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선택에 관한 세 가지 원리
2010년 10월


선택에 관한 세 가지 원리

우리 모두는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가지고 지상에 왔습니다.

사랑하는 신권 형제 여러분, 오늘밤 여러분과 나누어야 한다고 느끼는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와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최근에 저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루 중에도 이런저런 선택을 하지 않고 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어떤 선택은 사소하고 어떤 선택은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선택은 영원한 측면에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반면 어떤 선택은 모든 것을 바꿔 놓습니다.

선택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생각해 보면서 저는 그것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선택할 권리, 둘째, 선택에 대한 책임, 셋째, 선택에 따른 결과. 이것을 선택에 관한 세 가지 원리라 부르겠습니다.

먼저 선택할 권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의지, 즉 선택할 권리라는 은사를 주신 것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교회 제9대 회장이신 데이비드 오 멕케이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자체를 부여하신 것 다음으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는 그 생명을 인도하는 권리입니다.”1

우리는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우리에게 선택의지가 있었고, 루시퍼가 그것을 빼앗으려 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는 선택의지라는 원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도 신뢰를 하지 않았고, 또한 강제로 우리를 구원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시퍼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따른다면 한 사람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따를 경우, 어느 누구도 더 현명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큰 동정심이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것임을 인식하거나 고려하지 않은 듯합니다.

구주께서 마련하신 계획을 선택한 우리는 험난하고 힘든 여행을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단절되어 세상의 길을 걷고 죄를 지으며 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의 자녀들 가운데 장자께서는 모든 사람이 짓는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양이 되겠다고 자청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위대한 구속주, 온 인류를 위한 구주가 되셨으며, 우리가 아버지께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지자 니파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한즉 육체로 말할진대 사람은 자유로우며, 사람에게 마땅한 것은 모두 그들에게 주어졌느니라. 또 그들은 자유로이 만인의 크신 중보자를 통하여 자유와 영생을 택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악마의 사로잡음과 능력에 따라 사로잡힘과 죽음을 택할 수도 있나니, 이는 그가 만인을 자기처럼 비참하게 되게 하려 함이라.”2

형제 여러분, 우리가 처하는 상황 내에서 우리에게는 항상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선택할 권리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는 중립에 설 수 없으며 중간 입장이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아시며, 또한 루시퍼도 이 점을 압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 사는 한, 루시퍼와 그 추종자들은 우리 영혼을 취하겠다는 욕망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지상 생활을 마치고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돕기 위해 그분으로부터 인도 받을 방법을 마련하신 후에 우리를 영원한 여행에 보내셨습니다. 그 방법은 기도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속삭이는 고요하고 작은 음성입니다. 우리가 건너야 할 바다를 이미 성공적으로 항해한 선원들이 기록한 성스러운 경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가지고 지상에 왔습니다. 선지자 모로나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선악을 분별하게 하였은즉”3

우리는 대적이 전하는 온갖 감언이설에 둘러싸여 있고 때로는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말 중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명히 많이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딱 이번 한 번이니까 괜찮아”, “걱정 마, 아무도 모를 거야”, “담배든, 술이든, 마약이든, 원하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 “다들 하는 건데 뭘. 나쁠 거 없잖아”. 거짓말은 끝이 없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길이 갈라지고 굽어지는 곳에 다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에서 우회로를 선택하는 여유를 부릴 수는 없습니다. 교활한 피리 부는 사나이인 루시퍼는 경쾌한 선율을 연주하여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들이 선택한 안전한 길에서 멀어지도록 유혹합니다. 즉, 사랑하는 부모의 조언과 하나님께서 주신 안전한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는 소위 인간이기를 거부한 이들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를 노립니다. 다윗 왕은 루시퍼의 유혹에 귀 기울였고 흔들렸으며 그를 따라가 타락했습니다. 그 이전 시대에 살았던 가인도 그랬고 훗날 가룟 유다도 그랬습니다. 루시퍼가 사용하는 방법은 교활하며 그 피해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니파이후서에는 루시퍼에 관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또 다른 이들은 그가 달래며, 속여 가서 육신에 속한 안전에 거하게 하리니”4 “다른 이들은 그가 달콤한 말로 속이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지옥은 없다 하고 …… 그의 끔찍한 사슬로 그들을 움켜쥐기까지 하나니”5 “이같이 악마가 그들의 영혼을 속여, 조심스럽게 그들을 인도하여 지옥으로 내려가느니라.”6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우리는 어떻게 결정합니까? 순간적인 쾌락을 약속하는 말에 넘어갑니까? 충동과 열망을 좇습니까? 또래 압력에 굴복합니까?

루이스 캐롤이 쓴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처럼 우유부단하지 맙시다. 앨리스가 엇갈림 길에 도착해서 두 갈래 길을 맞닥뜨린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두 길 모두 앞으로 뻗어 있었지만 방향은 서로 반대였습니다. 앨리스는 체셔 고양이를 만나서 이렇게 묻습니다. “어느 길로 갈까요?”

고양이는 대답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에 달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면 어느 길을 고르든 상관 없어.”

앨리스와는 달리 우리 모두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압니다. 어느 길로 가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길을 선택하면 목적지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 결정해야 합니다. 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니요” 라고 말할 용기와 “예” 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정은 운명을 좌우합니다.

