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9
기쁨과 영적 생존
2016년 10월


기쁨과 영적 생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초점을 맞출 때,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의 영적 생존의 열쇠가 되는 원리를 논하려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비극과 예기치 않은 사건이 늘어감에 따라 이 원리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후기에 살고 있으므로 예언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 바울, 니파이, 몰몬을 비롯한 여러 선지자는 위험한 때가 오리라는 것을 예견했습니다.1 우리 시대에 온 세상이 동요할 것이요,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 무정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3 많은 사람이 대적의 일을 떠받치는 사탄의 종이 되리라고 말입니다.4 실로 우리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로 씨름하고 있습니다.5

나라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비열한 테러범들이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키며, 기업에서부터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부패가 더욱 만연해질 때, 우리는 어디서 도움을 얻어야 할까요? 이 후기에, 개인적인 어려움과 삶의 혹독한 시련을 이기려면 어디서 도움을 얻어야 할까요?

선지자 리하이는 영적 생존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먼저 그가 처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리하이는 예루살렘에서 진리를 가르치다가 박해를 받았으며, 재산을 뒤로한 채 가족을 데리고 광야로 떠나라는 주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장막에서 생활하며 미지의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구할 수 있는 양식으로 연명했습니다. 또 두 아들인 레이맨과 레뮤엘이 주님의 가르침에 맞서 모반을 일으키고 형제인 니파이와 샘을 공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리하이는 반대, 걱정, 비탄, 고통, 실망, 그리고 슬픔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저 없이 담대하게 주님이 계시하신 원리를 선포했습니다. “사람이 존재함은 기쁨을 갖기 위함이니라.”6 생각해 보십시오! 이 필멸의 삶의 속성과 목적을 묘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낱말 중에서 그는 기쁨이란 말을 선택했습니다.

인생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 온갖 종류의 시험과 난관으로 가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쁨을 갖기 위해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기쁨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본부 상호부조회 제2대 회장이었던 엘리자 알 스노우 자매는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습니다. 1838년 혹독한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미주리 주는 악명 높은 근절령을 발표했고,7 그녀를 비롯한 성도들은 즉시 미주리 주를 떠날 것을 종용받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엘리자의 가족은 난민이 된 성도들이 사용했던 작은 통나무 집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앞선 이들이 통나무 틈새를 메꾼 재료를 대부분 긁어내어 땔감으로 사용했던지라, 통나무 사이에는 고양이가 드나들 만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 엄동설한에 음식은 딱딱하게 얼어 버렸습니다.

그날 밤, 6.1 제곱미터 크기의 작은 통나무 집 안에는 80명가량의 성도들이 옹송그리며 모여 있었습니다. 대다수는 몸을 덥히려고 애쓰며 앉거나 선 채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바깥에서는 일단의 남자들이 타오르는 불가에 모여 일부는 찬송가를 부르고, 일부는 언 감자를 구우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엘리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다들 밝은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겉으로만 보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주지사에게 추방당한 무리가 아니라 유람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살을 에도록 추운 그 고달픈 저녁에 관한 엘리자의 이야기는 놀랄 만큼 낙천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매우 유쾌한 밤이었다. 오직 성도들만이 어떤 상황에 있든 행복할 수 있다.”8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힘든 시간이 하루, 일주일, 심지어 한 해 동안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놓인 환경과는 관계없이 어디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께서 가르치셨듯이,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복음에 초점을 맞출 때,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그분은 모든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성탄 절기가 되어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노래하며 기쁨을 느낍니다.9 또 우리는 그 기쁨을 일 년 내내 느낄 수 있습니다. 후기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입니다!

바로 그래서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고자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교회 회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침례를 주는 것은10 그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입니다.11

구주께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주시듯12 인간의 논리나 이해력을 넘어서는 강렬하고 심오하며 폭넓은 기쁨을 주십니다. 이를테면, 자녀가 불치병을 앓거나 여러분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또는 배우자가 여러분을 등질 때,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구주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분은 “고난은 잠시뿐”이며13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성별되는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키시며14 변함없는 기쁨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기쁨을 얻는 것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15 “무슨 생각을 하든지” 말입니다.16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그리고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맺은 성약을 지킴으로써 그분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주를 더욱 현실적인 존재로 느끼고 그분께 기쁨을 간구할 때, 우리의 기쁨은 커집니다.

기쁨에는 힘이 있습니다. 기쁨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삶에 임합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이십니다.17 생각해 보십시오! 구주께서는 지상에 주어진 가장 고통스러운 일을 견디기 위해 기쁨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그런데 구주 앞에는 어떤 기쁨이 있었을까요? 우리를 정화하고 치유하며 강화하는 기쁨, 회개할 모든 이의 죗값을 치르는 기쁨, 우리가 깨끗하고 합당한 모습으로 본향으로 돌아가 하늘 부모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해 주는 기쁨이 분명 그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임할 기쁨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금은 감당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두렵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것들을 우리는 견딜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적으로 위태로운 상태에 있던 한 아버지는 종국에는 깨끗해져서 주님께 합당해지는 기쁨, 즉 죄와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기쁨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쁨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감독에게 외설물로 인한 문제와 거기서 이어진 외도를 모두 고백할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감독의 권고를 철저히 따르며 다시 아내의 신뢰를 얻고자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젊은 여성은 대중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영적으로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조롱을 견뎌 내기 위해 성적인 순결을 유지하는 기쁨에 집중했습니다.

