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2013년 10월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은 진리의 근원을 바라보고 간증을 강화할 때입니다.

여덟 살 때 저는 사촌 두 명과 함께 보름간 먹을 식료품을 구하러 인근 마을로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 숙부, 숙모님이 우리를 그렇게나 신임하셨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말 세 필로 이루어진 우리의 작은 행렬이 여정을 출발하던 그날 아침, 하늘은 맑고 눈부셨습니다.

초원 한복판을 지나던 우리는 말에서 내려 구슬치기를 하자는 번뜩이는 생각을 해 냈습니다. 우리는 놀이에 열중한 나머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며 머리 위로 드리운 “시대의 표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상황을 깨달을 즈음에는 말에 올라탈 시간도 없었습니다. 폭우와 세차게 퍼붓는 우박이 우리 얼굴 위로 떨어질 때, 우리가 고작 생각해 낸 대책은 말 안장을 내린 뒤 조그만 안장용 깔개를 담요처럼 덮어쓰고 그 아래 숨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말도 없이, 춥고 젖은 몸으로 최대한 빨리 움직이려 애쓰며 길을 재촉했습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마을로 들어가는 넓은 도로는 홍수가 나 있었는데, 마치 우리를 향해 흘러오는 강처럼 보였습니다. 할 수 있는 선택은 안장 깔개를 버리고 마을 둘레에 쳐 놓은 철조망 담장으로 올라가는 것뿐이었습니다. 늦은 밤, 우리는 피곤하고 지치고 흠뻑 젖은 채 마을로 들어가 첫 번째로 보이는 집에 몸을 의탁했습니다. 그 착한 가족은 몸을 말리게 해 주고, 맛있는 샌드위치도 주고, 우리가 있던 방에 잠자리도 깔아 주었습니다. 그 방이 흙바닥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챈 우리에게 번뜩이는 생각이 또 다시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땅바닥에 원을 그리고서 흙바닥에 쓰러져 잠들 때까지 계속 구슬치기를 했습니다.

철없던 우리는 그저 우리 생각밖에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야 할 이 아이들을 절박하게 찾아 헤맬 가족들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각했다면, 그런 쓸데없는 일로 일정을 늦추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현명했다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먹구름이 모이는 것을 눈치채고, 발걸음을 재촉해 폭우보다 앞서 갔었을 것입니다. 이제 지금은 좀 더 많은 경험을 해 보았기에 저는 언제나 저 자신에게 이렇게 일깨워 줍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말라.

사촌들과 한 이 경험에서 저는 시대의 표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디모데후서 3:2~4)라고 설명했던, 위험천만한 폭풍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대해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 세상적인 준비와 영적인 준비를 모두 해야 합니다.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은 잘 보이지 않고 좀 더 힘든 영적인 준비입니다.”(“재림을 위한 준비”,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9쪽) 다른 말로 하자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위험천만한 시대에 영적인 준비는 시급한 문제이므로, 저는 아주 강력한, 이 시대의 한 가지 표적에 관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려 합니다. 저는 직업상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 있었기에 그것의 가치, 특히 의사소통 면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잘 압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사람들이 만든 정말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추잡하고 사람을 오도하는 것들도 가득 차 있습니다. 기술은 표현의 자유를 확장시켰지만, 한편으로는 클릭 수에 근거한 거짓 신뢰성을 자격 없는 블로거들에게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복음 7:20)는 영원한 원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추잡한 이미지를 보거나 그리스도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모함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지 마십시오. 이 두 가지 행동은 성신과 보호하고 지지하는 성신의 권능을 잃어 버리는, 똑같은 결과만을 낳습니다. 악덕과 불행이 언제나 뒤따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연히라도 복음에 대한 자신의 간증을 의심하게 하는 어떤 것을 접한다면, 간청하건대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모든 지혜와 진리의 근원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간증을 키우십시오. 세상에는 진리와 거짓을 반씩 섞어서 여러분 신앙을 허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과 함께할 수 있도록 늘 합당해야 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성신의 동반은 즐거운 편의성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적 생존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고 영의 속삭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속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조셉 스미스-마태 1:37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해야 합니다.

완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했던 조셉 스미스는 모두 그들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짓 모함자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조셉 스미스는 참된 선지자라는 그분들의 간증이 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좋은 열매가 나쁜 나무에서 열릴 수 있습니까? 저는 우리 구속주께서 제 죄를 용서하시고 제 멍에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으며, 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행복의 상태로 데려다주셨음을 압니다. 또한 저는 조셉 스미스가 선지자라는 것을 아는데, 이는 제가 몰몬경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 보라.”(모로나이서 10:4)는 단순한 약속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분의 회복된 복음의 진실성을 믿으려면 물리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믿지 못하도록 설득하려 애썼던 코리호어가 앨마에게서 들은 이 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네가 표적을 충분히 가졌거늘, 네가 네 하나님을 시험하려느냐? 네게 이 모든 네 형제들과 또한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증거가 있거늘, 네가 말하기를 내게 표적을 보이라 하려느냐? 경전이 네 앞에 놓여 있고”(앨마서 30:44)

여러분과 제가 바로 구주의 속죄 권능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선지자 조셉의 성역과 자신의 간증을 확고하게 지킨 초기 성도들의 충실성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제 온 세상에 퍼져 있으며 유례없이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시대처럼 보거나 만져 보지 않아도 믿는 겸손한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위험천만한 시대입니다. 지금은 진리의 근원을 바라보고 간증을 강화할 때입니다.

제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촌들과 저는 찬란한 태양과 아름다운 아침 하늘을 보며 깨어났습니다. 잃어 버린 세 소년을 찾아 헤매던 한 남자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우리를 말에 태우고 같은 초원을 지나 집으로 향했습니다. 돌아가면서 저는 잊지 못할 광경을 보았습니다. 밤새 우리를 찾아 헤맸던 수많은 사람과 진흙탕에 빠진 트랙터와 트럭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 안장 하나, 저기서 말 한 필을 찾아 냈던 식구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를 보며 안도했고, 저는 그 마음과 그분들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사랑하는 할머니와 숙부와 숙모님도 앞에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은 기쁨에 울음을 터트리시며 우리를 품어 주셨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절절하게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은 온통 폭풍이 닥칠 것이라는 표적들로 가득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자신을 준비하십시오. 강한 간증 안에 안전이 있습니다. 매일 간증을 소중히 여기고 키웁시다.

저는 우리가 가족으로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팔을 펼치고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구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압니다. 베드로처럼 이를 제게 알려 준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마태복음 16:15~19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