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희생
2012년 4월


희생

주님과 우리 이웃을 섬기겠다는 결심은 봉사하고 희생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은 “창조에서부터 무한하고 영원한 세월에 이르기까지 가장 위대한 사건”1이라 불립니다. 그 희생은 모든 선지자가 전하는 주요 메시지입니다. 속죄 희생은 모세 율법에서 요구하는 동물 희생으로 예시되었습니다. 한 선지자는 동물 희생에 담긴 의미는 바로 “[참으로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 아들의] 크고도 마지막이 되는 희생”(앨마서 34:14)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희생을 치르고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흠 없는 순결한 어린 양, 지극히 선하신 분이 온 세상의 죄라는 극악을 위해 바쳐졌습니다. 엘리자 알 스노우가 남긴 인상적인 노랫말에는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귀한 피 흘리시어서

생명 버리시니

죄인 위한 돌아가심

세상 구하셨네2

그 희생,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구원의 계획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심으로써 피를 흘리는 희생은 끝났지만, 복음 계획에서 희생의 의미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계속 희생하도록 요구하시는데, 이제 그분이 명하시는 희생은 바로 우리의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그분께] 희생으로 드[리는]”(제3니파이 )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시간과 이기적인 우선순위를 희생하여 그분이 치르신 희생을 작게 나마 모방해 보라고 명하십니다. 영감 어린 찬송가를 부를 때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희생은 하늘 축복 가져오나니”3

저는 구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이러한 필멸의 희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봉사나 희생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이 그 동기가 되는 행동 또는 강제로 하는 희생은 배제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니파이후서 26:29 참조)

I.

기독교 신앙의 역사는 궁극적인 희생을 포함해 희생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시대 초기에 로마 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이유로 수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교리적 논쟁으로 기독교계가 분열되면서 일부 교파가 다른 교파의 사람들을 박해하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기독교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기독교인들은 가장 참혹한 순교자들입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그분을 섬기려는 소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희생을 바쳤습니다. 그중 일부는 성인이 된 후 주님을 위한 봉사에 온 생애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고귀한 사람들 중에는 가톨릭 교회의 여러 조직에 속한 이들과 다양한 개신교에서 선교사로 평생 봉사한 사람들이 포함됩니다. 그들의 모범은 우리에게 도전을 위한 자극과 영감을 줍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을 종교적인 봉사에 바칠 여력이 없고, 또 그렇게 요구받지도 않습니다.

II.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희생은 일상생활에서 매일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 취지에서 본다면, 제가 알기에 후기 성도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하는 단체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 즉 형제 자매 여러분의 희생은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 흔히 하는 세상적 추구와는 참으로 대조됩니다.

첫 번째 예로 몰몬 개척자들을 꼽고 싶습니다. 생명과 가족 관계, 집과 안락함을 포기한 그들의 위대한 희생은 회복된 복음의 토대입니다. 세라 리치는 남편 찰스가 선교 사업을 위해 집을 떠나던 장면을 묘사하며 이 개척자들을 이끈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 시기는 진정으로 나와 내 남편에게 힘겨웠다. 이제 이 임무로 우리가 잠시 서로 떠나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알기에 이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이 사업을 돕고자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 두기로 했다.”4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힘은 회원들의 비이기적인 봉사와 희생입니다. 성전 중 하나가 헌납되기 전, 어느 목사님이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에게 기독교 신앙의 가장 보편적인 상징인 십자가가 없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앙은 바로 “우리 회원들의 삶”5으로 상징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과 우리 이웃을 섬기겠다는 결심은 봉사하고 희생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됩니다.

III.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는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고 봉급을 받는 성직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회중을 이끌고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평신도들이 수많은 교회 모임과 프로그램과 활동을 모두 관리해야 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이런 방식으로 14,000개 이상의 교회 조직이 인도되고 있습니다. 물론 평신도가 교사나 평신도 지도자로서 봉사하는 것이 우리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이 다른 사람을 훈련하고 보살피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의 양은 독보적으로 많습니다. 회중에 속한 각 가족이 매월 가정 복음 교사의 방문을 받고 각 성인 여성이 매월 상호부조회 방문 교사의 방문을 받도록 우리가 들이는 노력이 그 예입니다. 세상의 어느 조직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봉사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후기 성도만의 독특한 봉사와 희생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선교사들의 봉사입니다. 현재 5만 명이 넘는 젊은 남녀와 5천 명 이상의 성인 남녀가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 160개국 이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인도주의적 봉사를 하기 위해 6개월에서2년이라는 시간을 바칩니다. 그들의 봉사에는 늘 희생이 수반되는데, 여기에는 주님의 사업을 위해 사용한 시간과 더불어 그 일을 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는 데 들인 희생도 포함됩니다.

집에 남아 있는 부모와 가족 역시 선교사로 나간 자녀와 함께할 수 없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희생을 치릅니다. 예를 들면, 브라질에 사는 한 젊은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제자매를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던 중에 선교사 부름장을 받았습니다. 한 총관리 역원은 이 자녀들이 가족 회의를 하면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가르치신 것을 기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선교사 부름을 받아들였고 열여섯 살이 된 남동생이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대신 맡기로 했습니다.6 우리 중 대부분이 선교사로 봉사하거나 선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희생을 하는 예를 많이 압니다. 세상의 어느 조직이 이와 같은 자발적인 봉사와 희생을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젊은이들과 연로한 회원들이 학업이나 은퇴 생활을 뒤로하고 그런 희생을 하도록 어떻게 설득합니까?” 저는 많은 분이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주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 곧 저의 죄를 위해 고통당하신 그분의 은혜와, 제가 다시 살도록 사망을 극복하신 것을 알기에 저는 그분의 일을 하도록 요청을 받고 작은 희생을 치르는 것을 특권으로 여깁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주신 깨달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봉사하라고 어떻게 설득하느냐고요? 선지자가 설명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저] 그들에게 부탁을 합니다.”7

선교사 봉사에서 기인하는 또 다른 희생은 선교사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교회 회원이 되는 분들의 희생입니다. 많은 개종자에게 이러한 희생은 매우 커서, 친구나 가족 관계를 잃기도 합니다.