아내를 수시로 비하하고 자녀에게 화를 참지 못하던 한 남성은 변하지 않는 동반자인 성신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기쁨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집중하다 보니 자신이 너무나 자주 굴복하고 말았던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버리고,18 필요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제 친한 동료 한 명은 최근에 저에게 과거 이십 년간의 힘겨웠던 시련에 관해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기쁨으로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웠네. 나의 짐은 참으로 우리 구속주의 기쁨 속에 삼키운 바 되었다네.”19

우리 “앞에 있는” 기쁨에 집중할 때,20 우리는 어떤 것을 감내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점을 회개할 수 있을까요? 어떤 연약한 부분이 강해질 수 있을까요?21 어떤 징계가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22 어떤 낙담이, 곧 어떤 비극이 유익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23 어떤 쉽지 않은 봉사를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24

부지런히 구주께 집중하고, 기쁨에 초점을 맞추는 그분의 방식을 따르는 동안 우리는 기쁨을 가로막는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였던 코리호어를 기억하십니까? 코리호어는 구주에 관해 거짓을 퍼트리며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대제사 앞에 끌려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주의 길을 굽게 하며 돌아다니느냐? 어찌하여 너는 이 백성에게 그리스도가 없을 것이라고 가르쳐, 그들의 기뻐함을 훼방하려 하느냐?”25

그리스도나 그분의 교리에 반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쁨을 가로막습니다. 여기에는 온라인과 여러 블로그에 넘쳐나는 인간의 철학도 포함됩니다. 인간의 철학은 코리호어가 한 일과 똑같은 역할을 합니다.26

행복을 찾기 위해 세상을 동경하며 세상의 공식을 따른다면,27 우리는 절대 기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은 다양한 정서와 감각을 체험할 수는 있지만 기쁨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28 기쁨은 충실한 이에게 주어지는 은사입니다.29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의로운 삶을 살고자 의식적으로 애쓰는 데서 오는 은사입니다.30

그분은 우리에게 기쁨을 얻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삼고자 선택하고31 삶에서 구주의 속죄가 역사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32 배우자를 보살피고 자녀들을 인도할 때마다, 또한,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누군가의 용서를 구할 때마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해의 왕국의 율법대로 생활하고, 날마다 성약을 지키며,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도울 때 기쁨은 우리 것이 됩니다.

시편의 저자가 쓴 다음 말씀을 새겨들으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33 이런 원리가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하루하루가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될 수 있습니다.34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디모데후서 3:1~5 참조.

  2. 교리와 성약 45:26; 88:91 참조.

  3. 디모데후서 3:2~4.

  4. 교리와 성약 10:5 참조.

  5. 에베소서 6:12.

  6. 니파이후서  2:25.

  7. 1838년 10월 27일에 릴번 더블유 보그스 미주리 주지사가 몰몬 근절령을 발표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349쪽 참조)

  8. Eliza R. Snow, Edward W. Tullidge, The Women of Mormondom(1877), 145–146 참조.

  9.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가, 130장.

  10. 선교사는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푸는 등으로 주님의 명을 행한다.(마태복음 28:19; 마가복음 16:15; 몰몬서 9:22; 교리와 성약 68:8; 84:62; 112:28 참조) 예수께서는 중보 기도에서 당신과 제자들이 누리는 기쁨의 관계를 밝히셨다.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13; 강조체 추가)

  11. 앨마서 13:22 참조.

  12. 빌립보서 4:7.

  13. 교리와 성약 121:7.

  14. 니파이후서  2:2 참조.

  15. 히브리서 12:2.

  16. 교리와 성약 6:36.

  17. 히브리서 12:2.

  18. 모사이야서 3:19 참조. 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녀의 적이기도 하다.

  19. 앨마서 31:38 참조.

  20. 히브리서 12:2.

  21. 이더서 12:27 참조.

  22. 히브리서 12:6 참조.

  23. 교리와 성약 122:7 참조.

  24. 마태복음 19:26; 마가복음 10:27 참조.

  25. 앨마서 30:22. 몰몬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선택함으로써기쁨과 환희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코리호어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그와 다른 선택은 무엇이든 궁극적인 멸망으로 이어진다.

  26. 근거 없는 말을 뜻하는 중상모략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대한 평판을 손상하려는 의도로 전하는 거짓되고 악의적인 말로 정의된다. 중상모략은 코리호어 시대에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중상모략 속에서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진리의 표준이 세워졌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손은 이 사업을 정지시키지 못합니다. 박해가 심해지고 폭도들이 결탁하며, 군대가 소집되고 비난이 들끓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리는 대담하고 고귀하게 앞으로 퍼져 나아가 모든 대륙, 모든 나라에 파고들 것이며, 모든 귀 있는 자가 이 진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될 것이며,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이 일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시게 될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444쪽)

  27. 세상은 소비가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해도 기쁘지 않다면, 더 많이 소비하라고 한다. 또한, 세상은 거듭 죄를 지음으로써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며, 이렇게 해도 기쁘지 않다면 죄를 더 많이 지으라고 한다. 세상은 모든 향락의 무지개 끝에는 기쁨의 항아리가 있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28. 이 세상에서나 다가올 세상에서도 그러하다.

  29. “세상의 십자가를 견[딘 의로운 성도들은] …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하리니, 그들의 기쁨이 영원토록 충만하리라.”(니파이후서 9:18)

  30. 예를 들어, 니파이후서 27:30; 앨마서 27:16~18 참조.

  31. 니파이전서 17:40 참조.

  32. 모사이야서 4:2~3 참조.

  33. 시편 16:8, 11.

  34. 이사야 35:10; 니파이후서 8: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