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행복, 여러분의 유산
2008년 10월


행복, 여러분의 유산

우리의 생득권과 지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 위대한 항해의 목적은 영원한 행복을 찾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본부 상호부조회 모임을 위해 함께 모이신 교회 자매님들에게 말씀드리는 저의 첫 번째 기회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특별히 오늘 몬슨 회장님과 아이어링 회장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우리는 합창단의 노래에 감동했으며 톰슨 자매님, 얼리드 자매님, 벡 자매님의 메시지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된 후, 저는 제 삶에 영향을 준 저의 훌륭한 아내 해리엇, 어머니와 장모님, 누나, 딸, 며느리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포함한 여러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제게는 영감과 가르침을 주고 격려했던 여성분들이 주변에 계셨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이런 놀라운 여성들 덕분입니다. 교회 자매님들과 만날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이 놀라운 영혼의 소유자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곳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여러분의 재능, 사랑,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는 여러분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중한 딸이라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여성과 남성은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 아내와 제가 요리하는 것을 보면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요리할 때는 환상적입니다. 그녀는 세계 각국의 요리를 하며 종종 우리가 방문한 나라들의 음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녀의 요리를 보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먹는 게 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아내의 요리는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의 즐거움도 선사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고 맛있을지라도, 아내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완전한 것이 있으면 사과합니다. 그녀는 “생강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네요.”라든가 “다음 번에는 카레가루를 조금 더 넣고 월계수 잎을 하나 더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아내와 저의 요리법을 대조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저는 아내에게 제가 가장 잘하는 요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한쪽만 익힌 계란 후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크누스퍼천(Knusperchen)이라는 특별 요리도 할 줄 압니다. 이 요리는 어느 일류 레스토랑의 메뉴에나 나올 법한 진미 요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께 요리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바게트 빵을 얇게 썰어서 두 번 구우십시오.

그게 요리법입니다.

계란 후라이에 기름이 흥건하건 크누스퍼천이 탔건 간에, 요리할 때만은 제가 영웅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제 아내와 저의 차이점이 약간 과장일지도 모르나 그것은 식사를 준비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설명해 줍니다.

제 눈에는 이런 훌륭한 자매님들이 때때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듯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과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부족하거나 불완전한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이 말씀을 듣고 계신 여러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에게서 이런 특성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이 또한 훌륭한 자질, 즉, 우리의 능력을 다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내적인 소망을 가리킨다는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좌절, 기진맥진,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약한 자들에게

오늘 저는 자신이 부적격하다고 느끼거나, 의기 소침해지거나, 지치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들, 즉 우리 모두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저는 성신이 제 말씀을 상세히 설명해 주시며 추가적인 의미와 통찰력, 영감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책임을 다하면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사실, 변화무쌍하고 어려움과 할 일이 태산인 이 세상에서, 때때로 고통과 슬픔에 압도되는 느낌을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좌절시키는 부정적인 느낌들을 그냥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씀은 격려 연설도 아니며 모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해변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신기루와 같은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진정한 걱정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깊은 슬픔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혹은 영혼을 근심하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남들은 모르는 외로움이란 시련을 겪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들은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도 평화, 희망, 기쁨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원리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행복과, 우리 각자가 어떻게 역경 속에서도 그 행복을 맛볼 수 있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행복

먼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떤 종류의 행복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답이 하나님의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므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1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심2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보라,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이것이 곧 나의 일이요, 나의 영광이니라.”3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의 불멸과 영생이라는 이 두 가지 위대한 목적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창조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완벽한 행복에 기여하는 두 가지 목표입니다. 창조와 사랑은 그분의 영의 자녀인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창조의 일

