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속죄: 우리의 가장 큰 희망
2001년 10월


속죄: 우리의 가장 큰 희망

“우리의 구원은 속죄를 믿고 받아 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속죄를 더욱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여러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어 오늘 아침 이 연단에 겸손한 마음으로 섰습니다. 그 유례없는 사건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할 바 없는 속죄입니다. 이 사건은 이제까지 일어났던 가장 놀랍고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속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유는 다소 자기 본위적인 생각입니다. 구원은 속죄를 믿고 받아 들이는 데 달려 있습니다.1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속죄를 더욱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속죄는 우리의 본성이 완전해지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우리 인생에서 배움의 길을 촉진시킵니다.2 우리 모두는 죄를 지으며 그 죄값에서 우리가 감당할 부분을 완전히 갚기 위해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구세주의 위대한 속죄가 그 부채의 나머지 부분을 갚는 것입니다.3

바울은 속죄의 필요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4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의 구세주가 되도록 지명되고 예임 되셨습니다. 거룩한 아들이 되시고, 죄 없는 삶을 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그 후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써, 그분은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또 온 인류를 위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5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에 관해 이해하는 것이 그분과 그분의 사명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6 그분의 속죄 희생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우리는 그분께 더욱 가까워집니다. 문자 그대로 속죄는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속죄의 본질과 그 효과는 참으로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너무 심오하여 필멸의 인간이 지닌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넘어섭니다. 저는 구원하는 은혜의 원리에 대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기만 하면 은혜만으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여한히 노력하더라도 다만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구원받게 됨을”7 알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어떤 선생님도 다룰 수 없는, 매우 거친 소년들이 다니는 버지니아 주의 한 산골 학교 교실”을 “한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경험없는 젊은 선생님이 지원했습니다. 그는 모든 선생님들이 끔찍한 대우를 받았다고 들었으나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수업 첫날 그 선생님은 소년들에게 스스로 자신들이 지킬 규칙과 그것을 어겼을 때 받을 벌칙을 정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10가지 규칙을 정했으며, 그것을 칠판에 적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물었습니다. ‘이 규칙들을 어기는 사람은 어떻게 하지?’

“상의를 벗기고 등을 열 대 때려요.”라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며칠 후 … 톰이란 이름을 가진 덩치 큰 학생의 점심을 누가 훔쳤습니다. ‘훔친 학생은 10살 가량 된 배고팠던 어린 학급 친구였습니다.’

“꼬마 짐은 매를 맞으러 나오면서 자신의 상의를 입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상의를 벗거라’ 그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도 같이 규칙을 만들었잖니!’

“소년이 상의를 벗었습니다. 속옷을 입지 않은 앙상한 몸이 드러났습니다. 선생님이 매를 들고 잠시 머뭇거리자, 덩치 큰 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소년의 매를 대신 맞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좋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맞을 수 있는 규칙이 있다. 모두 동의하는가?’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톰의 등에 다섯 대를 때리자, 매가 부러졌습니다. 반원들이 모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꼬마 짐은 두 손을 올려 뻗어 톰의 목을 끌어 안고 말했습니다. ‘톰, 네 점심을 훔쳐 미안해. 배가 너무 고팠어. 톰, 내 대신 매를 맞아 준 너를 평생 동안 사랑할거야! 정말이야, 영원히 너를 사랑할거야!’”8

그런 후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9

어느 누구도 구세주께서 지신 그 짐의 무게를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성신의 권세로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은사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10 성찬 찬송에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주께서 당하신 고통

다 알 수 없으나

우리 위해 달리시고

수난 겪으셨네.11

그분은 우리를 위해 크나 큰 고통과 “말로 표현 못할 번민”과 “감당키 힘든 고문”12을 겪으셨습니다. 모든 필멸의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으셨던 격심한 수난은 그분을 “고통으로 떨게 하였고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게 했으며 육체와 영혼이 다 괴로움을”13 당하게 했습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14하시며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하셨으며 베드로는 그분을 부인했습니다. 그분은 대제사장들과 재판관들에게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재판장에서 옷을 벗기우고 매를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16

