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여러분의 목숨을 구하십시오
March 2016


여러분의 목숨을 구하십시오

2014년 9월 14일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열린 청년 성인 대상 교회 교육 기구 노변의 모임 말씀, “여러분의 목숨을 구함” 에서 발췌. 전문은 devotionals.lds.org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셨음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결국은 쓸모없을 수도 있었을 우리 필멸의 목숨을 영생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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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심

세 십자가 세부, State two, by Rembrandt van Rijn, from The Pierpont Morgan Library/Art Resource, NY; 금색 배경 © iStock/Thinkstock

사도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에 계실 때,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 16:15) 이에 베드로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 또한 마가복음 8:29; 누가복음 9:20 참조)

저는 이 말을 읽거나 말할 때 전율을 느낍니다. 이 성스러운 순간 바로 직후에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임박한 죽음과 부활에 대해 사도들에게 이야기하셨고, 베드로는 그 말을 부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것에 맞추지도 않고 그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며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날카로운 꾸짖음을 들었습니다.(마태복음 16:21~23; 또한 마가복음 8:33 참조)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후에는 …… 꾸짖은 자에게 더 큰 사랑을 나타내 [보이며]”(교리와 성약 121:43)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이 풍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찾는 방법임을 친절하게 알려 주심으로써 몸소 완전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마태복음 16:24~25)

저는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주님의 다음 선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9; 또한 마태복음 10:32~41; 16:24~28; 마가복음 8:34~38; 누가복음 9:23~26; 17:33 참조) 이 말씀은 우리가 반드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 강력하고도 광범위한 교리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통찰력 깊은 한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여러분 인생의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사업이 더 큽니다. 그분의 목숨이 여러분의 계획이나 목표, 두려움보다도 더 큽니다. 여러분의 목숨을 구하려면, 여러분의 이야기를 내려놓고 매 순간, 그리고 매일 여러분의 목숨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합니다.”1

이 글을 생각할수록 저는 예수께서 얼마나 일관되게 그분의 목숨을 아버지께 바쳤으며, 생명과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의 목숨을 얼마나 완벽하게 버리셨는지에 경탄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태도와 접근 방식과는 정반대입니다. 오늘날의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는 사탄의 태도와 방법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전세의 천국회의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신성한 계획에서 구주 역할을 맡겠다고 자진하시며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영광이 영원토록 당신의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모세서 4:2; 강조체 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루시퍼는 “보소서.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내가 당신의 아들이 되겠사오며, 내가 온 인류를 구속하여 한 영혼도 잃지 아니하겠고 또 반드시 내가 이를 행하리니, 그런즉 당신의 존귀를 내게 주소서”라고 선언했습니다.(모세서 4:1; 강조체 추가)

그분을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은 사탄의 방식을 다시 한 번 물리치고 진정한 삶을 얻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라는 계명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삶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살았으면 하는 그런 삶, 즉 해의 왕국에 갈 수 있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 생활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며 우리를 성도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제한된 시각에서는, 이것은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생활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합니다.]”(고린도전서 2:9)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대화가 더 많이 알려졌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 또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음으로써 얻게 된다는 의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깊이 생각해보며, 저는 주님의 선언 전후를 살펴보면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의 맥락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봅시다.

날마다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첫 번째로, 주님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5)고 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공관복음서에 각각 기록되었듯이,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는 날마다라는 말을 추가했습니다—“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누가복음 9:23) 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의 정의를 덧붙여,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에 대한 더 확장된 정의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스스로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모든 세상적인 정욕을 부인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니라.”(조성, 마태복음 16:26, 경전 안내서)

이는 야고보의 선언과도 일치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7)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깨끗하지 않은 모든 것을 피하면서도 다른 모든 계명의 근본이 되는 두 가지 큰 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긍정적으로 실천하며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2:37~40 참조)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더 큰 삶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한 가지 방법은 이렇게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하십시오

두 번째는 구주와 복음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잃음으로써 그것을 찾으려면 우리의 제자됨을 내외적으로 기꺼이 밝히려는 의지가 필요함을 알려 줍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마가복음 8:38; 또한 누가복음 9:26 참조)

마태복음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2~33)

그리스도를 시인함으로써 목숨을 잃는다는 것에는 분명하고도 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분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수호하면서 말 그대로 우리의 목숨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고대의 사도 대부분을 포함하는 과거의 순교자들에 대해 읽으면서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역사 속에나 있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속에나 있던 것이 현 시대에 재현되는 것을 봅니다.2

