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기도라는 특권
2011년 10월


기도라는 특권

기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귀중한 은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떤 감정이나 생각, 물리력 따위가 아닙니다. 거룩한 인격체로서, 경전에서 이야기하듯 얼굴과 손이 있는, 영화로운 불멸하는 몸이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실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알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9~11)

제가 겪은 이 경험이 그 원리를 잘 보여 줄 것 같습니다. 보스턴 어린이 병원 레지던트였던 젊은 시절, 저는 근무 시간이 매우 길었습니다. 자동차는 아내와 아이들이 써야 했기 때문에 저는 병원과 매사추세츠 주 워터타운에 있는 집 사이를 주로 자전거로 오갔습니다. 기나긴 근무를 마친 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어느 저녁에는 몹시 피곤하고 허기가 져서 다소 기운이 빠졌습니다. 집에 가면 아내와 어린 네 아이들을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힘을 쏟아야 하고 쾌활한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솔직히 페달을 밟는 것조차 힘겨운 날들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로 오가던 길에는 통닭집이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멈춰 닭고기튀김 한 조각을 먹는다면 허기와 피로가 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닭다리 또는 넓적다리 하나를 29센트에 파는 행사 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제 지갑에서는 5센트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주님께 제 형편을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길에서 25센트 동전 하나를 주울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어떤 표적이 필요해서가 아니며, 단지 이 친절한 축복을 주셔야겠다고 느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바닥을 유심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통닭집 쪽으로 자전거를 몰면서 신앙으로 마음을 채우고 유순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서 통닭집 건너편 길 위쪽을 보니, 땅에 떨어져 있는 25센트 동전이 보였습니다. 저는 감사와 안도의 마음으로 동전을 주워 왔고, 결국 닭다리 한 조각을 사서 맛있게 먹은 후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습니다.

만유를 창조하고 통치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은 그처럼 작은 것을 바라는 기도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귀 기울여 주셨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이 왜 그처럼 사소한 일에도 관여하시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유만으로 그분께 중요한 일이 된다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러할진대, 더 크고 옳은 일을 간구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더 간절하게 우리를 돕고 싶어 하시겠습니까?(제3니파이 18:20 참조)

어린아이든 젊은이든 성인이든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시며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실 것이기에 그분께 도움을 받으려면 우리가 요청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청은 보통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정말 귀중한 선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이렇게 여쭌 적이 있습니다. ”주여 …… 기도를 ……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누가복음 11:1) 이에 예수님은 기도에 관한 핵심 원리로 이끌어 줄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러셀 엠 넬슨, “주기도문에서 배우는 교훈”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46~49쪽; 또한 마태복음 6:9~13, 누가복음 11:1~4 참조) 예수께서 주신 본보기에 따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태복음 6:9; 누가복음 11:2) 아버지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떠한 존재에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아버지 이름을 너무 자주 반복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을 포함하여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누가복음 11:2)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인정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경배하는 자세로 아버지께 말을 거셨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진심을 담아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바로 효과적으로 기도하는 중요한 열쇠임이 분명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누가복음 11:2) 주께 의지한다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인정하며 비록 주님의 뜻과 우리 뜻이 다를지라도 주께 순종하겠다는 소망을 표현합니다. 영어 성경 사전에는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기도는 서로 소통을 통해 아버지의 뜻과 자녀의 뜻을 일치시키는 행위이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이미 하나님께서 기꺼이 허락하고자 하시나 우리가 간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축복들을 공고히 하려는 데 있다.”(Bible Dictionary, “Prayer”)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 6:11; 또한 누가복음 11:3 참조) 우리는 주님께 원하는 것들을 간구합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청하려면 반드시 정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업에 집중하지도 않고 숙제와 시험공부도 안 하면서 학교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구한다면 이는 온전히 정직한 행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종종 기도를 드릴 때 간구하는 도움을 얻으려면 제 스스로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영의 속삭임을 느낍니다. 그러면 다짐을 하고 제 몫을 완수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주님이 대신 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태복음 6:12) 또는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누가복음 11:4) 개인 기도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때로 간과되기도 하는 부분은 회개입니다. 실제로 회개하고자 한다면, 회개의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하며, 회개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며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마태복음 6:12, 누가복음 11:4) 구주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받는 것과 우리에게 잘못을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으로 받는 고통이 너무나 혹독하여 이를 용서하거나 잊기가 무척 힘들 때도 있습니다. 저는 마음의 상처를 내려놓고 이를 주께 돌리라는 주님의 권유에서 위안과 치유를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교리와 성약 64편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려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할 것이 요구되느니라.

