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하나님이 지니신 사랑의 힘
2004년 10월


하나님이 지니신 사랑의 힘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두려움을 없애고, 거리낌 없이 용서하고, 논쟁을 피하고, 힘을 새롭게 하며,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모든 마음을 감동시키는 참된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합니다”라는 간단한 말이 왜 그처럼 보편적인 기쁨을 불러일으킬까요?

사 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지상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것이 참된 이유입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과 소망을 갖고 태어납니다. 우리가 전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유대감 중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으며 우리도 그분들을 극진하게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막으로 인해 기억하지 못하지만, 참된 사랑을 느낄 때면 부정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게 됩니다.

참 된 사랑에 반응하는 것은 바로 우리 존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전세에서 느낀 사랑을 이 곳에서 다시 경험할 수 있기를 선천적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 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를 채우며, 따라서 우주에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사랑을 느끼기에 필요한 것들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의가 부족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우리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누가복음 10:27) 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 나님께 더 순종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더 도울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께 더 불순종하고 더욱 이기적인 사람이 될수록, 우리는 더 적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 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서 영원한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빈 컵을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할 수는 있지만 갈증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먹지 않고 살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언자 몰몬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라 영원히 참을 것이요, 누구든지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인정을 받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잘되리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며”(모로나이서 7:47~48)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자 하십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젊 은 선교사로서 저는 남태평양의 외딴 지역에 있는, 주민이 700명 정도 되는 작은 섬에서 봉사하도록 지명 받았습니다. 더위는 숨막힐 듯했고, 모기도 끔찍했으며, 어디를 가나 진창이었고, 언어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으며 음식도 너무 달랐습니다.

설 상가상으로 몇 달 후, 강력한 허리케인이 불어 닥쳐 우리가 사는 섬은 엄청나게 황폐화되었습니다.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으며, 가옥이 바람에 날아가고, 외부 세계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전신국마저 파괴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작은 배가 일반적으로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오기 때문에 우리는 배가 오기를 희망하며 4~5주 정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아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배는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습니다. 매우 친절한 행동들이 있었지만, 적은 식량으로 여섯째 주와 일곱째 주를 보내면서 우리의 힘은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본토인인 제 동반자 페키는 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지만 8주째가 시작되면서 저에게는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무 그늘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경전을 읽었으며 여러 시간 동안 영원한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9 주째가 되었을 때에도 외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사랑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이 느꼈으며 그분의 사랑이 “어느 것보다도 얻고자 하는 것이[며] …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니파이일서 11:22~23)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쯤, 저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저는 큰 경외심으로 심장이 고동치는 것과, 폐가 호흡하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의 놀라운 영이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육체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구세주의 사랑, 속죄의 희생,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이 두 원소의 영원한 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너무나 영감에 차고 만족스러운 것이어서 신체적인 불편은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 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누구이며,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때,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러한 진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될 때,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우리의 염려는 사라집니다. 권력, 명예, 혹은 부가 중요하다고 하는 사탄의 거짓말에 우리가 실제로 속는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더라도 정말 어이없는 일인 것입니다.

저 는 로켓이 우주에 진입하기 위해 중력을 극복해야 하듯이, 우리도 이해와 사랑의 영원한 영역에 오르기 위해서는 세상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필멸의 삶이 그 선교 임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삶은 계속되며 이생이든 내세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얼마나 사랑을 지녔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랑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현세와 영원에서의 우리의 기쁨이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러한 생각이 제 영혼을 채우고 고양시켜 줄 때, 저는 어떤 흥분된 목소리를 차차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 동반자인 페키가 흥분해서 외쳤습니다. “콜리포키, 배가 왔어요. 음식을 가득 실은 배입니다. 우리는 살았어요. 장로님은 흥분되지 않나요?” 저는 확실친 않았지만 배가 온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었음에 틀림없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저는 기뻤습니다. 페키는 제게 음식을 주며 말했습니다. “자, 먹어요.” 저는 주저했습니다. 음식을 바라보고, 페키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습니다.

