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2002년 10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저희 가족이 함께했던 활동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지 순례 여행이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지는 지금 혼란의 도가니이며, 영적으로 풍성하게 되기 위해 그곳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사실상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테러 행위로 인해 전세계 곳곳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테러라는 적을 두려움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위험한 시대는 경전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이웃 나라의 땅에 불과 태풍과 연기의 안개가 덮[이며] …” “… 그 날에 여러 곳에서 전쟁과 전쟁의 소문과 지진이 들리[고] …”, “참으로 심한 부패가 [일며]…온갖 가증한 악행이 있[는] …” 시대로서 예언되어 있습니다.1

그 예언은 이 지상 위에 살았던 인류의 두 번째 세대2에 대한 초기 경전상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 그 즈음 사탄이 사람들 가운데서 위세를 떨치고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었더라, 그 때부터 전쟁과 유혈의 참극이 벌어지며 권세를 탐하[여] … 자기 형제와 다투며 살인하니라.”3 가인과 아벨4, 에서와 야곱5 그리고 애굽으로 팔려 갔던 요셉6의 시대로부터, 적개심의 불길은 가족 간의 다툼으로 인해 커져만 갔습니다.

형제들과 이웃들 간의 증오로 인해 이제 성스러운 도시들은 슬픔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곳의 비참함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옛 잠언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7

경전은 다음과 같이 인간 혐오증에 대한 원인과 치유 방법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무릇 육으로 난 인간은 아담이 타락한 때로부터 하나님의 적이요, 성신이 인도하시는 대로 맡겨 육으로 된 자기를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도가 되며 …”8

다투고자 하는 타고난 성향이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결정에 의해 대체될 때에만 평화가 우세할 수 있습니다. “평강의 왕”9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은 지상에서의 평온과 사람들 사이에서의10 호의로 이끄는 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11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서로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큰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12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13 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14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황금률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15 이 원리는 거의 모든 주요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인물들 또한 이 원리를 가르쳤습니다.16 어쨌든 복음은 베들레헴에서의 아기 예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은 태초에 아담과 이브에게 선포되었습니다. 복음의 일부분들이 여러 문화 속에서 보존되어 왔습니다. 심지어는 이방인의 신화들조차도 초기 경륜의 시대에 있었던 진리의 단편들을 통해 영향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어느 곳에서 발견되든 또는 어떻게 표현되든 간에 황금률은 하나님의 왕국의 도덕적 규범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 단체 및 개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정심과 인내심으로 인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17라고 하는 복수의 욕망을 없애 줍니다. 우리가 만일 그 낡고 비생산적인 복수의 길에 머무른다면 우리 모두는 눈 멀게 되고 이를 잃게 될 것입니다.18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개념은 쉽게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지닌 값진 천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19 경전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 서로 싸우거나 다투지 아니하고, 죄의 주인[인] … 악마를 섬기지 아니하[고]”, “…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웁기를 가르[치라]”20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 개인의 분쟁에 대한 조정과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21라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교사이셨던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

“하지만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의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않으시리라”22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모든 개인들은 자신들의 지상에서의 삶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해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23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이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참된 형제, 자매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은 분쟁과 전쟁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경전은 침략적인 전쟁을 강하게 비난하는 반면 자신들의 가족과 자유를 방어하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책임은 지지하고 있습니다.24 왜냐하면 “우리는 왕, 대통령, 통치자, 장관에게 순종함을 믿으며 또한 법률을 존중하고 지키며 지지함을 믿[기 때문입니다.]”25 이 교회 회원들은 여러 나라에서 군복무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곧 정부는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제정된 것으로 믿노니, 하나님께서는 사회의 복리와 안전을 위하여 법률을 제정하며 이를 집행함에 있어 정부에 대하여 취하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간에게 지으신 줄로 믿[습니다.]”26

이 교회의 회원들이 적대 세력에 대항해 전투를 벌여야만 했던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대관장단은 다음과 같이 확실히 말했습니다. “정부는 시민들의 정치적 복리와 국내 및 해외에서의 정치적 정책들을 진행시켜 나가기 위해 국민들을 규제할 책임을 지니지만 … 교회는 회원들에게 자신의 조국에 충성하도록 촉구하는 것 외에는 그러한 정책에 대해 달리 책임지지 않습니다.”27

지상에서의 오랜 전쟁의 역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평화란 불가능한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평화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세계의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적 확신을 저버리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유대인이건, 이슬람 교도이건, 혹은 다른 기독교 인이건 힌두교인, 불교인, 또는 그 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건 서로 칭찬하고 존경하며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다른 점보다는 공통점을 휠씬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구약전서의 예언자들은 평화가 가능한 것으로 믿었으며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28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시며]”29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선조 아브라함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벗”으로 불리었습니다.30 평화는 아브라함의 가장 높은 우선 순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평화의 왕”31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영향은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은 비록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공통의 목적을 추구할 때에 자신들의 차이점을 극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고 난 후, 그들은 자신들의 승영한 아버지의 시신을 장사 지내기 위해 협력했습니다.32 그들의 자손들은 그 모범을 잘 따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신성하게 정해진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루겠으며33 아브라함의 씨인 이삭과 야곱이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축복하게 될 것이라고34 선언하셨습니다.

