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교회의 회장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신, 이 인생이란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 여행객들을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 기뻐하는 우리 영혼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과 영감 받은 말씀으로 축복받았습니다. 주님의 영이 이곳에 계십니다. 오늘 제 생각과 느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동안 주님의 영감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먼저 제가 말씀드리려는 내용을 잘 보여주는 짧은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젊은 부부인 리사와 존은 어떤 지역으로 새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리사는 창문으로 이웃이 빨래를 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리사가 외쳤습니다. “빨래가 깨끗하지가 않잖아! 저 사람은 빨래할 줄을 모르나 봐!”

존은 잠자코 보기만 했습니다.

그 이웃이 빨래를 널 때마다 리사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몇 주 후, 리사가 창 밖을 내다보니 놀랍게도 이웃 뜰에는 잘 세탁된 빨래가 널려 있었습니다. 리사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존 여기 좀 봐요. 드디어 이웃 여자가 빨래를 제대로 하게 되었네요. 어떻게 배웠을까요?”

존이 대답했습니다. “여보, 그 답을 알려줄까? 내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집 창문을 닦았거든!”

오늘 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더러운 창을 통해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볼 때 어느 부분을 먼저 보십니까? 그 사람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립니까?

구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1 “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2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어찌하여 더럽다고 생각하는 이웃의 빨래는 보고 네 집의 더러운 창문은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 중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완전하면서도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에게서 흠을 찾아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 혹은 하지 않느냐를 판단합니다.

누군가가 비난 받아 마땅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다 치더라도 우리는 실로 그 사람의 마음이나 의도, 또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알 길이 없습니다. 계명은 이것입니다. “비판하지 말라”

47년 전에 열린 이 대회에서 저는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본부 신권 위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기에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여느 때처럼 신권위원회 동료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아내는 어디로 가서 누구 옆에 앉아야 할지를 몰랐고, 심지어 태버내클 안에는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때마침 본부 보조조직 임원회의 일원이었던 저희 부부의 한 친구가 임원회 회원들에게 배정된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 자매님이 몬슨 자매에게 같이 앉자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잠시 후 발표될 제 부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몬슨 자매가 당황하여 헤매는 모습을 보고는 자애롭게도 자리를 권했던 것입니다. 아내는 이 친절에 안도하며 고마워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뒤쪽에서 임원회의 일원인 한 자매가 크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료 중 누군가가 뻔뻔스럽게도 본부 임원들만 앉도록 지정된 좌석에 외부 사람을 앉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도록 초청 받은 사람이 누구였든, 그 자매님의 그런 불친절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자리를 차지한 그 불청객이 바로 새로 부름 받은 사도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자매님이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려는 성향도 있지만, 더불어서 많은 사람들은 옷 차림새나 머리 모양, 체구 등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아주 좋은 예가 전국적으로 발간되는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실화인 이 이야기를 들으신 분도 있겠지만 다시 들어 봐도 좋을 듯합니다.

메리 바텔 부인은 병원 병동 입구 바로 건너편에 있는 집에 살았습니다. 그 집 1 층은 가족들이 쓰고, 위 층은 병원 외래환자들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실로 험상궂은 얼굴을 한 노인이 하루 밤 묶을 방을 청했습니다. 노인은 깡마른 몸이 구부정하기까지 했으며, 얼굴은 벌겋게 벗겨지고 부어서 한 쪽으로 처져 있었습니다. 노인은 정오부터 방을 구했지만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 얼굴 때문일 거예요. 끔찍하게 보인다는 건 알지만 좀 더 치료하면 나아질 거라고 의사가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노인은 현관에 있는 흔들의자에서 자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 작은 노인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메리는 이 노인이 체구는 작지만 마음은 넓고 따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방이 없었지만 메리는 노인에게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 잠잘 곳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잠들 시간이 되자 메리의 남편은 야전 침대를 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메리가 확인해 보니 침대보는 깨끗하게 개어져 있고 노인은 현관에 나가 있었습니다. 노인은 아침식사는 사양했으나 버스에 오르면서 다음 번에 치료 받으러 올 때도 묵을 수 있을지 물으며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의자에서도 잘 자거든요.” 하고 말했습니다. 메리는 다시 와도 좋다며 노인을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 치료 차 그곳을 올 때면 노인은 메리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어부였던 노인은 올 때마다 선물로 해산물이나 채소 등을 들고 왔으며, 오지 않을 때에도 선물을 소포로 부치곤 했습니다.

그런 뜻 깊은 선물을 받을 때면 메리는 그 흉하고 구부정한 노인이 처음 집에서 자고 간 날 아침에 이웃이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험상궂은 사람을 받아줬단 말이에요? 나는 돌려보냈는데. 그런 사람을 받다가 다른 손님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한두 차례 손님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메리는 ‘그 노인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사람들이 그분을 불쾌히 여기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 메리는 온실을 가꾸는 한 친구 집에 갔습니다. 꽃을 둘러보다가 메리는 예쁜 노란 국화를 보게 되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국화는 낡고 녹슬고 찌그러진 양동이에 심어져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침 화분이 다 떨어졌었거든. 나중에 만개하면 얼마나 예쁜 꽃이 될지 알았기에, 일단은 이런 낡은 양동이에서 시작해도 이 꽃은 개의치 않을 거라 생각했지. 정원에 옮겨 심을 때까지 잠시뿐이니까 말이야.”

