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하여

엠 러셀 밸라드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엠 러셀 밸라드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위대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짐이 가벼워집니다.

페리 장로님, 장로님은 분명 교회 전체에서 제일 젊은 90세이실 겁니다. 여러분도 장로님이 튀어 오르듯 의자에서 일어나시는 것을 보시지 않았나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신선하고 잘 익은 토마토나 나무에서 갓 따낸 잘 익고 즙 많은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저는 60년 전 제 선친께서 유타 주 할러데이에서 조그마한 복숭아 과수원을 하시던 때가 떠오릅니다. 아버님은 그곳에 벌통을 두어 복숭아꽃 가루받이를 하게 하셨는데, 그렇게 하면 꽃들은 마침내 아주 크고 달콤한 복숭아가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그 순한 꿀벌들을 좋아하셨고, 벌 수천 마리가 함께 일하며 복사꽃에서 난 꿀을 모아 달고 노란 벌꿀로 변화시키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벌꿀은 자연이 주는 가장 영양 많은 식품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영양학자들은 벌꿀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성분, 즉 효소, 비타민, 미네랄, 수분 등을 함유한 식품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아버님은 벌집을 다루는 일에 저를 늘 끌어들이려 하셨지만,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분이 벌들을 직접 돌보게 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약 육만 마리의 벌들이 운집한, 잘 조직된 벌집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꿀벌은 가루받이를 하고, 꿀을 모으며, 그 꿀을 농축하여 벌꿀을 만드는 강한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집착력은 우리 창조주께서 벌에게 부여하신 자연적인 본능입니다. 벌꿀 450그램을 생산하려면 같은 벌집에 사는, 평균 이만에서 육만 마리가량 되는 벌들은 수백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고, 지구를 두 바퀴 돌 수 있는 거리를 여행합니다. 겨우 몇 주에서 넉 달밖에 안 되는 짧은 수명으로, 꿀벌 한 마리가 벌집에서 벌꿀 생산에 기여하는 양은 찻숟가락으로 십이 분의 일에 불과합니다.

비록 전체 벌꿀 양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각 꿀벌이 만드는, 찻숟가락 십이 분의 일에 해당하는 꿀은 벌집이 존속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벌들은 서로 의지합니다. 몇 마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도 모든 벌이 충실하게 제 역할을 다 하면서 가벼워집니다.

벌집은 우리 교회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상징이었습니다. 우리는 몰몬경에서 수천 년 전에 야렛 백성이 미대륙으로 여행할 때 꿀벌을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배웁니다.(이더서 2:3 참조) 브리검 영은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주변의 척박한 사막과 같았던 황무지를 오늘날 우리가 보는 비옥한 분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개척자들 사이에 필요한 힘찬 협동심을 고취하고자 벌집을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공통된 비전과 부지런한 노력의 수혜자입니다.

우리는 여러 성전의 내부와 외부에서 벌집 모양을 봅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연단은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 댁 뒷마당에서 자란 호두나무로 만든 것인데 여기에도 벌집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상징은 한 가지 사실을 입증합니다. “훌륭한 대업에 열심히 노력하[는]”(교리와 성약 58:27)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위대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수백만 명의 후기 성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전념하겠다는 집약된 결심으로 벌집처럼 움직인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구주께서는 첫째 되는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 39~40)

구주께서 하신 말씀은 단순하지만 심오하며 매우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돌봐야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모두 함께 나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가 되어, 열과 성을 다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돌보고 주위의 가족, 친구, 이웃, 동료 시민을 섬긴다면, 세상에 얼마나 큰 선을 이룰 수 있을지 말입니다.

야고보의 서한에 나오듯이 봉사는 참된 종교의 본질입니다.(야고보서 1:27 참조)

우리는 교회 회원들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봉사, 그중에서도 특히 화재, 홍수,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의 재난이 닥쳤을 때 하는 인도주의적 봉사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처럼 꼭 필요하면서도 몹시 감사한, 비상 시의 대응은 서로의 짐을 가벼이 하는 한 방법으로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사랑에서 우러나는 작은 온정에 찬 행동을 매일 다른 사람에게 행할 때, 이런 행동들이 쌓이고 모여 수백만 번에 이른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이런 행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에게 그분의 사랑을 알리게 되어 결국 그들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혼탁한 세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며,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하는 단순한 봉사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집약되었을 때 발휘할 효과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마치 꿀벌 한 마리가 벌집에 제공하는 찻숟가락 십이 분의 일에 해당하는 벌꿀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인이 보이는 수백만의 친절한 행위를 통해 피부에 와 닿을 만큼 나타날 때 그 사랑은 신앙, 소망, 사랑이라는, 생명을 유지하는 꿀이 되어 세상을 감미롭게 하고 살찌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헌신적인 꿀벌처럼 되고, 그런 헌신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게 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 중 많은 사람은 교회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부름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특히 일요일에 그렇습니다. 이 일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머지 주중에도 선한 일에 열심히 참여하려는 생각과 마음이 있습니까? 단지 할 일만 기계적으로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진실로 개심했습니까?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신앙의 씨앗을 우리 영혼의 비옥한 토양에 깊이 심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영원한 행복과 평안을 얻는 데 필수적이라고 앨마가 이야기했던 마음의 큰 변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앨마서 5:12~21 참조)

