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2015년 4월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세상적인 두려움은 불안과 염려를 불러일으키지만 경건한 두려움은 평안과 안심, 확신의 근원이 됩니다.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일이 있습니다. 언젠가 친구와 놀던 중에 집 근처 가게의 창문을 의도치 않게 깨트린 일이 있었습니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고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자 저는 공포에 휩싸인 채 얼어붙었습니다.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운명에 처한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모님이 침대 밑에 꽁꽁 숨어 있던 저를 달래서 나오게 하시고는 가게 주인을 찾아가 잘못을 바로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다행히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라는 요구는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무시무시하고도 실질적인 공포를 맛보았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건강 문제나 가족에게 생긴 어려움이나 위험을 알게 되었을 때, 또는 세계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보면서 훨씬 더 큰 두려움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곧 닥칠 위험이나 불확실성, 고통과 더불어 예기치 못하게, 그리고 어떨 때에는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데다 대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험 때문에 두려움이라는 괴로운 감정이 생깁니다.

또 일상 속에서 범죄 폭력, 기아, 전쟁, 부정부패, 테러, 가치관 쇠퇴, 질병, 자연의 파괴력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아 두려움과 우려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는 주님께서 예견하신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 온 땅이 동요하게 될 것이며, 사람들이 기절할 것이요”(교리와 성약 45:26)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알고 그분을 믿는 신앙을 지니는 것이 어떻게 공포를 쫓아버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중요한 주제를 함께 살펴보는 동안 성신이 우리 각자를 축복해 주시기를 진정으로 간구합니다.

필멸의 삶에 대한 공포

금단의 열매를 먹은 후,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자 에덴 동산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아담이 답합니다.] 내가 …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 두려[웠나이다]”(창세기 3:9~10) 눈여겨볼 점은 타락의 첫 번째 결과 중 하나로 아담과 이브가 두려움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이 강력한 감정은 필멸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몰몬경의 한 일화에는 우리가 큰 역경에 부딪힐 때 주님에 대한 지식(베드로후서 1:2~8; 앨마서 23:5~6 참조)이 어떻게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안을 얻는 힘이 되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힐램 땅의 앨마 백성들은 레이맨 군대가 진군해 오는 것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앨마가 나아가 그들 가운데 서서, 그들을 권면하기를 너희는 놀라지 말고 주 너희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건지시리라 …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움을 가라앉히고”(모사이야서 23:27~28)

앨마가 백성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지 않은 점을 주목하십시오. 오히려 앨마는 믿는 이들에게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만이 그들을 건지실 수 있음을 기억하라고 권고했습니다.(니파이후서 2:8 참조) 백성들은 구주의 세심한 보호의 손길을 깨닫고서 두려움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속적인 평안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근원이므로, 주님을 올바르게 알고 그분을 믿는 신앙을 지닐 때 우리는 두려움을 가라앉힐 힘을 얻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게서 배우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나의 영의 온유함으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는 내 안에서 화평을 누리리라.”(교리와 성약 19:23)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의의 일을 행하는 자는 자기 상을 받으리니, 곧 이 세상에서는 평화를, 장차 올 세상에서는 영생을 받으리라.”(교리와 성약 59:23)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확신하며 그분의 공덕과 자비와 은혜에 의지하면, 그분의 속죄로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게 됩니다.(모로나이서 7:41 참조) 그러한 신앙과 소망을 지닐 때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양심의 감미로운 평안이 삶에 찾아옵니다. 속죄의 권능으로 회개가 가능해지고 죄로 생긴 절망감은 자취를 감춥니다. 또한 그 권능은 제한된 필멸의 능력으로는 인식하거나 성취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선한 일을 보고 행하며 선한 사람이 되도록 힘을 줍니다. 진실로 헌신적인 제자가 될 때 임하는 위대한 축복 중 하나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빌립보서 4:7)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평안을 통해 영원이라는 소중한 안목으로 필멸의 삶을 보게 되고 하늘의 목적지에 꾸준히 초점을 맞추게 하는 영적인 터(골로새서 1:23 참조)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교리로 삶의 모든 면에서 목적과 방향을 얻기에,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의식과 성약으로 좋거나 나쁜 시기에도 늘 힘과 위안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권 권세로 가장 중요한 것들이 현세와 영원에서 지속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습니다.

현 세상에서 자주, 또 너무 쉽게 괴로움을 주는 두려움을 우리가 과연 가라앉힐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명백한 대답은 “예”입니다. 삶에서 그러한 축복을 받으려면, 다음 세 가지 기본 원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1)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2)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우십시오. (3)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앨마가 아들 힐라맨에게 주었던 권고는 정확히 지금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참으로 주의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도록 하라.”(앨마서 37:47)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구주를 바라보며 그분께 굳건히 초점을 고정해야 합니다.

