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주님의 교회를 통해 그분의 복음으로 개종하십시오
2012년 4월


주님의 교회를 통해 그분의 복음으로 개종하십시오

교회가 있는 목적은 우리가 복음대로 살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사랑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복음이라는 말과 교회라는 말을 혼용합니다만, 그 둘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둘은 절묘하게 연결되며,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영광스러운 계획입니다. 그분의 자녀인 우리는 그 계획을 통해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84:38 참조) 이것은 영생이라고 불리며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서 가장 큰 것”(교리와 성약 )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계획에서 지극히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지상에서 하는 경험, 즉 신앙을 키우고(모로나이서 참조) 회개하며(모사이야서 참조)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야곱서 참조) 시간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고 또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니파이후서 )이 있어서 이 지상 생활이 심히 어려울 것이기에, 또한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없기에, 우리에게는 구주가 있어야 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영의 아버지이신 엘로힘께서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셨을 때, 우리 가운데 한 분이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아브라함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였습니다.

영적으로 또 육체적으로도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신 그분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지상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셨기에 필멸 상태에 따라 고통과 고난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위대하신 여호와께서는 또한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셨으며 그에 더하여 메시야, 곧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성취하신 일의 절정은 속죄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아래로 …… 내[려가셔서]”(교리와 성약 88:6) 우리 각자를 위한 구속의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성역을 행하시는 동안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에베소서 ) 세워졌습니다. “때가 찬 경륜의 시대”(교리와 성약 128:18)인 이 시기에 주께서는 과거에 있었던 그 교회를 회복하시며 구체적으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나는 네 손으로 교회를 세우리니”(교리와 성약 3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나 현재나 그분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오늘날 지상에서 사도의 권세를 받은 선지자들이 그분을 대표합니다.

이 교회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교회를 진지하게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교회 조직, 효율성, 그 선한 영향력에 감동을 받습니다. 교회에는 어린이, 청소년, 남성과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18,000여 개에 이르는 아름다운 집회소가 있습니다. 전 세계 136곳에 웅장한 성전이 있으며, 건축이 발표되었거나 진행 중인 곳은 30군데입니다. 젊은이와 나이 드신 분들로 구성된 56,000명 이상의 전임 선교사가 150개국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행하는 교회의 인도주의적 사업은 회원들의 관대함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우리의 복지 시스템은 세상의 여타 구호기관에서 볼 수 없는 방법으로 회원들을 돌보고 그들의 자립을 도모합니다. 이 교회에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기꺼이 서로를 위해 훌륭히 봉사하려는 평신도 지도자와 성도가 있습니다. 온 세상에 이런 교회는 없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은 훌륭하고 유서 깊은 교회 집회소 중 하나인 호놀룰루 태버내클 경내의 조그마한 별채에서 살았습니다. 교회 시설을 관리하시는 사랑하는 감리 감독단 여러분께 이제서야 사과를 드립니다만,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저는 물 웅덩이 바닥부터 웅장한 조명이 들어오던 첨탑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그 뜰에 있던 커다란 반얀나무 덩굴을 마치 타잔처럼 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우리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모임에 갔습니다. 목요일 오후에는 초등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상호부조회 모임은 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청소년 상호향상모임은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와드 활동이 있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이면 성인 남성과 청남들은 신권회에 갔습니다. 에는 주일학교에 참석했습니다. 그런 뒤, 저녁에 성찬식을 하러 다시 교회로 갔습니다. 그렇게 여러 모임에 가고 오면서 일요일은 하루 종일, 그리고 주중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 활동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사랑했던 만큼, 저는 소년 시절에 처음으로 그저 모임에 참석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섯 살 때, 그 태버내클에서 큰 대회가 열렸습니다. 저희 가족은 당시 살던 그 작은 집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와서 작은 다리를 건너 웅장한 집회소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넓은 예배실에서 열 번째 줄 정도에 앉았는데, 교회 회장이신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님께서 그 모임의 감리자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보고 느낀 것은 생생합니다. 맥케이 회장님은 크림색 양복을 입으셨으며 물결처럼 굽이치는 백발에서 위엄과 당당함이 느껴지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하와이 전통에 따라 붉은 카네이션 화환을 목에 걸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할 때, 저는 뭔가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그것이 성령의 영향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폐회 찬송으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의 편에 선 자 누구냐?

지금이 나타내 보일 때

우리는 당당히 요구하리

주님의 편에 선 자 누구냐?

(“Who’s on the Lord’s Side?”, 영어 찬송가, 260장)

그때 거의 2천여 명이 함께 부른 그 노래 가사가 마치 저 자신에게 묻는 것처럼 들렸고, 저는 일어서서 “저예요!” 하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교회에서 활동 회원이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위험합니다. 교회에 활동적이면서도 복음에는 저활동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교회에 활동적인 것은 매우 바람직한 목표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회 활동은 우리의 영적 소망에 대한 외적 표시입니다. 모임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책임을 맡아 수행하며,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때, 우리가 활동 회원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납니다.

이와는 반대로, 복음에 관한 것은 보통 잘 드러나지 않으며 측정하기도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원의 측면에서는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큽니까? 얼마나 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 삶에서 복음 의식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띱니까? 우리가 맺은 성약에 우리는 얼마나 집중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복음과 교회가 모두 필요합니다. 사실, 교회가 있는 목적은 우리가 복음대로 살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의문을 갖습니다. 청소년 때 교회에서 완전히 활동적이던 사람이 어떻게 성인이 되어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하고 봉사하던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 안 나올 수 있을까? 지도자나 다른 회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어떻게 교회를 떠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복음, 즉 영원에 관한 것에 완전히 개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우리의 토대로 삼는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을 제안하겠습니다.

  1. 절대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십시오. 신회를 구성하는 세 분에 대한 사랑과 지속적인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해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고 성신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기도와 함께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숙고하는 것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계속 키워 나가십시오. “대저 사람이 …… 자기에게 외인이며, 자기 마음의 생각과 의도에서 먼 주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모사이야서 )

  2. 의식과 성약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아직 받지 못한 필수 의식이 있다면 그 의식을 받도록 열심히 준비하십시오. 그런 다음 매주 참여하는 성찬의 은사를 적극 활용하여 우리가 맺은 성약에 충실하게 생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거룩한 성찬 의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태도가 결핍된 나머지, 성결하게 하는 성찬의 힘으로 자신을 정기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3. 복음과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십시오. 복음에 집중하면, 교회는 우리 삶에 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연구와 또한 신앙으로 학문을 구하[기]”(교리와 성약 88:118) 위해 준비된 상태로 모임에 온다면, 성령이 우리의 교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즐기러 온다면, 종종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은 이런 질문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성찬식이 지루하다고 생각되실 때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분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런 적이 없어서요.”(quoted by Gene R. Cook, in Gerry Avant, “Learning Gospel Is Lifetime Pursuit,” Church News, Mar. 24, 1990, 10)

주님께서 신대륙 백성에게 오셔서 그분의 교회를 세우신 후 있었던 일들이 우리 삶에서도 일어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또 이렇게 되었나니 이같이 그들, [즉 주님의 제자들]이 모든 니파이 백성 가운데 나아가서, 그 땅의 모든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매, 그들이 주께로 돌이켜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하였고, 그리하여 예수의 말씀대로 그 세대의 백성들이 복을 받으니라.”(제3니파이 28:23)

주님께서는 그분의 교회 회원들이 그분의 복음으로 온전히 개종되기를 바라십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지금 영적인 안전을 얻고 영원토록 행복해지는 확실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