따라서 무궁한 영향력의 위대한 약속을 위탁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중재자로서 나서야 할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으므로 그 자손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잠재력을 평화를 향해 쏟을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정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협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추구해 간다면 그 과정이 크게 향상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우리 시대에 대해 희망적인 예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집합과 예언자 요셉 스미스를 통한 교회의 회복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라”35

이 희망의 예언들은 각 국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용한다면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는 유례없는 평화와 발전의 시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야만성은 묻힐 것입니다. 그 끔찍한 전쟁은 희미한 기억이 될 것입니다. 각 국의 목표는 상호 보완적이 될 것입니다. 중재자가 교섭의 묘미를 발휘할 것이며, 궁핍한 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의 세대들은 그러한 애국자들을 칭찬할 것이며 우리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우리의 창조주, 구세주, 여호와 및 심판자로 계시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훌륭한 삶, 풍성한 삶 그리고 영생을 제공해 주십니다. 평화스러운 삶, 또한 번영된 삶은 그분의 권고에 따르며,36 평화를 향한 그분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올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전세계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인 우리에게 주님이 기대하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 전체로 우리는 “싸움을 버리고 평화를 선포”37해야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화평의 일을 … 세우는 일[에] 힘[써야]”38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부로서, 가족으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황금률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에브라임 자손들의 기록들과 합쳐진 유다 자손들의 기록들도 지니고 있습니다.39 우리는 그 경전들을 활용하여 전 인류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들과 친구들에게 회복된 종교의 계시된 교리들과 신성한 사랑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기회에 따라 그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리들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옳은 것을 수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흩어졌던 이스라엘을 계속 모아야 하며 가족들을 영원히 함께 인봉해 주는 의식과 성약들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든 백성들에게 가져다 주어야 하는 축복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의 주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0

우리의 대업은 하나님의 위대한 대업입니다. 우리의 대업은 모든 인류를 위한 영원한 영광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워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

  1. 몰몬서 8:29~31; 또한 디모데후서 3:1~7, 12~13; 교리와 성약 45:26~27 참조.

  2. 아담과 이브의 아들인 셋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감.

  3. 모세서 6:15.

  4. 창세기 4:8~10 참조.

  5. 창세기 27:41 참조.

  6. 창세기 37:28 참조.

  7. 잠언 29:8.

  8. 모사이야서 3:19.

  9. 이사야 9:6.

  10. 누가복음 2:14 참조.

  11. 마태복음 5:9; 또한 니파이삼서 12:9; 요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5:11 참조.

  12. 마태복음 22:37.

  13. 마태복음 22:39; 또한 누가복음 10:27; 교리와 성약 59:5~6 참조.

  14. 마태복음 5:44.

  15. 마태복음 7:12; 또한 누가복음 6:31; 니파이삼서 14:12 참조.

  16. B. H. Roberts, New Witnesses for God (1909~1911년), 3:492~3493쪽 참조.

  17. 마태복음 5:38; 또한 출애굽기 21:24~27; 레위기 24:20 참조.

  18. Joseph Stein, Fiddler on the Roof (1964년), 142쪽 참조.

  19. 마태복음 25:40; 교리와 성약 18:10 참조.

  20. 모사이야서 4:14~15.

  21. 마태복음 5:22~24; 또한 니파이삼서 12:22~24; 요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5:24~26 참조.

  22. 마가복음 11:25~26; 또한 요셉 스미스 역, 마가복음 11:27~28 참조.

  23. 마태복음 12:36 참조; 로마서 14:10~12; 요한일서 4:16~21; 앨마서 41:3; 니파이삼서 27:16~22 참조.

  24. 앨마서 43:45~47; 46:11~12, 19~20; 48:11~16 참조.

  25. 신앙개조 제12조.

  26. 교리와 성약 134:1.

  27. James R. Clark, comp. Messages of the First Presidency of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6 vols. (1965~1975), 6:155~56.

  28. 시편 46:1.

  29. 시편 46:9.

  30. 야고보서 2:23; 또한 역대하 20:7; 이사야 41:8 참조. 오래 전에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천대”까지 적용될 성약을 아브라함과 맺으셨다.(신명기 7:9; 또한 역대상 16:15; 시편 105:8 참조) 그 성약은 말일에 실현될 것이다.(니파이일서 15:13, 18; 교리와 성약 124:58; 132:30 참조).

  31. 아브라함서 1:2.

  32. 창세기 25:9 참조. 아브라함의 원 이름인 아브람은 “승영된 아버지”란 의미이다.(Bible Dictionary, “아브라함,” 601쪽 참조).

  33. 창세기 21:13, 18 참조.

  34. 창세기 17:19; 21:12; 22:18; 28:13~14; 35:9~12; 출애굽기 32:13; 신명기 9:5; 아브라함서 2:11; 요셉 스미스역, 창세기 17:25 참조.

  35. 이사야 11:11~12; 또한 로마서 15:12 참조.

  36. 역대하 20:20; 마태복음 6:24~33; 요한복음 10:10; 니파이일서 2:20; 4:14; 니파이이서 1:9, 20; 4:4; 예이롬서 1:9; 모사이야서 1:7; 2:22, 31; 앨마서 9:13; 36:1, 30; 37:13; 38:1; 48:25; 50:20; 힐라맨서 3:20; 교성 64:34 참조.

  37. 교리와 성약 98:16.

  38. 로마서 14:19.

  39. 에스겔 37:16~19; 니파이이서 3:12 참조.

  40. 이사야 4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