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시온에 오라
2008년 10월


시온에 오라

새 예루살렘인 시온이 일어서는 위대한 날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의 가정과 스테이크와 지방부에서 단합과 경건과 사랑으로 시온을 세우도록 노력합시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온 건설은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이 관심을 가졌던 대업입니다. 이는 선지자들과 제사들, 또한 왕들이 매우 기쁜 마음으로 다루었던 주제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날을 기쁨으로 고대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쁨에 찬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의 날을 노래하고 기록하며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우리는 후기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한 사랑하는 백성들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멜기세덱 신권 및 상호부조회 교재, 2007년], 186쪽)

시온은 장소이자 사람을 의미합니다. 시온은 대홍수 이전 에녹의 고대 도시에 붙여졌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대에 이렇게 되었나니, 그가 거룩한 성, 곧 시온이라 일컬어지는 한 성읍을 건설하였더라.”(모세서 7:19) 이 시온은 약 365년동안 지속되었습니다.(모세서 7:68 참조) 경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녹과 그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주는 시온 가운데 거하였더라. 그리고 이렇게 되었나니, 시온이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이 시온을 자기 품 안으로 받아들였음이라. 이에 그때로부터 시온이 도망하였다 하는 말이 퍼졌더라.”(모세서 7:69) 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시온산으로 일컬어졌으며, 또한 경전은 “천 년 동안 [땅이] 안식을 누[릴]” 때(모세서 7:53, 64) 그리스도께서 “시온의 왕”으로서 통치하실 미래의 새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에녹 백성을 “그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의롭게 거하며, 그들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었으므로”(모세서 7:18) 시온이라 일컬으셨습니다. 다른 곳에서 주님은 “시온은 이것이니-마음이 청결한 자라”(교리와 성약 9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온의 반대이자 적수는 바벨론입니다. 바벨론 시는 원래 바벨탑의 바벨이었으며, 나중에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주요 건축물은 우상 숭배와 연관된 성적 타락을 고려하여 “수치”라는 의미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언급한 우상인 벨 또는 바알 신전이었습니다.(Bible Dictionary, “Assyria and Babylonia,” 615~616쪽; “Baal,” 617~618쪽; “Babylon, 또는 Babel,” 618쪽 참조) 바벨론의 세속적인 속성과 악에 대한 숭배, 그리고 기원전 587년의 정복에 이은 유대인의 바벨론 유수 등,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바벨론은 퇴폐적인 사회 및 영적인 속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가라.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나와서 모이라.”(교리와 성약 133:7) 오늘날에도 왕성하게 계속되고 있는 노력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집합을 이루기 위해 그분은 교회의 장로들을 세상에 보내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보라, 또 바라보라, 모든 백성들에게 고하는 그들의 외침과 주의 음성은 이러하리니, 너희는 시온 땅으로 나아가라. 그리하여 내 백성의 경계가 넓혀지게 하고, 또 시온의 스테이크들이 강화되게 하고, 또 시온이 그 주변 지역으로 나아가게 하라.”(교리와 성약 133:9)

그러므로 오늘날, 주님의 백성들이 나라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시온의 스테이크와 단위 조직에 모이면서 “나라들 가운데서 나와” 모이고 있습니다.

니파이는 이 “다스림”은 작을 것이지만, 주님의 권능이 “온 지면에 흩어진 어린 양의 교회의 성도들 위에 내려오고 그들이 큰 영광 중에 의 … 로 무장 될” 것임을 예견했습니다.(니파이전서 14:12~14 참조)