그리고 골고다로 끌려가 그곳에서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빌라도가 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17이라는 팻말이 달린 나무 십자가에 여러 시간 고통을 겪으시며 달려 계셨습니다. 어두움이 몰려오고 “제 구시 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18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분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습니다.19 그런 후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셨습니다.”20 그러자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21 나왔습니다. “땅이 진동하”였고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22라고 했습니다. 찬송가에는 이러한 가사가 있습니다. “우리 위하여 피흘리사 죽으신 주 잊지 않게 합소서”23 저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핏방울이 떨어졌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분이 하신 일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육으로 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예수께서는 신성한 속성을 이어 받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행위를 수행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이 지상에 살면서도 죄가 없었던 유일한 사람으로서, 영적인 죽음에도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신성으로 인해 육체적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권세 또한 가지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 행하셨습니다. 죽음의 차가운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또한 성신의 은사에서 오는 가장 훌륭하고 평온한 위안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24

속죄와 부활은 많은 것을 성취했습니다. 회개를 조건으로 하여, 속죄는 우리의 죄를 씻어 줍니다. 회개는 자비가 베풀어지는 조건입니다.25 우리가 호리라도 갚고 잘못을 바르게 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고 난 후에, 구세주의 은혜가 구세주의 속죄를 통해 우리 생활에서 작용하게 되는데, 이 속죄는 우리를 정결케 하고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26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극복했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27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은 무조건적이며 이 세상에 이제껏 살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28 이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존 테일러 대관장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를 잘 설명하셨습니다.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나아올 것인데,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의인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불의한 자의 부활로 나아올 것입니다.”29

이 세상에서의 행위와 속죄에 관해 말씀하시며,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 부대관장님은 다음과 같은 귀중한 통찰력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구세주께서] 우리가 한 범법에 적합한 가장 최소한의 벌을 내리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이 가지신 … 무한한 사랑과 축복과 자비와 친절과 이해를 그분의 공의에 더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

“한편으로, 우리의 선한 행위에 대해 보상하실 때는 우리가 범한 위반 사항들을 염두에 두시면서, 주실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30

이사야가 적었듯이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간다면, “그가 널리 용서”31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 성찬을 취하여 중재, 십자가에 달리심, 그리고 속죄의 이 중대한 사건들을 기억하라는 계명을 받았습니다. 성찬 기도의 영으로, 우리를 위해 희생된 몸과 피를 기억하여 빵과 물을 취하며, 언제나 그분의 영이 우리들과 함께 하실 수 있도록 그분을 기억하고 또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구세주는 지금까지 살아 왔고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죄, 고통, 연약함과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32 어느 누구도 주님이 겪으신 만큼의 고통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분은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시도하다가 겨우 몇 미터를 올라간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산 정상까지 8,640미터를 다 올라 가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속죄는 죄인에게 뿐만 아니라 죄의 대상이 된 사람, 곧 피해자에게도 또한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에게 죄를 범한 사람들을” (요셉 스미스역, 마태복음 6:13) 용서함으로써, 속죄는 다른 사람들의 죄로 무고하게 희생되어 온 사람들에게도 화평과 위안을 가져다줍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개인적인 비극에서 오는 고통이든 최근에 뉴욕과 워싱턴 디 시와 피츠버그 인근에서 일어난 처참한 국가적 재난에서 오는 고통이든 관계없이 모두 그렇습니다.