기억하십시오, 벌꿀에 필멸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성분이 들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교리와 복음에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남을 사랑하고 봉사하려는 우리의 마음이 구주의 마음과 같이 되려면, 우리의 간증이 마음속에 있는 다른 것들을 넘어서서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니 그런 뒤에라야 우리는 참되게 개심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영의 영향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더 이상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명예를 갈망하거나 우리의 교만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교리와 성약 121:35~37 참조) 그 대신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그리스도다운 다음 특성들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1. 온화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습니다.(교리와 성약 121:41 참조)
  2. 친절하며, 위선과 간교함이 없습니다.(교리와 성약 121:42 참조)
  3. 모든 사람을 향하여 사랑을 느낍니다.(교리와 성약 121:45 참조)
  4. 생각이 언제나 덕스럽습니다.(교리와 성약 121:45 참조)
  5. 더 이상 악을 행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모사이야서 5:2 참조)
  6. 성신은 변하지 않는 우리의 동반자가 되며, 신권의 교리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같이 우리 영혼을 적십니다.(교리와 성약 121:45~46 참조)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지금 종교적인 열광이나 광신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다만, 복음의 교리가 우리 가슴과 영혼에 깊이 스며들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온전한 개심을 향해 합리적인 발걸음을 내딛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바에 맞는, 고결하고 일관된 행동과 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고결함은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또 영적 민감성을 증폭시켜 다른 사람이 처한 어려움과 영을 더 쉽게 인식하게 합니다. 삶에 기쁨을, 영혼에는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죄를 회개하고 구주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따를 때 느끼는 그런 기쁨과 평안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까요? 여기 매일 할 수 있는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어린 소년 소녀, 청남 청녀, 독신 성인, 아버지 어머니 여러분을 포함하여 모든 교회 회원에게 효과가 있습니다.

그 간단한 방법이란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아침 기도를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 그분의 사랑스러운 자녀 중 한 명에게 봉사할 기회를 찾도록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루 내내 마음을 신앙과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여러분이 도울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보십시오. 그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하십시오. 마치 꿀벌이 꿀과 꽃가루를 모을 수 있는 꽃들에 집중하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여러분의 영적인 감수성이 커지고, 이전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봉사의 기회를 찾게 될 것입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해, 즉 여러분과 저를 통해, 우리의 친절한 말과 행동을 통해, 봉사와 사랑에서 우러나온 우리의 단순한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때가 많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고, 또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보통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의 필요 사항을 충족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왕국에서 서로 봉사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유 킴볼[2006], 82쪽)

저는 여러분이 집과 학교, 직장과 교회에서 이렇게 하신다면 영이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며, 여러분만이 해 줄 수 있는 특정한 봉사가 필요한 사람들을 분별하게 될 것임을 압니다. 여러분은 영의 속삭임을 느낄 것이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과 그분의 복음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도우려는 강한 동기를 받을 것입니다.

또한, 기억하십시오. 작은 꿀벌이 벌집에 제공하는 찻숟가락 십이 분의 일 분량의 벌꿀처럼, 그리스도인다운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누려는 신앙심이 깃든 수만, 수백만 명의 노력이 우리의 노력에 곱해진다면, 날로 사악해져 가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가져올 선한 영향력은 배가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로 단합하여 우리 가족과, 외롭고, 궁핍하고, 낙담한 사람들, 그리고 진리와 평강을 찾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에게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복음 진리와 간증을 나누는 일을 포함하여 매일 기도를 통해 무엇인가 의미 있는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영감을 구하기를 겸손하게 간구합니다. 매일 하루를 마칠 때, “오늘 세상에서 선한 일 했나, 궁핍한 사람 도왔나?”(찬송가, 182장)라는 질문에 “네” 하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헌신적인 작은 꿀벌이 자기 일에 충실하듯이, 우리도 이 사업에 충실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하게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