주님께서는 우리가 시온의 안전과 축복을 구하는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의의 등대가 될 것을 다음과 같이 요구하십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 모두에게 이르노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 그리하여 네 빛이 열국을 위한 기가 되게 하라. 또 시온의 땅에 그리고 그 스테이크들에 집합하는 것이, 진노가 온 땅에, 섞인 것이 없이 쏟아져 내릴 때 폭풍우를 피하고 진노를 피할 방어진이 되며 피난처가 되게 하라.”(교리와 성약 115:5~6)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지시하에, 초기 교회 회원들은 미주리 주에 시온의 중심지를 세우려고 시도했지만, 거룩한 도시를 세울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실패 이유들 중의 하나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 손에 요구한 것에 순종하기를 배우지 아니하였고 도리어 모든 모양의 악이 가득하고 성도로서 합당하게 그들의 재물을 그들 가운데 있는 가난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에게 나누어 주지 아니하며, 해의 왕국의 율법이 요구하는 일치단결의 정신에 따라 단합하지 아니하는도다.”(교리와 성약 105:3~4) “그들 가운데 알력과 다툼과 시기와 싸움과 육욕과 탐욕이 있었느니라. 그러므로 이러한 일로 그들이 자신들의 기업을 더럽혔느니라.”(교리와 성약 101:6) 그러나, 이러한 초기 성도들을 너무 가혹하게 판단하기보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잘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시온은 시온 백성들의 인격, 속성 및 충실함 때문에 시온이 됩니다. 이를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의롭게 거하며, 그들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었으므로 주가 그의 백성을 시온이라 불렀더라.”(모세서 7:18) 만약 우리가 우리의 가정과 지부와 와드와 스테이크에서 시온의 대업을 향해 나아가려면, 이러한 표준에 응해야 합니다. (1) 한마음 한뜻으로 단합하고, (2)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며, (3) 우리 가운데 가난을 없앨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시온이 올 때까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미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온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만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합

우리가 시온이 번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단합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알력, 다툼, 시기, 싸움”(교리와 성약 101:6 참조)을 극복했는지 질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 한 무리로서 싸움과 다툼에서 자유로우며 “해의 왕국의 율법이 요구하는 일치단결의 정신에 따라”(교리와 성약 105:4) 단합되어 있습니까? 서로에 대한 용서는 이러한 단합에 필수적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려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교리와 성약 64:10)

우리는 개인적으로 우리 삶의 중심에 구주를 초대하고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도록 명하신 분들을 따를 때 한마음과 한뜻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 안에서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연차대회에서, 몬슨 회장님은 교회에서 멀어진 분들과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의 양심이라는 성역 안에는 옛 사람을 버리고 진정한 잠재력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결의, 그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권고를 드립니다. 돌아오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으로 여러분께 손을 내밀며, 여러분을 돕고 여러분을 온전한 우정 안으로 환영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을 전합니다. 심령이 상한 분들, 또는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분들에게는 여러분을 북돋우고 여러분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두려움을 잠재울 기회를 우리에게 달라고 말씀드립니다.”(토마스 에스 몬슨,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감,”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9~90쪽)

올해 7월말에, 동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온 청년 독신 성인들이 한 대회를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에 모였습니다. 이 그룹 가운데에는 여권과 비자를 받는 데 며칠을 보내고 이곳에 오기 위해 버스로 30시간 이상을 여행한 몰도바에서 온 20명의 젊은 남녀들이 있었습니다. 대회 프로그램은 약 15개의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가장 참여하고 싶은 2개 또는 3개의 워크숍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 몰도바에서 온 청년 독신 성인들은 각 워크숍마다 적어도 그들 그룹 중의 한 사람이 참여하여 그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함께 계획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들이 배운 것들을 서로 나누고, 또한 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몰도바의 청년 독신 성인들과도 나중에 그것을 공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이것은, 다른 방법으로 수천 번 반복된다면, “다시 시온으로 돌아올”(이사야 52:8) 서로를 향한 우리의 단합과 사랑의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룩함

시온을 건설하기 위해 이루어야 할 일들 중에 많은 부분은 “마음이 청결한 자”(교리와 성약 97:21)가 되려는 우리의 개인적인 노력에 있습니다. “시온은 해의 왕국의 율법의 원칙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세워질 수 없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나 [주]는 시온을 내게로 받아들일 수 없느니라.”(교리와 성약 105:5)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해의 왕국의 율법은 우리가 항상 구주를 기억한다는 것과 순종, 희생, 헌신 및 충성에 대한 우리의 맹세를 포함하는 복음의 율법과 성약들입니다.

