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사도
가장 높은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순종의 참모습입니다.

아내와 제가 매주 월요일 저녁에 여는 가정의 밤 규모가 갑자기 커졌습니다. 제 남동생과 조카딸, 처남, 그리고 또 다른 조카딸 내외가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기 때문입니다. 친척들과 가까이 사는 축복을 받은 것은 어린 소년 시절 이래로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는 외가 쪽 친척 몇 분과 같은 구획에 살았습니다. 손 외할아버지 댁은 저희 집에서 북쪽으로 옆집이었고, 에머 이모 댁은 남쪽으로 옆집이었으며, 그 구획 남쪽에는 조세핀 이모가, 동쪽에는 앨마 외삼촌이 사셨습니다.

제가 소년이었을 때, 우리는 친척들과 날마다 어울려 함께 일하고 놀고 왕래하며 특별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면 영락없이 곧바로 어머니와 이모들에게 들키기 마련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때와 달리 친척들이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고, 또 비교적 가까이 살더라도 옆집에 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친척들이 서로 가까이에 사는 지금의 상황과 제 어린 시절을 다소 천국과 비슷하다고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 단위의 영원한 속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성장기에 저는 외할아버지와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저는 가족의 장남이었기에 겨울에는 저희 집과 외할아버지 댁, 두 이모님 댁의 보도에 쌓인 눈을 치우고 여름에는 잔디를 관리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제가 잔디를 깎는 동안 대개 앞 베란다에 앉아 계셨습니다. 제가 일을 마치면, 외할아버지 댁 앞 층계에 앉아 우리는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인생에는 여러 가지로 선택할 것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를 외할아버지께 여쭌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늘 그러셨듯이 농장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조를 이룬 말들을 조련해서 함께 일하도록 만드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들은 고삐를 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다루고 이끄는 한 가지 중요한 열쇠는 고삐와 재갈입니다. 마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말이 한 마리라도 생기면, 그 조는 절대 함께 끌지도 못하고, 협력해서 최대치의 힘을 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제 외할아버지께서 이 예를 드시며 제게 가르쳐 주신 교훈을 살펴봅시다. 말들을 끄는 마부는 누구일까요? 외할아버지는 마부는 주님이시라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목적과 계획이 있으신 분입니다. 아울러 말들을 개별적으로나 조별로 조련하고, 또한 조를 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말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가장 좋은 유일한 방법은 말을 순종하게 하고 마부의 지시에 따르게 하는 것임을 마부는 압니다.

외할아버지는 무엇을 고삐와 재갈로 비유하신 것일까요?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저는 그것이 외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성신의 속삭임을 따르도록 가르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할아버지에게 고삐와 재갈은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마부가 잘 조련된, 순종하는 조에 속한 말에게 무언가를 정확하게 시키고 싶다면, 고삐를 부드럽게 당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부드러운 당김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쓰시는 고요하고 작은 음성에 해당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선택의지를 존중하시기에, 그 당김은 거칠고 힘찬 당김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영의 속삭임을 무시하는 남성과 여성은 탕자가 그랬듯이 불순종과 흥청망청한 생활의 당연한 결말을 통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탕자는 당연한 결말이 일어난 후에야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영의 속삭임을 들었습니다.(누가복음 15:11~32 참조)

외할아버지께서 가르치신 교훈은 영의 부드러운 영향력을 받아들이도록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제가 길에서 벗어나면 언제나 그런 속삭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제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릴 때 영의 인도를 받는다면, 제가 결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야고보서 3장 3절에 나오듯이,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재갈에 민감해야 합니다. 주님이 아주 살며시 당기시더라도, 기꺼이 가던 길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의 영과 몸이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성신의 부드러운 속삭임에 주의를 기울이면, 영과 몸은 하나가 되고 우리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와 함께 살도록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개조 제3조에서 순종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에 순종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

외할아버지께서 조를 이룬 말들을 예로 들며 설명하신 그러한 순종에는 특별한 신뢰, 즉 말들을 이끄는 마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외할아버지께서 저에게 가르치신 교훈은 복음의 첫째 원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신앙에 관해 가르치고자 아벨과 에녹, 노아, 아브라함의 예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주목했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충실한 자들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히브리서 11:8~9, 11)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인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한 가지 약속, 곧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12절 참조; 또한 창세기17:15~16 참조) 후손에 관한 약속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후, 아브라함의 신앙은 우리 중 많은 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험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곱씹어 보았지만, 아직도 아브라함의 충실함과 순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침 일찍 떠나려고 충직하게 짐을 꾸리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만, 모리아 산 기슭까지 사흘간의 여정 동안 어떻게 아들 이삭과 함께 그 모든 발걸음을 옮겼을까요? 산 위에서 불을 피울 나무는 어떻게 날랐을까요? 제단은 어떻게 쌓았을까요? 이삭을 어떻게 묶어 제단 위에 눕혔을까요? 이삭에게 그가 제물이 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그리고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일 힘을 어떻게 얻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한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부르며 그 불가능한 시험을 통과했다고 알리는 기적적인 순간이 이를 때까지 신앙의 힘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그런 후 주님이 보내신 천사는 아브라함의 성약에 담긴 약속을 되풀이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품고 순종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도전을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 말들도 각각 개성이 매우 달라서 조련하기가 더 쉬운 말도 있고 더 어려운 말도 있지만, 사람의 다양성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저는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아들딸이며, 자신만의 전세와 현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해결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인생의 시행착오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복음의 둘째 원리, 곧 끊임없는 회개의 필요성을 온전히 인식합니다.

사실, 외할아버지께서 사셨던 그 시대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의 선택에 관한 문제가 훨씬 더 단순했습니다. 매우 지적이고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복잡해진 우리 시대에는 더욱 복잡한 해결책이 요구된다고 믿을지 모르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차이를 알 수 있느냐며 진지하게 여쭈었던 제 질문에 외할아버지께서 답해 주신 것처럼, 오늘날의 복잡한 상황에는 오히려 더욱더 단순함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제시해야 하는 방식이 단순하다는 것을 압니다만, 저에게는 잘 들어맞았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이 방식을 추천하니 제 말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 분명한 선택을 하게 되고, 질문에 대해 단순한 답을 얻게 되어, 학식 있는 사람과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것임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순종을 수동적이며 더 높은 권세를 지닌 이의 명령이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사실, 가장 높은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순종의 참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을 받았을 때조차 하나님께 흔들리지 않는 충실함과 순종을 보였으며,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순종을 통해 충실함을 보이면 하나님은 늘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하고 자기의 소망과 성향만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의 지혜와 힘과 은사에 다가가는 사람들에 비해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얽매어 있는 사람은 작은 일밖에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강하고 주도적인 순종은 연약하거나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선포하고 하늘의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방편입니다. 순종은 일종의 선택입니다. 자신의 제한된 지식과 하나님의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권능 사이의 선택입니다. 제 외할아버지께서 주신 교훈에 따르면, 순종은 입에 물려 있는 영적 재갈을 인식하고 마부의 인도를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실함을 통해, 그리고 회복된 복음의 의식을 받음으로써 성약의 상속자이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충실하고 순종적인 사람은 누구나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