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마무리된 이야기
2004년 4월


마무리된 이야기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쓰고, 계속해서 걷고, 계속해서 봉사하며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제 우편함에 커다란 흰 색 봉투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오래 전에 제가 가르쳤던 지미라는 한 소년이 쓴 이야기가 들어 있었는데, 그 당시 그 아이는 6학년이었습니다. 문득 그 학생과 그 반 학생들이 여러 달 동안 하던 과제가 생각났습니다. 그 학생은 글쓰기를 좋아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앉아 있곤 했습니다. 때로는 한두 단어 밖에 적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종종 휴식 시간에도 글을 썼지만 마감일이 되었을 때는 분량이 모자랐습니다. 저는 그에게 그냥 제출하라고 말했지만, 지미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그 아이는 여름 방학 동안에 과제를 마무리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시 한번 그냥 내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좀더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고, 저는 결국 그 아이의 의지를 칭찬하고,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그를 격려하며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구겨지고 얼룩덜룩한 종이 뭉치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 해 여름 저는 그 아이에 대해 생각했지만, 그 과제에 대해서는 여러 해 동안 잊고 있다가 뜻하지 않게 우편함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으며 어떻게 해서 지미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짓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일에 어떤 비전과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또한 아무도 끝내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데도 왜 우리는 힘든 일을 끝내려 하는 것일까요?

남 편의 증조부이신 헨리 클레그 이세는 무엇이든 마무리를 잘하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최초의 말일성도 선교사들이 영국의 프레스턴에 왔을 때 가족과 함께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헨리는 아내 한나와 두 어린 아들과 함께 유타로 이주할 때 자신의 목적지에 관한 비전을 마음속에 갖고 있었습니다. 헨리는 길고 고단한 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힘이 부족하고 연로한 부모님을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분들을 뒤로하고 떠났습니다.

평 원을 지날 때 한나가 콜레라에 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표시도 없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일행은 계속해서 여행을 했고 그 날 저녁 6시에 헨리의 막내 아들 또한 숨졌습니다. 헨리는 한나의 무덤으로 되돌아가서 어린 아들을 아내의 팔에 품어 주고는 두 사람을 함께 다시 묻었습니다. 그런 후 헨리는 8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차 행렬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자신도 콜레라로 고통 받던 헨리는 자신의 상태를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말로 표현했으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약 천 마일(약 1,600 킬로미터)이나 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한 발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한나와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그는 몇 주 동안 일지를 적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다시 일지를 적기 시작했을 때 그 분께서 사용했던 “계속 나가고 있음”이라는 말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드 디어 성도들의 집합지인 유타에 도착한 뒤 그는 새로운 가족을 가졌습니다. 그는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아내와 아들을 묻은 비통함에서 앞으로 나아가 끝까지 마치는 우리 가족의 유산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헨 리 클레그와 같은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종종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에도 개척자 유산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기에, 때때로 저는 이런 질문이 두렵습니다. 최근에 서아프리카를 방문한 저는 앞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교회에 들어오고, 오래된 전통을 뒤로하고, 심지어는 헨리처럼 가족과 친구를 뒤로하는 현대의 개척자들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제 조상들에게 드리는 만큼의 커다란 찬사와 사랑을 그 분들께 드립니다.

다 른 사람들의 어려움이 우리 자신의 어려움 보다 더 힘들게 보이십니까? 우리는 종종 엄청난 책임을 갖고 있는 어떤 사람을 보고는 “나는 도저히 저렇게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똑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책임의 크기라기보다는 아직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자녀들을 가진 젊은 어머니의 경우, 밤낮으로 그들을 돌보는 것이 마치 천 마일을 걷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상호부조회에서 연로한 자매들이나 젊은 자매들이나, 경험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자매들에게 공과를 가르치는 것은, 특히 주제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그에 따라 그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부산하게 움직이는 6살짜리 아이 열 명이 있는 반을 가르치는 것은 기진맥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6살 된 여러분의 자녀가 그 반에 있어 여러분이 그 아이를 일대 일로 가르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어린 지미, 초기의 개척자들, 전세계에 있는 현대의 개척자들을 통해 구체적인 어려움 속에서 도움이 되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지 미는 마감일도 없는 글을 쓰면서 여러 해를 보냈고, 헨리 클레그는 일지조차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홀로 나아갔으며, 아프리카 성도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세워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성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생활을 했습니다. 계속 나아가고, 충실하게 견디며, 마무리하는 것에는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했습니다.

