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신앙, 공평, 그리고 종교적 자유
September 2016


신앙, 공평, 그리고 종교적 자유

2015년 9월 15일 브리검 영 대학교 영적 모임에서 전한 말씀, “Religious Freedom and Fairness for All” 에서 발췌. 영어로 된 전문은 speeches.byu.edu에서 볼 수 있다.

공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라는 권고를 따를 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자녀를 향한 구주의 사랑을 더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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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공평

사진 삽화: 데이비드 스토커, DIGITALVISION, ISTOCK, MONKEY BUSINESS, PHOTOS.COM, STOCKBYTE, AND TOP PHOTO GROUPTHINKSTOCK 사진을 기반으로 함

여러분 중에는 “종교적 자유”라는 말을 “차별할 자유”로 여기는 분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러한 견해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편, 교회에서 말하는 종교적 자유란 어떤 의미이며, 그것이 여러분의 장래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 왜 그렇게도 중요한지에 관해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또한, 종교적 자유에 관해 여러분 중 일부가 의심스러워하시거나 오해하실 만한 부분에 관해서도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사회, 정치, 그리고 시민 문제에서 종교가 하는 역할이 이해되지 않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또, 왜 종교 단체가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지 의아해하는가 하면, 정치에 관여한 종교인의 동기에 대해 종종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종교가 정치적인 논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단체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기회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법률과 법령은 사회적 및 도덕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담당합니다. 사회의 모든 개인은 모두에게 공평한 법률과 법령을 제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민 담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만인을 위한 자유

종교적 자유란 무엇을 뜻합니까?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여러분이 이 중 한 명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제가 이든이라고 부를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최근에 바라던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이든은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습니다.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일까지 맡아서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많은 동료가 그를 좋아했고 그는 자기 일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동료 두 명과 점심을 먹던 그는 편안한 마음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습니다.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어색한 침묵만 흘렀습니다. 이든은 동료들의 냉담한 반응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음이 아팠고 거부당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날 점심 이후, 이든은 직장 생활이 점점 더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약자가 되었고 자신의 가치도 예전만 못하게 평가받는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큰 프로젝트나 퇴근 후의 친목 모임에서 제외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속감이 없어지고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느끼자, 업무 효율까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후, 상사는 그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느끼고 그를 해고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든은 자신이 동성애자라서 해고당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사만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사만다는 지역의 한 대학 행정실에서 막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고무적인 환경에서 일하게 되어 신이 났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한 동료가 사만다에게 다가와 사만다가 몰몬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만다는 명랑하게 그렇다고 답했지만, 그다음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동료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몰몬은 동성애자를 미워하는 거죠?” 사만다는 그 질문이 당황스러웠지만, 하나님과 그분이 자녀들을 위해 마련하신 계획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는 도덕적, 성적 행위에 관한 지침이 포함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동료는 요즘 세상에서는 그런 믿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로 맞섰습니다. “그뿐만 아니에요. 역사에 보면 종교적 가르침을 이용해서 전쟁을 벌이고 약한 사람을 소외시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동료가 말했습니다.

사만다는 만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자신이 믿고 이해하는 바를 다시 말한 뒤, 동료에게 자신의 믿을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동료는 이 대화를 다른 직원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동료가 사만다에게 질문과 공격을 퍼붓자 그녀는 갈수록 고립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종교적인 대화가 늘어나는 것을 본 사만다의 상사는 업무 공간에서 포교를 하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며 사만다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든처럼 사만다도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고를 당할 것을 불안해하는 대신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 이야기들은 가상이지만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만다나 이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기로 하든지, 또 어떤 결정을 하든지,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으로서 공평하고 친절하게 대우받기를 바랍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든을 해고하거나,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사만다를 위협하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부당한 비판과 판단, 대우를 경험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볼 때, 이든의 입장에 서는 것은 올바른 일이지만 사만다의 입장에 서는 것은 그만큼 올바른 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든의 경우는 옹호 단체가 나서서 이 사례를 반동성애 차별 사례로 채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는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사만다는 어떻습니까? 누가 종교적 양심에 대한 사만다의 권리를 지켜 주겠습니까?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봉사하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살 권리를 갖겠다는,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서 진실한 삶을 살 그녀의 권리는 또 어떻습니까?