여러 해 전 연차 대회에서 미국 유학 중에 회복된 복음을 알게 된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젊은이가 본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기독교인이 되어 귀국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젊은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 가족은 실망하겠죠. 아마 저를 쫓아내고, 저를 죽은 자식으로 여길지 모릅니다. 저의 미래와 경력에 있어서도 모든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기꺼이 치르시겠습니까?”

그러자 젊은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복음이 참되지 않습니까?” 그 젊은이는 그렇다는 답을 듣고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8 이것이 우리의 많은 새로운 회원들이 지닌 희생 정신입니다.

봉사와 희생의 또 다른 예를 성전에서 봉사하는 충실한 회원의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전 봉사는 후기 성도에게만 있는 독특한 것이지만 그 희생의 의미는 모든 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후기 성도에게는 수도원 봉사와 같은 전통이 없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종교 활동에 삶을 바치는 분들의 희생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열린 연차 대회에서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성전 봉사와 관련한 희생의 모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태평양에 있는 외딴 섬에 사는 한 충실한 후기 성도 아버지는 아내와 열 자녀를 뉴질랜드 성전에 데려가 영원한 결혼을 하고 인봉을 받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려고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6년간 고된 일을 했습니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성전에서 받는 영원한 축복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으며, 어떠한 대가도 감내할 수 있고,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합니다.”9

저는 후기 성도 여러분이 보여 주신 기독교인다운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놀라운 모범에 감사합니다. 때로는 시간과 자원을 크게 희생하면서까지 교회 부름을 수행하시는 여러분의 모습을 봅니다. 자비를 들여 선교 사업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데 전문적인 기술을 기쁘게 활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개인적인 노력과 교회 복지 및 인도주의 기부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돌보시는 것을 봅니다.10 이 모든 것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연구에서 확인되었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활동 회원은 “보통 미국인보다 훨씬 더 많이 봉사하고 기부하며, 미국의 [상위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종교인들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봉사하고 돈을 기부한다.”11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그러한 모범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구주의 다음 가르침을 떠올리게 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25)

IV.

아마도 비이기적인 봉사와 희생 중 가장 친숙하고도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가정에서 행하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데 헌신합니다. 남편은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전념합니다. 우리 가족을 위한, 영원토록 중요한 이 봉사에 수반되는 희생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익숙한 것들입니다.

또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를 포함하여 자녀를 입양하거나 위탁받아 아이를 돌보며 그들이 기존 환경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희망과 기회를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타적인 후기 성도들을 봅니다. 선천적 결함, 정신적 신체적 질병, 노령에 따른 불편을 겪는 가족이나 이웃을 돌보는 여러분을 봅니다. 주님 역시 여러분을 보고 계시며 “여러분이 서로 또 자녀를 위하여 희생할 때 주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실]”12것임을 그분의 선지자를 통해 선언하셨습니다.

저는 예배하는 마음으로 구주를 본받아 비이기적으로 봉사하고 희생하는 후기 성도들이 다른 어느 단체 사람들보다도 더 영원한 가치를 고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후기 성도들은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희생하는 것을 영원을 위한 수업과 자격을 갖추는 한 방법으로 봅니다. 이 진리는 Lectures on Faith(신앙에 관한 강의)에 밝혀져 있는데,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종교는 생명과 구원에 이르는 데 필요한 신앙을 갖게 하는 충분한 힘이 없습니다. …… 하나님은 그러한 희생, 오직 그것만을 통해 인류가 영생을 누리도록 규정하셨습니다.”13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이 구원의 계획 중심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그 계획을 통해 우리에게 마련된 운명을 준비하기 위하여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심을 압니다. 우리는 그분의 속죄 희생으로 불멸에 대한 확신과 영생에 이를 기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요, 구주요, 구속주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저의 간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1. Bruce R. McConkie, The Promised Messiah: The First Coming of Christ (1981), 218.

  2. “하나님 지혜와 사랑”, 찬송가, 107장.

  3. “찬양해 여호와와 대화한 사람”, 찬송가, 18장.

  4. Sarah Rich, in Richard E. Turley Jr. and Brittany A. Chapman, eds., Women of Faith in the Latter Days: Volume 1, 1775–1820 (2011), 283.

  5. 고든 비 힝클리, “우리 신앙의 상징”, 리아호나, 2005년 4월호, 3쪽.

  6. 해롤드 지 힐램 장로, “봉사를 통한 희생”,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41~42쪽 참조.

  7. 고든 비 힝클리, “기적을 낳는 신앙”,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84쪽.

  8. 고든 비 힝클리, “그것은 참되니까요? 그렇잖습니까?”, 리아호나, 1993년 10월호, 3, 4쪽; 또한 닐 엘 앤더슨, “이것이 참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74쪽 참조.

  9. 토마스 에스 몬슨, “거룩한 성전은 세상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92쪽.

  10. 예를 들면, Naomi Schaefer Riley, “What the Mormons Know about Welfare,” Wall Street Journal, Feb. 18, 2012, A11 참조.

  11. Ram Cnaan and others, “Called to Serve: The Prosocial Behavior of Active Latter-day Saints” (초고), 16.

  12. 에즈라 태프트 벤슨, “교회의 독신 성인 형제들에게”, 성도의 벗, 1988년, 7월호, 56쪽.

  13. Lectures on Faith (1985),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