창조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강렬한 열망 중 하나입니다. 재능, 교육 정도, 배경, 또는 능력과 관계 없이, 우리 각자는 그 전에 존재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창조하고자 하는 내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창조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돈, 지위, 영향력 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창조는 깊은 만족감과 성취감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정리되지 않고 조직되지 않은 것을 취하여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때 자신과 타인을 발전시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정리되지 않은 여러분의 십대 자녀들의 방을 청소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는 “저는 창조적인 성격이 아니예요. 노래할 때면, 저는 언제나 음표보다 반음 높거나 낮게 불러요. 저는 자 없이는 직선을 긋지 못해요. 제가 만든 빵은 오직 종이가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 놓거나 문이 닫히지 않게 할 때만 쓸 뿐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느끼신다면, 다시 생각해 보시고 여러분이 우주에서 가장 창조적인 존재의 영의 딸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실제적인 영이 영원히 창조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영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과 기능, 아름다움으로 창조된 걸작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까? 우리는 기쁨의 충만함4을 경험하는 특정한 목적과 잠재력을 띠고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득권과 지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 위대한 항해의 목적은 영원한 행복을 찾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창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머니라면, 여러분은 자녀들을 낳을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사업에 그분과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어머니가 아니라면, 여러분이 발전시키는 그 창조적인 재능은 이 세상 혹은 그 다음 세상을 위해 여러분을 준비시켜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재능과 은사5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성은 종이 한 장 혹은 캔버스에 국한되지 않으며 붓, 펜, 피아노 건반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창조란 그 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 예를 들어 다채로운 정원, 조화로운 가정, 가족 추억,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등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창조하는 것이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계란 요리에 기름기가 많거나 토스트가 좀 탔으면 어떻습니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좌절하지 마십시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비판의 목소리가 여러분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직도 창조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려고 노력하고, 감사 편지를 쓰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적절한 장소를 찾아내어 그곳을 아름답게 꾸며 보십시오.

약 150년 전에, 브리검 영 회장님은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해야 할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전진하고 향상시키며 주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십시오. 땅을 경작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가꾸십시오. 도시를 건설하고 가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정원과, 과수원, 포도원을 만들고 지상을 아주 아름답게 가꾸어서 여러분이 기쁘게 한 일을 보고 천사들이 내려와 그 아름다운 곳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하십시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영의 은혜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도록 하십시오.”6

여러분이 성신을 더 신뢰하고 의지할수록, 여러분의 창조력은 더 커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삶에서의 기회이자 다음 세상에서의 여러분의 목적입니다. 자매 여러분, 성신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매일의 삶이 주는 평범한 기회들을 통해 여러분이 아름답고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창조할 때, 여러분 주변의 세상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내면의 세계도 향상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또 다른 위대한 일이며 인간으로서 우리의 근본적인 특성입니다. 우리는 “약한자를 도우라,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며 연약한 무릎을 강건하게 하라”7는 계명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었습니다. 구주를 따르는 사람들은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기꺼이 슬퍼하고 … 위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로”8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축복하려 할 때, 우리의 삶도 축복받습니다. 봉사와 희생은 하늘의 문을 열며, 우리가 값진 축복들을 받게 해 줍니다. 분명, 우리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자녀 중 가장 작은 자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미소 지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들어 올릴 때, 우리 자신도 좀 더 높이 올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님은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영혼에 깃들게 됩니다.”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봉사에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그분의 아내가 돌아가신 후, 힝클리 회장님은 일에 매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교회에 커다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남편을 잃은 한 자매님에게 “일이 자매님의 슬픔을 치유해 줄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봉사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심오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잊고 이웃을 위해 봉사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과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로렌조 스노우 회장님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좀 우울해질 때, 주위를 둘러보아 자신보다 더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그 사람을 찾아가서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아낸 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지혜로 그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의 우울증은 사라지고 가벼워짐을 느끼며 주님의 영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모든 것이 명백해짐을 느낄 것입니다.”10

