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2008년 4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 함께 살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와 똑같은 담대한 메시지를 세계 여러 곳에서 봉사하는 우리의 전임 선교사들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생을 위한 다섯 가지 재료의 조리법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조리법을 따른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런 후에 각 재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영생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모세서 1장 39절에서 우리는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것이 주님의 일이요 영광이라고 배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멸과 영생이 별개이자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특정한 조건을 갖출 때에만 약속되는 영생의 은사는 불멸의 은사보다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영생은 앞으로의 삶이 끝없이 지속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불멸은 부활한 상태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이 끝없이 지속되는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만, 영생은 오직 충만한 복음의 율법에 순종한 사람들만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 누리시는 삶의 본질, 상태, 양식, 그리고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는 사람들은 승영을 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이며, 장자의 교회의 회원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권능을 가지며, 아버지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브루스 알 맥콩키, Mormon Doctrine, 2차 개정판 [1966], 237쪽)

우리의 선교사들의 책임은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1쪽에 명시된 바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대한 신앙, 회개, 침례, 성신의 은사 및 끝까지 견딤을 통해 회복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움으로써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도록 권유[하는 것]”(2004) 입니다.

많은 요리책에는 조리법대로 완벽하게 만든 음식의 사진들이 들어 있으며, 이 사진들은 요리의 큰 기쁨을 보여줍니다. 이 사진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조리법에 있는 지시를 엄격하게 따를 경우 얻게 될 결과물을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결과를 생각하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요리책에서 사진으로 나타난 결과는 모든 것을 올바로 했을 때만 가능한 결과입니다. 만일 설명을 따르지 않거나 재료를 빠뜨리거나 또는 잘못 계산한다면 원하는 맛이나 모양은 좀처럼 얻기 힘듭니다. 그러나 완벽한 음식의 사진은 맛있고 아름다운 것을 다시 만들어 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영생에 대해 생각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은 무엇입니까? 저는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영생에 대한 분명하고 참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가정 복음 교육이나 방문 교육 하기, 모임에 참석하기, 성전에 가기, 도덕적으로 생활하기, 기도하기, 또는 경전 읽기와 같은 끝까지 견디는 것과 관련된 여러가지 일들을 하도록 재촉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아니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이 우리가 가기를 바라는 곳으로 가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선교사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사람들은 먼저 복음의 주인이신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은 구주와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그분은 속죄를 통해 우리에게 하신 약속들을 지키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분의 속죄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적용합니다.

구주께서는 제3니파이 27장에 기록된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에게 복음의 상호 의존성과 지상에서의 그분의 성역 및 속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보라 내가 내 복음을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준 복음이니라-곧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므로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세상에 왔느니라 …

“또 이렇게 되리니 곧 누구든지 회개하고 내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자는 충만하게 될 것이요, 만일 그가 끝까지 견디면, 보라,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설 그 날에 내가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죄 없다 할 것이라”(제3니파이 27:16)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대한 신앙은 우리가 그분께로 향하도록 해 줍니다. 세상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해 주며 그분과 우리를 위한 아버지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의 신앙은 또한 행동으로 이끕니다. 즉 신앙은 참된 회개와 관련된 결심과 변화로 이끕니다. 앨마서 34장에서 앰율레크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자에게만 크고도 영원한 구속의 계획이 이루어지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로 회개에 이르는 너희의 신앙을 행사하기 시작하게 하시고, 너희로 그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게 하사,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참으로 그에게 부르짖어 자비를 구하라. 이는 그가 구원하시기에 능하심이라.”(16~18절)

왜 사람들은 침례 받고 성신을 받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음성은 니파이인들에게 희생의 법을 폐하신다고 선포하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너희는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내게 희생으로 드릴지니, 누구든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내게로 오면 내가 그에게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줄 것이라.”(제3니파이 9:20)

이와 똑같은 요건이 우리가 침례 요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구절인 교리와 성약 20편에도 나옵니다. 37절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침례 받기를 원하며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아와서, 자기의 모든 죄를 진실로 회개하였음과 … 모든 사람은 침례로써 그의 교회에 받아들여져야 하느니라.”

경전의 이 구절들은 침례와 성신을 받기 위한 준비로서의 회개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교훈을 가르칩니다. 첫째, 회개는 겸손한 태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침례 받기 위해 준비 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즉,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우리의 희생으로서 바치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했음을 교회나 교회의 대표자 앞에 증거해야 함을 배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청결하게 하는 과정인 회개가 청결하게 하는 의식인 침례에 선행함으로써 성신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도록 준비시킨다는 것을 압니다. 성신은 신회의 세 번째 구성원입니다. 성신의 은사는 회개를 통해 세상의 죄로부터 청결하게 된 사람들만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성신을 받기 위해 침례가 필요합니까? 올슨 에프 휘트니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침례에는 두 부분이 있으며, 행해야 할 두 가지 임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청결하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빛나게 해 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하나님의 것들을 밝혀 주고, 또한 진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줍니다. 죄로부터 청결하게 된 영혼은 변함없는 성신의 영향을 누릴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성신은 거룩하지 아니한 성전에 거하지 아니합니다. 물의 침례는 정화와 교화의 시작입니다. 영의 침례는 그것을 완성합니다.”(Baptism-The Birth of Water and of Spirit. 10쪽)

니파이는 물과 불에 의한 침례 의식을 문이라고 표현했습니다.(니파이후서 31:17 참조) 왜 침례가 문입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묶어 주는 성스러운 성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버리고,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평화를 선포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주를 섬기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영을 더욱 풍성하게 부어 주시”고,(모사이야서 18:10) 그분의 성도들을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구속하시며, 첫째 부활에 속한 자들과 함께 헤아림을 받게 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침례와 성신을 받는 것은 영생을 향한 “협착하고 좁”은 길로 들어가기 위해 규정된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침례는 또한 우리가 물 무덤으로 내려 갔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로마서 6:4) 으로 일어서는 것을 상징합니다. 침례 의식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죽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침례는 구원의 첫째 되는 의식이며, 성신을 받는 것은 우리 각자가 앞으로 나아가고 끝까지 견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끝까지 견딥니까? 끝까지 견디는 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처럼 끝까지 충실함을 요구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 4:7) 분명히,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 그분과 함께 살며 영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해, 그것은 어렵고 노력을 요하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정련되도록 계획되고 의도된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은 결코 여러분 혼자서 달성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첫째, 그렇게 하는 데에는 구주의 구속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깨끗하지 않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매 순간 회개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우리는 또한 매주 성찬식에 참석하여 성찬을 취하고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끝까지 견디는 데는 성신이 필요합니다. 성신은 우리를 인도해 주고 성결하게 해 줍니다. 셋째, 우리는 성도들 사이의 일부로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복음 안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봉사하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침례와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됩니다.(고린도전서 12:11~13 참조) 우리 각자는 맡아야 할 역할을 갖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구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눠야 합니다. 단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데려오는 것에 대한 약속들은 심오하고 영원합니다.(교리와 성약 18:15 참조) 뿐만 아니라, 복음은 그것을 자주 나누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뿌리 내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끝까지 견디기 위해 항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소망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에는 기도와 금식, 그리고 경전 읽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은 교활한 계략과 대적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도록 우리를 강화시켜 줄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복음의 열매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복음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심히 큰 기쁨”(니파이전서 8:12)을 경험하게 해 주며, 이 생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견딜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 모두 영생에 대한 비전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영생을 위한 조리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가 열심히 따르고 끝까지 견딜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