바다 한복판에서 출렁이는 배 안에 있던 주님의 사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가셨을 때, 사도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마태복음 14:27~29)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걸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거친 바람을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태복음 14:30~31)

저는 구주의 권유에 즉각 열렬하게 응한 베드로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베드로는 구주께 시선을 고정한 채 배 밖으로 발을 디뎠고 기적적으로 물 위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파도에 시선을 돌리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구주의 다음 가르침을 따를 때 두려움을 정복하고 신앙을 강화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나를 바라보라. 의심하지 말며, 무서워 말라.”(교리와 성약 6:36)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우십시오

힐라맨은 아들 니파이와 리하이에게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이신 우리 구속주의 반석 위에 너희가 너희의 기초를 세워야 함을 기억하고 기억하라. 그리하면 악마가 그의 강한 바람을, 참으로 회리바람 가운데 그의 화살들을 내보낼 때, 참으로 그의 우박과 그의 강한 폭풍이 너희에게 부딪칠 때, 그것이 너희를 이겨 비참과 끝없는 재난의 심연으로 너희를 끌어내리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세워진 반석으로 인함이라, 이는 확실한 기초이니 만일 사람들이 그 위에 세우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할 기초니라.”(힐라맨서 5:12)

의식과 성약은 우리 삶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라는 기초 위에 세우는 데 사용해야 할 구성 요소입니다. 합당하게 의식을 받고 성약을 맺으며, 그러한 성스러운 결심을 충실히 기억하고 이행하며, 받아들인 의무에 따라 살고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안전하게 구주께 연결되어 그분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속은 우리 삶의 어느 시기에든 영적인 힘과 안정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는 의식과 성약으로 구주의 확실한 기초 위에 소망과 행위를 굳건히 세울 때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니파이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과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느니라. 그런즉 만일 너희가 힘써 앞으로 나아가되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며 끝까지 견딜진대, 보라, 이같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시느니라.”(니파이후서 31:20)

이 성구에 묘사된 잘 수련된 인내는 영적인 이해와 비전, 끈기, 참을성,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믿는 신앙과 이를 통한 신앙을 행사하고, 삶에서 그분의 뜻과 그분의 때에 유순하게 순종하며, 모든 것에서 그분의 손길을 인정할 때 기쁨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 왕국의 평화로운 것들을 얻게 됩니다.(교리와 성약 42:61 참조) 어려움에 부딪히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때조차도 기쁘게 인내하며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 평안한 생활”(디모데전서 2:2)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복음 원리를 배우고 그에 따라 살며 결연히 성약의 길로 전진해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힘을 얻어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두려움과는 다르지만, 일종의 두려움으로 연관 지을 수 있는 것으로서 경전에 나오는 “[경건한] 두려움”(히브리서 12:28) 또는 “주를 경외함”(욥기 28:28; 잠언 16:6; 이사야 11:2~3)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두려움은 불안과 염려를 불러일으키지만 경건한 두려움은 평안과 안심, 확신의 근원이 됩니다.

그렇지만, 두려움과 연관된 것이 어떻게 우리를 교화하거나 영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설명하려는 의로운 두려움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건과 존중, 경외감이라는 깊은 감정(시편 33:8; 96:4 참조)과 그분의 계명에 대한 순종(신명기 5:29; 8:6; 10:12; 13:4; 시편 112:1 참조)과 그분이 주관하시는 마지막 심판과 공의에 대한 기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두려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질과 사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분의 뜻에 우리의 뜻을 기꺼이 순종하려고 하며, 모든 남성과 여성은 심판의 날에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비롯되어 발전합니다.(교리와 성약 101:78; 신앙개조 제2조 참조)

경전에서 확인해 주듯, 경건한 두려움은 “지식의 근본”(잠언 1:7), “지혜의 훈계”(잠언 15:33), “경건한 의뢰”(잠언 14:26), “생명의 샘”(잠언 14:27)이 됩니다.

경건한 두려움은 마지막 심판, 그리고 개인적으로 소망과 생각, 말, 행위(모사이야서 4:30 참조)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분의 면전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막연히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우리의 합리화와 가정, 자기 기만에 대한 “완전한 지식”(니파이후서 9:14; 앨마서 11:43 참조)을 지닌 채 그분 면전에 서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상에 전에 살았고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 행위가 선하든지 혹은 그 행위가 악하든지 그들의 행위에 따라 그에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모사이야서 16:10) 우리의 소망이 의롭고 행위가 선한 것이라면, 심판대에 서는 것은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야곱서 6:13; 이노스서 1:27; 모로나이서 10:34 참조) 그리고 그 마지막 날에 우리는 “보상을 받아 의에 이를 것[입니다.]”(앨마서 41:6)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소망이 악하고 행위가 사악하다면, 심판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만일 바위와 산들을 명하여 우리 위에 떨어져 그의 면전에서 우리를 가리우게 할 수 있다면 실로 기쁠 것[입니다.]”(앨마서 12:14)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악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앨마서 41:5)

이는 전도서에 요약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도서 12:13~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경건한 두려움은 필멸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선해질 수 없으며 결코 주님의 요건이나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리를 짓누르는 근심조차도 없애 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행위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히 선해질 수 없으며 필요한 만큼 선에 부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와 소망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후에”(니파이후서 25:23) 우리는 구주의 무한하면서도 영원한 속죄 희생으로 가능해진 자비와 은혜로만 온전해집니다.(앨마서 34:10, 14 참조) 분명,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에 순종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신앙개조 제3조)

경건한 두려움은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더 온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그분을 더 완벽하게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완전한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모로나이서 8:16) 구주를 바라보고, 우리 삶을 그분의 기초 위에 세우며, 성스러운 결심으로 성약의 길로 전진해 나간다면 경건한 두려움이라는 밝은 빛이 필멸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낼 것(교리와 성약 50:25 참조)임을 약속합니다.

간증 및 약속

저는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합니다. 그분의 권능과 평안은 실재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주이시며,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증거합니다. 그분 덕분에 우리는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요한복음 14:27 참조) 우리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경건하고 성스러운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