오늘날 세상의 대중 심리학, 쓸모 없는 TV 프로그램, 자아 만족의 자가 치유서 속에서, 제가 드리는 충고가 통념과는 반대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병을 고치는 해답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탐닉하고, 먼저 쓰고 나중에 지불하며, 주변 사람들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먼저 만족시켜야 된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필요사항을 먼저 돌봐야 하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 안의 도구

저는 교회의 자매님들이 나이나 가족 사항에 상관 없이 피터팬의 저자 제임스 배리가 “타인의 삶에 햇살을 드리우는 사람은 항상 그 햇살 아래 있다.”11라고 한 다음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저는 이타적인 사랑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고귀한 여성들의 친절과 사랑이 담긴 조용한 행동을 보아 왔습니다. 교회의 자매님들의 이야기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들이 신속하게 도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제 가슴은 뭉클해집니다.

교회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독신이거나 이혼했거나 남편을 여읜 자매님들은 자신들이 할 일이 있을지 의아해합니다. 교회의 모든 자매님들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행해야 할 위대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1년 전 이 모임에서, 몬슨 회장님은 “여러분 주위에는 … 봉사할 기회로 가득합니다. … 종종 봉사의 작은 행위가 다른 이들을 들어올리고 축복하기 위해 필요한 전부입니다.”12 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성찬식 때, 자녀가 여럿인 젊은 어머니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옆에 앉아 도움을 주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이웃에, 낙담한 젊은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있어 주겠다고 하며 그의 선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 주십시오. 진실한 격려의 말은 오직 사랑과 보살피는 마음만 필요할 뿐이지만 여러분 이웃의 삶에 영원토록 영향을 줄 것입니다.

훌륭한 자매님들은 이웃에게 사랑이 가득한 봉사를 베풀 때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봉사를 할 때, 여러분은 왕이셨지만 지위를 구하지도 않으셨고 사람들이 알아줄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으신 구주를 따르게 됩니다. 그분은 타인과 경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남을 도우려 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해주고, 대화하며, 그들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분은 위대함이 외적인 부나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구주께서는 이런 교리를 가르치셨고 또 그 가르침대로 사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13

결국,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숫자도 우리의 행복에 기여하겠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도에 응답해 주는 수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아 낙담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좌절을 발견하십시오. 주변 사람들의 조용한 기도를 느껴보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주님의 손 안에 든 도구가 되도록 합시다.

결론

사랑하는 자매님 여러분, 제 신앙은 단순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명을 부지런히 그리고 충실히 지킬 때, 여러분이 신앙, 희망, 사랑으로 그분께 가까이 나갈 때,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이 함께 역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14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에 매진할 때, 여러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때, 그분은 여러분을 그분의 사랑의 팔로 안아 주실15 것입니다. 그리고 낙담하고, 지치고, 부적합하다는 느낌은 의미 있고 은혜와 성취감으로 가득한 삶으로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의 딸들로서, 행복은 여러분의 유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중한 딸들이며 여러분이 창조한 것들과 사랑이 담긴 봉사를 베풂으로 인해, 여러분은 영원히 위대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자신감을 가지고 충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주님의 사도로서 여러분께 저의 축복을 남겨드리며,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증거합니다. 아멘.

  1. 이사야 55:9.

  2. 니파이전서 11:17.

  3. 모세서 1:39

  4. 니파이후서 2:25.

  5. 교리와 성약 46:11~12 참조.

  6. 브리검 영, Deseret News, 1860년 8월 8일, 177쪽.

  7. 교리와 성약 81:5.

  8. 모사이야서 18:9.

  9. The Teachings of Spencer W. Kimball, ed. Edward L. Kimball,(1982년), 254쪽

  10. Lorenzo Snow, Conference Report, 1899년 4월, 2~3쪽.

  11. J. M. Barrie, A Window in Thrums (1917년), 137쪽.

  12. 토마스 에스 몬슨, “여러분을 인도할 세 가지 목표”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120쪽.

  13. 마태복음 23:11.

  14. 교리와 성약 90:24 참조.

  15. 교리와 성약 6:2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