복을 받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참조 보이기

  1.  

    1.  리로이 제이 로버트슨(1896~1971), 찬송가, 38장.

  2.  

    2.  데저렛 뉴스 위클리, 1863년 5월 20일자.

  3.  

    3.  고린도전서 3:16.

  4.  

    4.  리차드 카렐리 “대법원이 TV 성에 대한 제한을 없애다.” 솔트레이크 트리뷴, 2000년 5월 23일, A1.

  5.  

    5.  다니엘 루빈, “세계 경제가 일요일 쇼핑 금지령을 무너뜨리다.” 솔트레이크 트리뷴, 2000년 5월 23일.

  6.  

    6.  전도서 5:10.

  7.  

    7.  제임스 디 리차드슨, 대통령의 메시지와 문서 편집, 10권(1897), 5:3366

  8.  

    8.  대회 보고, 1962년 72쪽.

  9.  

    9.  야곱서 3:1.

  10.  

    10.  교리와 성약 88:118.

  11.  

    11.  “빛과 가치에 관하여: 의학에서 얻은 교훈” 바사 대학교 졸업식 연설, 1994년 5월 29일, 특별 소장품.

  12.  

    12.  대회 보고, 1947년 10월, 120쪽.

  13.  

    13.  이사야 3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