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역에 거하십시오!

울리세스 소아레스 장로

칠십인 정원회


우리는 “내가 이 행동을 취하면 주님의 영역에 서게 될까, 아니면 적의 영역에 서게 될까?”라고 매일 질문해야 합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선택을 가늠할 수 있는 간단한 공식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외우기 쉽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하면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의를 행하면 잘못될 수도 없다.”(“와서 선지자의 음성을 들어라”, 리아호나, 2004년 4월호, 친2쪽) 몬슨 회장님의 공식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그 공식은 리하이가 받았던 리아호나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신앙을 행사하고 주님의 계명에 부지런히 순종한다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쉽게 찾게 될 것입니다. 특히 매일 하는 선택들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때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식적으로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고 영을 위하여 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권고를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영]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9)

영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언어와 행동이 하늘 부모님과 같은 성스러운 수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육신을 육에 속한 사람의 육체적 또는 속된 상태로 나타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성신에게서 오는 영감을 구하기보다는 격정, 갈망, 욕구, 육신의 충동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세상에 만연한 악의 세력과 결탁한 영향력으로 저속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취하게 되어 그것이 우리의 성품을 일부분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나쁜 영향력을 피하기 위해 주께서 조셉 스미스에게 계속 영을 위하여 심는 것에 관해 가르치신, 다음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즉 선을 행함에 지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위대한 일의 기초를 놓고 있음이라. 그리고 작은 일에서 큰 일이 생겨나느니라.”(교리와 성약 64:33)

우리의 영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우리에게서] 버[려야 합니다.]”(에베소서 ) 그리고 “시험의 날에 지혜[롭고] …… 모든 부정함을 벗어 버[려야]”(몰몬서 ) 합니다.

경전을 공부해 보면, 주님이 주신 약속은 우리의 순종 여부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되므로, 그러한 약속에는 의로운 생활을 하라는 권유가 함께 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약속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웁니다. 또한 그 약속은 더욱더 육체를 위하여 심도록 부추기고 도덕적, 윤리적 가치가 사라져 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겪는 삶의 도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소망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하는 선택이 육체가 아닌 영을 위하여 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조지 앨버트 스미스 회장님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권고를 되풀이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영역과 악마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에서 주님 쪽 선 안에 머문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되어 옳지 않은 일을 행하려는 욕망을 품지 않을 것이지만, 그 선을 1센티미터라도 넘어 악마 쪽 선 안으로 넘어간다면 유혹하는 자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것입니다. 악마가 성공하면 주님의 영을 잃게 되기 때문에 올바르게 사고하거나 사리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지 앨버스 스미스[2011], 191쪽)

따라서 우리는 “내가 이 행동을 취하면 주님의 영역에 서게 될까, 아니면 적의 영역에 서게 될까?”라고 매일 질문해야 합니다.

선지자 몰몬은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백성들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런즉 무릇 선한 일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악한 것은 악마에게서 오나니, 이는 악마가 하나님의 원수요,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며, 또 죄를 범하도록 또 끊임없이 악을 행하도록 꾀며 유혹함이라.

그러나 보라, 하나님께 속한 것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도록 이끌며 권유하나니”(모로나이서 ~13)

성신의 동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주님의 영역에 속하도록 이끄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므로, 우리의 태도가 선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지만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면, 우리는 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악을 행하도록 꾀어 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영역에 머물려고 하는 결단력과 부지런함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리스도께 오라는 권유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됩니다. 저는 몇 주 전에 남아프리카에 있는 한 와드에서 어린 제사 두 명과 그들의 감독님, 스테이크 회장님과 함께 제사 정원회의 저활동 회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두 제사가 저활동 청남에게 교회로 돌아오도록 권유하며 보여 준 용기와 겸손은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이 저활동 청남에게 말을 하는 동안 저는 그들의 얼굴에서 구주의 빛이 발하는 것을 보았으며 동시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 그 빛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두 제사는 “약한 자를 도우라.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며, 연약한 무릎을 강건하게 하라.”(교리와 성약 81:5)는 의무를 실행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 준 태도는 주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주님의 손안에 든 도구가 되어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유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교리와 성약 20편 37절에서, 영을 위하여 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통해 주님의 영역에 설 수 있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즉,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아와서, 자기의 모든 죄를 진실로 회개하였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꺼이 받들고자 하며, 끝까지 그를 섬기려는 결심을 가졌음을 교회 앞에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들이고 침례로써 그분의 교회에 받아들여졌음을 우리의 행위로 나타내야 합니다. 기꺼이 이러한 성약을 성취하려 한다면, 우리는 승영에 이른 존재로 하나님 면전에서 살 수 있게 준비될 것입니다. 이 성약들을 기억한다면, 가족에게 보이는 행동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과 하는 교류에서, 특히 구주와 자신의 관계에서 분명히 인도를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행동 규범을 세우셨고, 우리는 이를 통해 성스러운 성약을 성취할 수 있는 태도를 키울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그분의 신성한 사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영향력은 무엇이든 삶에서 몰아내셨는데, 특히 지상에서 성역을 베푸는 동안 사탄이나 그 추종자에게서 유혹을 받으실 때 더욱더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죄를 짓지는 않으셨으나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니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셨으며, 모든 면에서 아버지께서 요청하신 일을 끝까지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버리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어깨에 짊어지시고 모든 땀구멍에서 피를 흘리시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영적 고난을 겪는 순간에서조차도 그분은 아버지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우리의 성약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대적의 불화살”(니파이전서 15:24)에 맞서 구주의 모범을 따라 자신을 굳건히 지키며, 영을 위하여 심고 주님의 영역에 거하는 것입니다. 몬슨 회장님의 공식을 모두 기억합시다. “사람이 잘못을 하면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의를 행하면 잘못될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