저 는 마음속 깊이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전처럼 지상에서 저의 삶이 계속되리라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도경하는 듯한 느낌 곧 연기됨에 대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어둠이 아주 멋진 석양의 찬란한 빛을 덮어 갈 때, 그러한 아름다움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다음날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때처럼 말입니다.

제 가 눈을 뜨고 싶어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눈을 떴을 때,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위, 진창, 모기, 사람들, 언어, 음식들이 더 이상 어려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해하려 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저의 적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의 형제와 자매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다는 것은 모든 일 가운데 가장 기쁜 일이며 어떤 대가라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저 는 이러한 선택된 시기와 해, 달, 별, 지구, 아이의 탄생, 친구의 미소와 같이 그분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많은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경전, 기도의 특권,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가장 잘 일깨워 주는 성찬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참뜻을 가지고 성찬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 지혜와 사랑”이나 “지극히 날 사랑하니 나도 사랑하고”(찬송가, 107장, 112장)와 같은 구절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랑과 감사로 부풀게 하고,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성찬 기도를 할 때, “항상 그를 생각하여”,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그의 영이 저희와 함께하시도록”(교리와 성약 20:77, 79)과 같은 구절들은 우리의 마음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벅찬 소망으로 채울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애통하는 마음과 상한 심령으로 빵과 물을 취할 때, 우리는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와 같은 가장 놀랄 만한 말씀을 느끼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느낌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세상의 유혹은 강하며 우리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사랑하십니다.

제 가 다시 힘을 얻고 나서 몇 달 후, 우리에게 또다른 태풍이 불어왔는데 이번에는 바다에 있을 때였습니다. 파도가 너무나 거세어 우리의 작은 배는 전복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세 명은 노하여 요동치는 바다에 빠졌습니다. 성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저는 놀라고, 두렵고, 약간 당황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선교사인데, 나는 어디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선교사는 수영을 해서는 안 되는데.”

그 러나 살기 위해선 수영을 해야 했습니다. 불평을 할 때마다 저는 물속에 파묻혔고 그래서 곧 불평은 그쳤습니다. 매사는 그 순리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며, 불평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해안까지 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글 스카우트 상을 받은 저는 수영에 꽤 자신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과 파도가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근육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 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으나 여전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을 향해 가라앉고 있을 때, 주님은 제 생각과 마음에 매우 특별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느낌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마치 제가 그녀를 보고 그녀(특별한 사람)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멀리 12,8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그 사랑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머나먼 거리를 달려와, 깊은 어둠과 절망, 그리고 죽음에서 저를 끌어냄으로써 빛과 생명과 희망이 있는 곳으로 건져 냈습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힘으로 저는 해안까지 갈 수 있었고 배에 같이 있던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결코 참된 사랑의 힘을 과소 평가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참된 사랑 앞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 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행하거나 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행하고, 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두려움을 없애고, 거리낌 없이 용서하고, 논쟁을 피하고, 힘을 새롭게 하며, 자신에게조차도 놀라운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예 수 그리스도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잔인함, 그리고 부당함을 우리를 위해 견디어 내셨듯 깊은 사랑으로 가득 차 계십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그분은 다른 방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셨습니다. 그분의 사랑 앞에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고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취하여, 우리도 이 세상의 고통과 잔인함, 그리고 부당함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용서하고 축복하라고 권유하십니다.

저 는 그분이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곳에서 지금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이 우리의 중심을 꿰뚫는 완전한 온유함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미소 짓고 계시며, 동정심과 사랑을 가득 지니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온유함, 친절, 자비, 그리고 돕고자 하는 소망을 가득 지니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합니다. 저는 우리가 준비될 때, 그분은 그분의 순수한 사랑으로 즉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손길을 미치시고, 우리가 요동치는 어둠의 깊은 바다, 죄, 슬픔, 죽음 또는 절망에 처해 있을지라도 우리를 끌어올려 빛과 생명과 영원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