메리는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하늘에서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왜소한 노인의 영혼을 보며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을지 모릅니다. “여기 특별히 어여쁜 영혼이 있구나. 이렇게 작고 흉한 몸에서 시작해도 개의치 않을 거야.” 하지만 그 기간은 벌써 지나갔고, 지금 그 사랑스러운 영혼은 얼마나 당당하게 하나님의 정원에 서 있겠습니까! 3

외모는 그와 같이 속기 쉬운, 인간의 잣대일 뿐입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4

한번은 어느 여성 단체 회원 한 분이 그 단체 대표로 선출된 여성을 두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여성을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보고서는 뚱뚱하다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조직에 몸담은 여성이 수천 명이야. 분명 더 나은 대표가 뽑힐 수도 있었을 텐데.”

대표로 선출된 그 여성은 분명 모델처럼 늘씬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을 알고 그 여성의 성품을 아는 사람은 사진에 나타난 모습 이상을 보았습니다. 사진에서는 그 여성이 친절한 웃음과 믿음이 가는 인상을 준다는 점만 알 수 있을 뿐, 그녀가 매우 충실하고 애정 어린 친구이며 또한 주님과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고 섬기는 지적인 사람이라는 점은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진에서는 그 여성이 지역 사회에서 솔선수범하며 사려 깊고 남을 염려할 줄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진은 그 여성의 참모습을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외모가 사람의 태도, 행위, 영적인 성향을 나타낸다면 불평한 그 여성은 과연 그녀가 비난한 대표보다 외형이 더 아름다웠을까요?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여러분 각자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여러 면에서 서로 다릅니다. 여러분 중에는 결혼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계시는 분도 있고, 밖에서 일을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분도 있습니다. 결혼은 했으나 자녀가 없는 분도 있습니다. 이혼했거나 미망인이 된 분도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은 아직 미혼입니다. 어떤 분은 대학을 나왔고 어떤 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최신 유행 의상을 사 입을 형편이 되는 반면, 겨우 일요일에 입을 합당한 옷 한 벌만 가진 분도 계십니다. 이러한 차이는 한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차이들이 서로를 판단하도록 우리를 유혹합니까?

생애 대부분을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보낸 테레사 수녀님은 이 심오한 진리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판단하다 보면 그들을 사랑할 시간이 없습니다.” 5 구주께서는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6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서로를 판단한다면 구주께서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테레사 수녀님과 함께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7

저는 늘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8 라는 상호부조회의 모토를 좋아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선지자 몰몬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이라” 9 레이맨인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모로나이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에게 사랑이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서 구원받을 수 없고” 10

저는 사랑, 즉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이란 비판이나 판단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사랑과 자애를 이야기하는 지금 이 순간 저는 물질을 통해 구제하는 사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랑이란 다른 이를 너그럽게 여기고 그들의 행동을 관대하게 대하며 나타내는 사랑, 용서하는 사랑,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질병과 고통, 괴로움에 처했을 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이 약점을 보이고 실수할 때에도 동정과 연민, 자비를 보일 수 있는 사랑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을, 용기 잃은 사람에게 희망을, 고통 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참된 사랑에는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온 고통이나 불행을 들으면서 쾌감을 느끼거나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며 만족감을 느끼는 일을 거부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 불행에 처한 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한 말입니다. 미국의 교육가이자 정치가였던 호라스 만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괴로움을 겪는 사람을 동정하는 일이 인간적인 행위라면 이를 치유해 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행위이다.” 11

사랑이란 기대를 저버린 사람을 참을성 있게 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쉽게 화 내려는 충동을 이겨냅니다. 사랑은 부족함과 결점을 받아들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은 신체 외모를 너머 시간이 가도 희미해지지 않는 그런 특징을 바라봅니다. 사랑은 사람을 구분 지으려는 충동을 거부합니다.

사랑, 즉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은 독신 와드의 젊은 자매들이 그들 상호부조회에 속한 한 자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백 마일을 여행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사랑은 헌신적인 방문 교사가 무관심하고 때로는 비판적이기도 한 자매를 매년, 매달 찾아가는 데서 드러납니다. 나이 많은 미망인을 기억하여 그분들을 와드 행사와 상호부조회 활동에 모셔오는 일에서도 나타납니다. 상호부조회 모임에 홀로 앉아 있는 자매에게 “이리 와서 같이 앉아요.” 하고 청하는 모습에서도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랑을 나타낼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누구에게도 완전한 인생은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신 이 인생이란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 여행객들을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삶에 찾아온 어려움을 극복하느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깨닫고, 힘을 다해 그들을 돕기를 바랍니다.

자애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가장 높고 고귀하며 강한 종류의 사랑.” 12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 …… 누구든지 마지막 날에 이를 지닌 것으로 드러나는 자는 잘 될 것임이니라.” 13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이 오래된 상호부조회의 주제가, 이 변치 않는 진리가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을 인도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모토가 여러분 영혼에 바로 스며들어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자매 여러분, 제 사랑을 전하며, 하늘의 축복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참조 보이기

  1.  

    1.  마태복음 7:1.

  2.  

    2.  마태복음 7:3.

  3.  

    3.  Mary Bartels, “The Old Fisherman”, Guidepost, 1965년 6월호, 24~25쪽에서 발췌.

  4.  

    4.  요한복음 7:24.

  5.  

    5.  Mother Teresa, in R. M. Lala, A Touch of Greatness: Encounters with the Eminent(2001), x.

  6.  

    6.  요한복음 15:12.

  7.  

    7.  야고보서 1:26.

  8.  

    8.  고린도전서 13:8.

  9.  

    9.  모로나이서 7:47.

  10.  

    10.  모로나이서 10:21.

  11.  

    11.  Horace Mann, Lectures on Education(1845), 297쪽.

  12.  

    12 . 경전 안내서, “자애”.

  13.  

    13.  모로나이서 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