고통스런 이혼의 과정을 겪은 한 자매는 속죄로 인해 얻은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혼은 … 용서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참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제가 전혀 할 수 없는 일을 명받은 것만 같았습니다.” 감독은 그녀에게 훌륭한 조언을 했습니다. “마음 속에 용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세요, 그리고 용서가 찾아오면 그 안으로 기꺼이 맞이하세요.” 용서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 기나긴 기도의 시간 동안 … 저는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안을 주는 생명의 근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아직 용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를 노려보며 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울 때 함께 슬퍼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최종 분석을 해볼 때, 제 마음 속에 일어난 일은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놀랍고도 기적적인 증거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속죄를, 죄인을 위해 회개의 효력이 작용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보아왔습니다. 속죄가 죄의 희생자가 된 사람의 마음 속에도 용서의 감미로운 평안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33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구세주께서 “인간들의 연약함을 … 구해”34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짐을 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어떤 상처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깊어서 더욱 위대한 권세로부터 오는 도움과 완전한 공의와 내세에서의 보상에 대한 희망없이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구세주께서는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모두 겪으셨기 때문에,35 연약한 자가 더욱 강해지도록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들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며 가장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와 함께 걸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속죄의 궁극적인 축복, 곧 그분과 하나가 되고, 그분의 거룩한 면전에 거하며, 개인적으로 하나하나 이름 부르는 가운데 환한 미소를 띤 주님께서 따뜻하게 집으로 맞아주시고, 끝없는 사랑의 품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축복을 갈망합니다.36 주님의 면전에 함께 하기에 합당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이 경험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훌륭하겠습니까! 우리 개개인에게 대가없이 주어진 속죄 희생의 은사는 우리가 승영하여 그분 앞에 서고 또 그분을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속죄의 이 위대한 메시지는 구세주께서 우리 개개인과 모두에 대해 갖고 계시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자비, 인내, 은혜, 공평, 오래 참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서로 가득한 사랑입니다.

사탄의 악한 영향력은 우리가 실수들을 극복하면서 갖게 되는 어떤 희망도 없애려 할 것입니다. 우리가 패배했으며 희망은 전혀 없다고 느끼게 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손을 뻗쳐 우리를 들어올리십니다. 회개와 속죄의 은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면전에 서기에 합당하게 되도록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모사이야서 4:6~7 참조.

  2. 모로나이서 10:32 참조

  3. 니파이이서 25:23 참조.

  4. 고린도전서 15:22.

  5. Bible Dictionary, “Atonement”, 617쪽 참조.

  6. 야곱서 4:12 참조.

  7. 니파이이서 25:23.

  8. “Pres. Hinckley: Christmas a Result of Redeeming Christ”, 처치 뉴스, 1994년 12월 10일, 4쪽.

  9. 이사야 53:4~5.

  10. 고린도전서 12:3 참조.

  11. “저 멀리 예루살렘 성”, 찬송가, 112장.

  12. 존 테일러, The Mediation and Atonement (1882), 150쪽.

  13. 교리와 성약 19:18.

  14. 누가복음 22:44.

  15. 마태복음 26:42.

  16. 마태복음 26:47~75; 27:28~31.

  17. 요한복음 19:19.

  18. 마태복음 27:46.

  19. 교리와 성약 133:50 참조.

  20. 마태복음 27:50.

  21. 요한복음 19:34.

  22. 마태복음 27:51, 54.

  23. “겸손하게 기도하오니”, 찬송가, 113장.

  24. 요한복음 15:26 참조.

  25. 앨마서 42:22~25 참조.

  26. 니파이이서 25:23; 앨마서 34:15~16; 42:22~24; 모로나이서 10:32~33 참조.

  27. 요한복음 11:25.

  28. 사도행전 24:15 참조.

  29. The Gospel Kingdom, G. Homer Durham 편집(1943), 118쪽; 요한복음 5:28~29 참조.

  30. “As Ye Sow …”, Brigham Young University Speeches of the Year (1955년 5월 3일), 7쪽.

  31. 이사야 55:7.

  32. 앨마서 7:11~12 참조.

  33. Name Withheld, “My Journey to Forgiving”, 엔사인, 1997년 2월호, 42~43쪽.

  34. 앨마서 7:12.

  35. 앨마서 7:11 참조.

  36. 앨마서 26:15; 몰몬서 5:11; 6:17; 모세서 7:6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