앞날의 일은 모르는 것이지만, 만약 우리 중 누구라도 주님의 대의 때문에 실제로 목숨을 잃을 비극적 상황에 처한다면, 용기와 충성심을 보여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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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

성전 문가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 렘브란트 반 레인

하지만 구주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더 보편적이고 (때로는 더 어렵기도 한) 경우는 우리가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말과 우리가 보이는 모범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과 더불어, 우리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헌신을 간증해야 합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마가복음 8:38) 주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롱이나 차별, 비방을 하더라도 이런 간증을 확고하게 수호해야 합니다.

다른 때에 주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0:34~38)

언뜻 보기에 주님이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평강의 왕”(이사야 9:6)으로 칭한 성구나, 주님이 탄생하셨을 때 선언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라는 말씀에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익히 잘 알려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한복음 14:27)라는 구절과도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스도가 평안, 즉 믿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평안, 사람들 사이에 평안을 주러 왔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갈등, 즉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의, 빛과 어둠 사이의, 그리스도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들 사이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릅니다. 이런 갈등은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3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이런 구절에 담긴 주님의 말씀을 직접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성약 안으로 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을 거부하고 배척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더 사랑했으므로 소중한 여러 관계를 희생해야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사그라지지 않았기에 여러분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굳게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의 아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몇 년 전, 한 교회 회원이 오하이오 주에 사는 암만교 신자 친구에게 몰몬경을 주었습니다. 책장을 펼친 그 친구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아내는 침례를 받았고, 7개월 내에 그곳에서 다른 암만교 부부 두 쌍이 침례를 받아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들의 자녀들도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 세 가족은 암만교 신앙을 떠났음에도 그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마을에 남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굳게 뭉친 암만교 이웃에게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즉, 암만교 공동체에서 그 누구도, 그 어떤 일로도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일을 같이 하거나 거래를 하거나 인간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단지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침례를 받지 않은] 그 가족들의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도 따돌림에 동조했습니다.

자녀들도 암만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퇴학을 당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 암만교 신도들은 처음에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그 자녀들은 조부모와 사촌, 이웃의 따돌림을 참아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 내에서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어느 정도 장성한 자녀 몇몇은 부모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 가족은 따돌림에 따르는 사회적 및 경제적 결과에서 벗어나려 무진 애를 썼고, 결국 점차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따돌림이라는 역경과 반대 때문에 도리어 그들은 더 굳건해지고 변치 않게 되었습니다. 침례를 받고 1년 후, 그 가족들은 성전에서 인봉을 받았고, 매주 충실하게 성전에 다닙니다. 그들은 의식을 받아 성약을 맺고 그 성약을 지킴으로써 힘을 얻고 강해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교회 그룹에서 활동적이며, 친척들 사이와 공동체 안에서 친절한 행동과 봉사를 통해 복음의 빛과 지식을 나눌 기회를 계속 찾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보다도 그리스도를 우선시하라는 권고는 성약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어렸을 적에 아무런 반대도 없이 교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어려움은 부모, 처가나 시댁 식구들, 친형제자매, 심지어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 믿음, 선택을 보이더라도 한결같이 구주와 그분의 교회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족간의 사랑이 지속되더라도 그 관계는 가로막힐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더 큰 사랑을 지켜 내는 대가로 가족 간에 지지와 관용을 잃게 될 때도 있습니다.(마태복음 10:37 참조)

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즉 그들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계속해서 구주를 우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 또는 낙담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주님에게서 멀어진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방편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다면, 우리는 신성한 도움을 받고, 또 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사랑하는 가족 중 누군가가 유일하게 참되고 지속적인 근원을 찾아 필사적으로 돌이키려는 마음을 갖게 될 때, 그들은 안내자와 동반자로서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시기가 찾아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영의 은사에 의지하여, 그 가족이 내린 잘못된 선택에 따른 고통을 덜어주고 받은 상처를 싸매 주며 변함없고 꾸준히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힘들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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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자를 치유하는 손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 세부, by Paul Gustave Dore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잃는 것과 관련된 세 번째 요소는 그분의 다음 말씀에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조셉 스미스 역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하나님이 성임한 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영혼을 잃고 자기를 빼앗긴다면 무엇이 유익하리요.”(조셉 스미스 역 성경, 누가복음 9:25 [in the Bible appendix])