여 러 해 전에 제 딸애가 밖으로 나와서 함께 공놀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딸애는 제게 막대기에 달려 회전하고 있는 끈 한쪽 끝에 매달린 공을 자기가 계속해서 때리는 것을 구경하라고 말했습니다. 끈을 여러 차례 감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제가 이 놀이에서 엄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자 딸애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공이 막대기 주위를 회전할 때마다 그저 ‘잘했어, 잘했어’라고 말하면 돼”

“잘 했어!”라는 말은 여행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초등회 반에 있는 한 여섯 살짜리 아이의 어머니가 초등회 교사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린 여동생이 차량용 어린이 의자에 앉도록 세심하게 도와 주었다고 알려 주며, 초등회 교사의 공과가 이런 새로운 행동의 자극이 되었다고 감사해 하는 것은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우 리 각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서 끝내야 하지만, 격려의 말이 분명하게 주어질 때, 그 여행이 얼마나 오래 전에 시작되었건 간에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값있게 여겨질 것이며, 축하를 받을 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대단히 감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 리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요 중재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앞에 앞서갈 것이므로 너희 오른편이나 왼편에도 있으리라. 나의 영은 너희 마음에 있겠고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 주리라.”(교리와 성약 84:88)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이런 말씀을 우리 각자의 여행길에 갖고 싶지 않겠습니까?

헨 리 클레그는 충실한 성도들 가운데 살고자 앞으로 계속 나아갔으며,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의로운 가족을 만들고, 이웃에게 봉사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심히 괴로울 때에도 그런 바람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매일 의를 선택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는 질문에 가나에서 온 한 초등회 어린이가 “그것은 매일 주님과 구세주를 따르고 어려울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현대의 개척자 소년은 힝클리 대관장님의 권고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매일 계명을 지키는 것에 관해 알았습니다. 그 어린이는 단순히 매일 한 발씩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지 난 가을에 저는 스페인어로 제작된 비디오를 통해 초등회 모임을 개발하고 가르치는, 훌륭하고도 어려운 과제를 맡았습니다. 예전에 잠시 스페인어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해 왔기에 스페인어를 다시 배운다는 것이 힘들게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어렵게 느껴지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누구나 하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저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스페인 혈통의 자매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오랫동안 연구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주님께서 요청하신 것을 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우리는 두려웠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자료가 배포되는 순간까지 일했으며,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었습니다. 남편들은 우리 각 사람에게 신권의 축복을 주었고 평안과 평온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녹음되는 동안 매 30분마다 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계에 알람 기능을 설정해 놓았던 사랑하는 남편, 눈으로 “잘했습니다”라고 알려 주었던 카메라맨, 영이 역사함을 믿었고 또 권세를 갖고 영을 전할 수 있었던 초등회 지도자들이, 마치 천사들처럼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비디오 촬영을 끝냈습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놀랐고, 한결같이 성공리에 끝나게 된 것을 감사히 여겼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일했고, 때로 우리가 끄는 손수레를 포기하고 길가에 주저앉으려고 할 때에는, 천사들이 뒤에서 어느 정도 밀어 주었습니다.

이 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우리는 헨리 클레그 이세와 지미가 배웠던 것과 똑같은 교훈, 그리고 현대의 모든 충실한 개척자들이 배우고 있는 것과 똑같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누가복음 1:37 참조)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분은 그분의 영을 보내시고, 우리는 서로서로 큰소리로 격려하지만, 우리 각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쓰고, 계속해서 걷고, 계속해서 봉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계속해서 나아감”은 인생의 여정에 있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끝마무리를 잘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히브리서 12:2 참조) 그분의 아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가운데 끝마무리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