저는 우리 목표, 즉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하는 영생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하실 것을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그 곧고 옳은 길에는 다른 목표들도 있습니다. 선교 사업, 성전 결혼, 교회 활동, 경전 공부, 기도, 성전 사업 같은 일들 말입니다. 인생 여정을 걸으며 성취해야 할 가치 있는 목표는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결의입니다.

마지막으로 형제 여러분,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어떤 결과는 영원한 구원과 거의, 혹은 전혀 관계가 없고, 어떤 결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녹색 셔츠를 입든 파란색 셔츠를 입든, 그것은 기나긴 여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외설물로 들어가는 버튼을 누르느냐 마느냐는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곧고 안전한 길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친구가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라고 부추길 때 그에 굴복한다면 여러분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열두 살짜리 집사든 성숙한 대제사든, 우리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눈과 마음과 결심을 영원한 목표에 고정합시다. 그 목표는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달성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물러서지 않는 한 어떠한 유혹과 압력과 꾐도 우리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 자신 이외에는 책망할 사람이 없습니다. 브리검 영 회장님은 이러한 진리를 자신에게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브리검 형제가 그릇된 길을 가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브리검 형제 이외에 책망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과 지상과 지옥에 책망 받을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이것은 모든 후기 성도에게 적용됩니다. 구원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7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8

우리는 모두 그릇된 선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선택을 아직 바로잡지 않았다면, 바로잡을 길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그 과정을 회개라 부릅니다. 여러분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십시오. 구주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그 축복된 은사를 받게 하시고자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길이 쉽지 않을지라도 그 약속은 참됩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9 “나 주가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10 영생을 위태롭게 하지 마십시오. 죄를 지었다면 빨리 돌이킬수록 용서받는 기적과 달콤한 평안과 기쁨을 더 빨리 얻게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고귀한 생득권이 있습니다. 아버지 왕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여러분의 목표입니다. 그러한 목표는 영예로운 일을 한 번 했다고 해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의롭게 생활하고, 현명한 선택을 거듭하며, 일관성 있게 한 가지 목적에 전념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진정 가치 있는 모든 목표와 마찬가지로 영생이라는 보상을 받으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전은 이 점을 명확히 밝혀 줍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11

말씀을 마치며, 인생 초반에 목표를 정한 어느 한 사람이 보인 모범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분은 교회 회원이자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교수인 클레이튼 엠 크리스텐슨 형제님입니다.

열여섯 살 때 크리스텐슨 형제님은 다른 것과 더불어 일요일에는 운동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수년 후, 형제님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농구 팀에서 센터(중앙에서 뛰는 선수-옮긴이)로 활약했습니다. 형제님이 소속된 농구팀은 그 해 시즌에서 무패행진을 했고, 미국대학농구 선수권대회와 비슷한 영국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들은 대회 내내 승승장구했고 준결승전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때 마침 크리스텐슨 형제님은 경기일정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놀랍게도 결승전이 일요일에 잡혀 있었습니다. 형제님과 팀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형제님은 선발 선수였습니다. 크리스텐슨 형제님은 코치에게 가서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코치는 냉정했고 형제님에게 결승전에 나오리라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결승전에 앞서 준결승전이 열렸습니다. 공교롭게도 형제님을 대신할 후보 선수의 어깨가 탈골되는 바람에 크리스텐슨 형제님은 결승전에 대해 더 큰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은 호텔방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께 이번 한 번만 일요일에 운동 경기를 해도 되는지 여쭈었습니다. 형제님은 기도를 끝내기도 전에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클레이튼, 물어볼 필요도 없잖니?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형제님은 코치에게 가서 결승전에서 뛰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형제님은 자신의 팀이 경기를 펼치는 동안 그 지역 와드에서 열리는 일요일 모임에 갔습니다. 형제님은 우승을 위해 기도했고, 형제님의 농구팀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형제님은 그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을 삼십 년도 더 전에 내렸습니다. 크리스텐슨 형제님은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니 그 일이 자신이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무척 쉬웠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당연한 계명이야. 하지만 나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이번 한 번만은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돼.” 그러나 형제님은 지나고 나서 보니 평생 예외인 경우는 끝없이 계속되었으며, 그때 딱 한 번 선을 넘었더라면 이후에는 아주 절실하고 중대한 일이 일어나서 훨씬 쉽게 그 선을 넘어버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님은 계명을 100퍼센트 지키는 일이 98퍼센트 지키는 일보다 쉽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선택할 권리를 받은 것에 감사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선택에 따른 결과를 늘 인식합시다. 신권 소유자로서 우리 모두는 하나로 단합하여 신중하고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인도 받기에 합당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부름에 응했습니다. 주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거룩한 부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13

그렇게 되기를 엄숙하고 겸손하게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Gospel Ideals, 1953, 299쪽.

  2. 니파이후서 2:27.

  3. 모로나이서 7:16.

  4. 니파이후서 28:21.

  5. 니파이후서 28:22.

  6. 니파이후서 28:21.

  7. Discourses of Brigham Young, 390쪽.

  8. 고린도전서 10:13.

  9. 이사야 1:18.

  10. 교리와 성약 58:42.

  11. 신명기 5:32~33.

  12. Clayton M. Christensen, Brigham Young University Idaho Devotional, June 8, 2004.

  13. 이사야 5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