“하나님께서 성임하신 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상을 버리는 것이 현 세상의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말은 분명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때로는 우리 자신에게서) 아주 흔히 보는 우선순위와 관심사는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그중 몇 가지만 거론하자면, 인정받으려는 갈망, 개인의 권리는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한다는 집요한 요구, 돈과 물건, 권력에 대한 욕구, 안락한 삶과 쾌락을 마땅히 누려야 한다는 특권의식, 책임을 최소화하고 타인의 유익을 위한 개인적인 희생은 하지 않으려는 경향 등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교육과 고결한 노동을 포함한 합당한 노력을 통한 성공을 구해서는 안 된다거나 탁월함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 가치 있는 성취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숨을 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런 성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높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우리는 정계, 재계, 학계,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의 성공을, 우리를 정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에게 더 봉사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 봉사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가능한 한 세상의 가장 먼 곳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발전은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발전시킬 때에만 가치가 있습니다. 성공을 측정할 때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심오하고도 기본적인 진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뜻과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자기 도취적인 생활과 다른, 더 뛰어난 생활에 대해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1895~1985)님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한 봉사에 참여할 때, 우리의 행위는 이웃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를 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 자신에 대해 걱정할 시간은 더 적어집니다. 봉사의 기적 속에는 우리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신을 찾으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9 참조]

우리의 삶에서, 신성한 인도를 인정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게’ 될 뿐만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영혼에 깃들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우리는 더 의미 깊은 사람이 됩니다. …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지기에 참으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더 쉬워집니다.”4

그분께 봉사하는 가운데 자기 목숨을 잃으면

최근에 저는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겠다고 결심한 한 청년 독신 자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종교 및 신앙 체계, 정치적 신조,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워 왔는데, 매일 온종일 선교사 이름표를 착용하는 것이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저해하는 낙인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선교 사업을 나간 지 단 몇 주 만에 그녀는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경험을 편지에 적어 집으로 보냈습니다.

“동반자인 리 자매님과 저는 한 할머니의 집 거실에 앉아서 그분의 주름진 손을 하나씩 잡고 연고를 발라드렸어요. 할머니는 우리가 전하는 어떤 메시지도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노래를 시켰고 또 우리 노래를 좋아하셨어요. 제 신분을 말해 주는 검정색 선교사 이름표 덕분에 완전히 초면인 사람과도 친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주님과 친구에게 봉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이런 규칙을 세웠다. 주님이 명하시면 행한다.”5

저는 우리 모두에게 조셉 형제와 같은 충실함에 이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믿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그런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미주리 주 리버티 감옥에 여러 달 동안 갇혀 있어야 했는데, 그때 신체적으로도 고통받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 성도들이 학대와 박해를 받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기에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전한 계시와 지시에 따라 성도들은 시온을 세우기 위해 미주리 주로 왔고, 이제 그들은 한 겨울에 그들의 집에서 쫓겨나 동서를 횡단하는 먼 여행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우아하고 마음을 고양시키는, 영감 어린 장문의 편지를 써서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가 현재 교리와 성약 121, 122, 123편에 실려 있으며, 그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의 능력 안에 놓여 있는 모든 일을 기쁘게 행하자. 그러고 나서 우리가 최대한의 확신을 가지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그의 팔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라노라.”(교리와 성약 1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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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 세부, 폴 구스타브 도레

물론, 자신의 목숨을 잃음으로써 목숨을 구하는 것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바로 이 성구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태복음 26:42)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셨음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결국은 쓸모없을 수도 있었을 우리 필멸의 목숨을 영생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주께서 보여 주신 삶에서 나타는 모토는 “나는 항상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노라]”(요한복음 8:29)였습니다. 그 모토가 여러분 인생의 모토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1. Adam S. Miller, Letters to a Young Mormon (2014), 17–18.

  2. Martin Chulov, “Iraq’s Largest Christian Town Abandoned as ISIS Advance Continues,” The Guardian, Aug. 7, 2014, theguardian.com 참조.

  3. Kenneth Barker, ed., The NIV Study Bible, 10th anniversary ed. (1995), 1453.

  4.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유 킴볼(2006), 85~86쪽.

  5.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년), 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