구주께서는 일부 초기 성도들의 “육욕”에 대해 그들을 비판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01:6; 또한 교리와 성약 88:121 참조) 이들은 TV, 영화, 인터넷, 아이팟이 없는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적인 동영상과 음악으로 가득찬 지금 세상에서, 우리는 육욕과 이와 관련된 악에서 자유롭습니까? 정숙한 복장의 한도를 훨씬 넘거나 대리로 부도덕을 탐닉하는 외설물의 행위에 빠지기보다 우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말라 해야 합니다. 시온에 오려면, 여러분이나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덜 사악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선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이 말씀하셨듯이, 시온에 영원히 거주할 우리의 거처를 세우고 바벨론의 여름 별장은 포기합시다.”(닐 에이 맥스웰, A Wonderful Flood of Light [1990년], 47쪽 참조)

가난한 자들을 돌봄

역사를 통해 보면, 주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잘 돌보았는지로 그 사회와 개인들을 평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땅은 충만하고 거기에는 충분하여 남는 것이 있나니, 그러하도다.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사람의 자녀에게 능력을 주어 자기 스스로의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가 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어느 사람이 내가 만든 풍성한 것을 취하고 나의 복음의 법에 따라 자기 몫을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주지 아니하면, 그는 악한 자와 더불어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자기 눈을 들어 보리라.”(교리와 성약 104:17~18, 또한 교리와 성약 56:16~17 참조) 게다가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현세적인 일에 있어서 너희는 평등하게 되어야 하나니, 이를 마지못해 하지 말라. 그렇지 아니하면, 영의 풍성한 나타내심은 보류되리라.”(교리와 성약 70:14, 또한 교리와 성약 49:20, 78:5~7 참조)

우리는 우리의 부와 자원의 사용을 스스로 관리하지만,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관리와 인도를 맡깁니다. 여러분이 금식 헌금과 인도주의 프로젝트에 공헌함으로써 여러분의 관용을 입증해 보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몇 년 동안, 수백만 명의 고통이 완화되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의 관용으로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온의 대업을 추구함에 따라, 우리 각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그리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 대해 주님께서 우리가 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물과 쾌락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의 것들을 좀 더 많이 얻고자 하는 탐욕과 욕심으로부터 초연한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물질주의는 바벨론을 형상화 하는 우상숭배와 교만에 대한 또 하나의 표현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필요 사항이 충족되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을 이익의 방도”(디모데전서 6:5)로 생각하는 백성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디모데전서 6:7~8)

세상의 많은 곳에서, 우리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돌보도록 합시다. 저는 1975년 사이공을 탈출하여 유타 주 프로보에서 조그만 이동식 집에서 살게 된 어느 베트남 가족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 피난민 가족의 한 청남이 근처에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존슨 형제의 가정 복음 교사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느 날 존슨 형제님은 우리 가족이 식탁이 없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다음날 좀 이상해 보이지만 아주 실용적이면서 부엌 싱크대 맞은 편 트레일러 벽에 잘 맞는 탁자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보인다고 말한 이유는 그 탁자 다리 중 두 개는 탁자와 똑같은 무늬 및 색깔을 띄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개의 다리는 뭔가 어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몇 개의 작은 나무 말뚝들이 닳아진 표면의 한 쪽 끝에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곧 우리는 이 특이한 탁자를 음식 준비와 간단한 식사들을 위해 매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가족 식사만큼은 이전처럼 진짜 베트남식으로 마루에 앉아서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가정 복음 교육 약속 전에 존슨 형제님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집 현관 안쪽에 서 있었습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부엌 근처에 놓여 있던 저의 가족에게 주었던 것과 거의 똑같은 탁자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 탁자는 나무 말뚝들이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고, 존슨 형제님의 탁자는 그 말뚝에 들어맞는 구멍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 자비심 많은 분이 우리의 필요 사항을 보고 그의 반으로 분리되는 식탁을 분리하여 각각의 반쪽을 위해 2개의 새로운 다리를 만들어 붙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존슨 가족에게 이 조그만 탁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아마 그 탁자 전체를 사용했을 때도 그 가족에게는 둘러 앉기에 충분치 않았을 것입니다.”

“이 친절한 행위는 제 전 생애 동안 진정으로 주는 것이 무엇인지 강하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손 쿠앙 레, 베스 엘리스 레에게 들려준 이야기, “두 개의 똑같은 테이블”, 리아호나, 2004년 7월호, 45쪽)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온 건설을 우리의 가장 위대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186쪽) 새 예루살렘인 시온이 일어서는 위대한 날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의 가정과 스테이크와 지방부에서 단합과 경건과 사랑으로 시온을 세우도록 노력합시다. 우리 찬송가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계시된 것처럼, 기쁨에 찬 기대를 갖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애통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부르시네

바빌론도 무너지고

모든 탑도 헐리리 …

주 안에서 기뻐하라

시온에 모두 오라 …

주의 재림 가까우니

시온에 모두 오라

(애통하는 이스라엘, 찬송가 10장)

시온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간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