또 너희는 마땅히 마음속으로 이르기를-하나님께서는 나와 그대 사이를 판단하사 그대의 행위에 따라 그대에게 갚으실지로다 라고 하여야 하느니라.”(10~11절)

치유를 받고자 한다면 그 일을 완전히 잊어버려야 하고 주께서 그 일을 맡으시도록 우리는 물러서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버려두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조셉 스미스 역 성경 마태복음 6:14) 이와 같이 우리는 기도 중에 앞날을 내다 보며 때로 두려운 일들에 직면하게 될 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절차인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일에(에베소서 6:11; 교리와 성약 27:15 참조)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제 소중한 친구 여러분, 주님께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함께해 주시도록 간청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태복음 6:13) 예수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존경과 순종을 표현하며 기도를 마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이 됩니까. 하나님이 그분의 왕국을 다스리시며 그분께 모든 권능과 영광이 있음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만사를 주관하시고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아끼시며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기쁘게 살아가는 한 가지 비결이 바로 자신의 생각보다 주님의 방법을 따를 때 더 큰 행복이 온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기도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하는 위험에 처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악한 영으로부터 오는데, 그 영은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니파이후서 32:8 참조) 기도하기에는 너무 죄가 많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아픈 사람이 의사한테 가기에는 너무 아프다고 우기는 것처럼 비극적인 일입니다!

하는 것이라곤 고작 기도 드리는 것뿐이라면 그 기도가 어떤 형태의 기도이든, 진지한 정도에 상관없이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려야 할 뿐 아니라 그 기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기도만 하는 사람보다는 기도하고 나서 할 일을 하는 사람을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먹는 약과 마찬가지로 기도도 지시를 따를 때만 효력이 있습니다.

기도가 감미로운 특권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그분의 영을 느낄 수 있다는 기쁨 때문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은 흔히 우리가 듣는 음성과는 다릅니다.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그 감미롭고 조용한 영감의 음성은 소리보다는 느낌으로 옵니다. 순수한 예지가 정신으로 전해질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인도는 생각과 느낌으로, 또 속삭임과 감명으로 인식됩니다.”(“기도와 속삭임”,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44쪽)

사력을 다해 드리는 진지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축복을 주시기 위해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려면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다 보면 이미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단번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이는 실천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영의 언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언어를 터득하면 의로운 가운데 큰 신앙과 권능을 얻게 됩니다.

저는 사랑하는 선지자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이 주신 이 권고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지금 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분들 중에서 크고 작은 난관과 도전에 맞서 힘겹게 투쟁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기도는 영적인 힘을 제공합니다. 기도는 평화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여권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다가가는 방편입니다. 그분께 기도로 말하고 귀 기울여 응답을 들으십시오. 기적들은 기도를 통해 일어납니다.”(“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68쪽)

저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다가갈 수 있는 기도의 특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없이 많이 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에 때로는 예견한 방법으로, 또 다른 때에는 기적과 같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또한 그분의 거룩한 아들 예수께서 살아 계신 구주임을 증거합니다. 이 교회는 그분의 교회이자 지상에 세워진 왕국이며 이 사업은 참됩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그분의 선지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온전한 확신으로 이 모든 것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Francis M. Lyman, “Proprieties in Prayer,” Brian H. Stuy, comp., Collected Discourses Delivered by President Wilford Woodruff, His Two Counselors, the Twelve Apostles, and Others, 5 vols. (1987-92), 3:76-79; B. H. Roberts, comp., The Seventy’s Course in Theology, 5 vols. (1907-12), 4:120; Encyclopedia of Mormonism (1992), “Prayer,” 1118-19; Bruce R. McConkie, Mormon Doctrine, 2nd ed. (1966), 583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