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네가 낫고자 하느냐
2013년 10월


네가 낫고자 하느냐

회개하고, 주님을 향해 개심할 때, 우리는 온전하게 되고 죄책감은 씻겨 사라집니다.

예루살렘에서 즐거운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구주께서는 군중을 떠나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찾아 나서셨습니다. 주님은 양을 매매하는 곳 옆 행각 다섯 개가 있는 연못인 베데스다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발견하셨는데, 그 연못은 병든 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 못 근처에는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요한복음 5:3~4)

그곳을 방문하신 구주의 모습은 칼 블로흐가 그린 ‘베데스다에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그리스도’라는 아름다운 작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블로흐는 간이 천막을 살짝 들어올리신 그리스도와 그 사이로 보이는, 못 근처에서 누워 기다리던 “병자”(요한복음 5:7)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여기서 병자[impotent man]란 힘이 없고 무기력한 사람을 뜻하는데, 이를 통해 타인을 보살피는 구주의 자비와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그림에는 38년간 고통 속에 살아오느라 쇠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진 한 고통받는 남자가 그늘 진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한 손으로 천막 끝을 들어올리시고 다른 손으로는 손짓을 하시며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한복음 5:6~7)

그 사람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련에 대해 예수께서는 심오하면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주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한복음 5:8~9)

누가는 또 다른 사랑의 예를 말해 주었습니다. 구주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나병 환자 열 명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질병 때문에 “멀리 서”(누가복음 17:12)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정하게 여겨지고 배척받는, 쫓겨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7:13) 다른 말로 하자면 이렇게 간청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해 주실 수 있는 이 없겠나이까?”

동정심으로 충만한 이 위대한 의사는 기적에 앞서 신앙이 있어야 함을 아셨기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누가복음 17:14)

신앙으로 나아가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디며 실제로 자신의 몸이 깨끗해져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7:15~16, 19)

과거 내과의사이자 외과의사로서 제가 했던 일은 육신을 치료하고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과 마음, 영 모두를 치유하시며, 그분의 치유는 신앙으로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신앙과 기쁨으로 충만해진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자신의 간증을 발견한 순간, 또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며 온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러한 기억이 흐려졌다고 느껴진다면,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우리가 온전해지거나 완전해지는, 또는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와서 나를 따르라”(누가복음 18:22)는 말은 우리에게 예전의 삶과 세상적인 욕망을 뒤로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롭고 충실한 마음으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라고]”(고린도후서 5:17) 권유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다시 온전하게 됩니다.

“내게 가까이 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가까이 가리라. 나를 부지런히 찾으라. 그리하면 나를 찾으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게 될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리리라.”(교리와 성약 88:63)

그분께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필멸의 삶이란 원래 어려움을 겪도록 계획되었으며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니파이후서 2:11)은 구원의 계획에 있는 결함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반대되는 것은 필멸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며, 우리의 선택의지를 강화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해 줍니다. 삶의 우여곡절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로 향할 때 우리의 얼굴에는 그분의 형상이 새겨지게 됩니다.(앨마서 5:19 참조)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누가복음 22:19)는 말은 구주께서 우리가 성찬식이라 부르는 의식을 제정하시며 하셨던 말씀입니다. 빵과 물을 취하는 이 의식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성약을 다시 새롭게 하며 우리 삶에 속죄의 권능을 불러옵니다. 완악한 마음과 거만한 태도를 낳는 습관과 삶의 방식을 버릴 때 우리는 치유됩니다. 우리가 “반역의 무기”(앨마서 23:7)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스스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자”(교리와 성약 58:28)가 되고, 더 이상 사탄의 책략에 눈이 멀거나 세상의 불협화음에 방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향해 참된 개종을 이룰 때, 우리는 온전하게 되고 죄책감은 씻겨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노스가 그랬듯 “어찌 그 일이 이루어졌나이까?” 하고 의문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네 신앙으로 말미암느니라. …… 그런즉 가라, 네 신앙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이노스서 1:7, 8)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네덜란드인 코리 텐 붐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러한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언니 베치는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나 코리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종종 공개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고, 치유와 용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 번은 코리가 독일 라벤스부르크에서 고통스럽게 생활하던 시절 그 수감 생활에 일조했던 전 간수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가 나눈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가씨,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 말처럼 그분은 나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코리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나서서 …… 사람들에게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으면서도 저는 손을 내밀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끓어오르다가, 저는 그것이 죄임을 깨달았습니다. …… 주 예수님, 기도드리나니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제가 그를 용서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웃음을 지으려 애쓰고, 손을 내밀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그 어떤 온정이나 자애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 저는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용서를 제게 주옵소서.

그의 손을 잡았을 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어깨에서 팔로, 손으로 전류가 흘러 그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했고, 그 사이 제 가슴에는 그 이방인에 대한 사랑이 샘솟아 거의 저를 압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치유가 우리의 용서나 선함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실 때, 그분은 그 명령과 함께 사랑 그 자체를 주십니다.”1

코리 텐 붐은 온전해졌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슬픔과 비통에 싸여 있거나 혹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는 생명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2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행하다고, 합당하지 못하다고, 온전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삶에서 불공평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올바르게 정리될 수 있[다]”3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을 위한 구주의 시간표와 목적을 믿는 신앙을 지니고, 인내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마가복음 5:36)

명심하십시오. 구주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치유하려 하십니다.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분께 기도하고, 회개하며, 용서하고, 잊어 버리기 시작함으로써 문을 열어 드립시다. 베데스다 못에 있던 그 병자와 예루살렘으로 가던 나병환자, 코리 텐 붐은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낫고자 하[십니까]?” 일어나 걸으십시오. 그분의 “은혜가 …… 족하[시며]”(고린도후서 12:9) 여러분은 홀로 걷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은 우리의 현재 모습과 장차 우리가 이루게 될 모습까지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온 인류를 위해 속죄 희생을 치르게 하셨으며, 그분의 친절한 자비로, “그가 정한 때에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또 그 자신의 뜻에 따라”(교리와 성약 88:68)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은 낫게 되고 완전하게 될 것임을 압니다. 이러한 간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

  1. Corrie ten Boom, The Hiding Place (1971), 215.

  2. 토마스 에스 몬슨, “삶의 고난을 헤치며”, 리아호나, 1994년 1월호, 68쪽.

  3.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선교 사업 지도서(2004),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