만인에게 공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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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에 함께 앉아서

우리 사회는 한 계층의 사람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을 바로잡겠다는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여러분과 저같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또 다른 희생자로 삼을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이미 일부 종교 학교는 학생들과 교수진에게 정절과 순결을 요구하는 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한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큰 회사의 최고 경영자들 또한 개인의 종교적인 견해가 더는 정치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영에서 물러났거나 사임을 강요당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기업주가 양심 고백을 했다는 이유로 폐업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여러분이 무엇을 읽고 들으셨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끊임없이 선택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해 왔습니다. 오래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모든 사람이 양심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 믿습니다.”1

그는 뒤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가 한 사람의 ‘몰몬’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저는 … 장로교나 침례교나 그 외 다른 종파의 선한 사람을 위해서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왜냐하면 후기 성도들의 권리를 짓밟는 바로 그 논리가 … [후기 성도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스스로 방어하기에는 너무 약한 다른 종파의 권리도 짓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2

그렇다면 종교적 자유에 관한 교회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 문제에 관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하늘의 영감을 받아 신중하게 숙고했음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함을 믿으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도록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강압하[지 않으십니다.]”3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권리와 안전을 침해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아갈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 집단의 권리가 다른 집단의 권리와 충돌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공평하고 세심하게 대해야 한다는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만인에게 공평할 것”4을 믿고 그렇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양심을 지킨다는 것은 한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보호하며, 그 사람이 그러한 믿음에 따라 행동할 권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의 견해가 대중적이고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 믿음은 허락되지도, 가치가 인정되지도, 허용되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 관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천국 전쟁이 일어난 것은 선택의지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의 견해가 대중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양심을 저버리도록 강제하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의지를 심각하게 짓밟는 일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믿고 선택한 바에 흔들림 없이 진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 때, 저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면 결과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살아도 주님께서 용인하신다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하는 선택에 대해 그분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 온전하게 되라는 계명은 현재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주님께서 우리가 도달하기 바라시는 곳으로 우리를 들어 올려 주시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판단과 선택에 진실하고 흔들림 없이 생활하려면, 우리가 가진 빛과 지식, 이해를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역사상 과학 기술에 가장 강하게 “접속된” 세대입니다. 그들은 항상 접속 상태입니다. 인터넷에 있는 모든 것은 항상 100% 정확합니다. 그렇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동성애자의 권리에 관한 교회의 입장에 대해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것을 다 믿지는 마십시오.

교회는 얼마 전인 2015년 1월, 십이사도 세 분과 본부 청녀 회장단 한 분을 모시고 기자 회견을 여는 것으로 “만인에게 공평을”이라는 접근 방식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우리 회원들과 지역 사회, 그리고 유타 주 입법 의회에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옹호한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옥스 장로님은 이 기자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방 정부와 주 정부 및 연방 정부를 향해 모든 사람을 위해 다음 사항을 힘써 줄 것을 촉구합니다. 개인과 가족, 교회와 여타 종교 그룹에 없어서는 안 될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주거, 취업, 그리고 호텔, 식당, 교통수단 등의 공공 시설 분야에 대해 시민 중에서도 성적 소수자인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십시오. 전국 여러 지역에서 이들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고 있습니다.”5

6주 후 성적 소수자와 종교인들 모두를 위한 보호법이 통과되자, 교회 지도자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성적 소수자들을 축하했습니다. 더이상 성적 성향이나 성별을 이유로 퇴거, 주거 차별, 해직 등을 겪지 않고 이들이 보호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다른 교파의 친구들이 직장과 공공장소에서 비슷하게 보호받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도 축하를 전했습니다.

유타 주와 교회가 이렇게 역사적인 타협을 이루어 낸 일은 전국적으로 보도되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 과정에서 어떤 교리나 종교 원리도 희생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이 제정하신 도덕적 율법, 또는 성관계는 오직 결혼한 남녀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모두에게 공평했고, 도덕적 표준 및 가르침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사이에서는 일관성이 지켜졌습니다.

공평의 메시지

우리 중 대다수가 행정과 입법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어떻게 이 주제가 일상생활에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될지 궁금해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공평의 메시지를 지지하고 권장하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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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 확대 그림

첫째, 공평한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도록 노력하십시오. 이렇게 하려면,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모두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죄를 짓고,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렇다고 그분께서 죄가 되는 행동을 용납하시거나 묵인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묵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설득하고 도우며 구조하기 위해 사랑으로 손을 내민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구주께서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기도로 주님께 의지하고 여러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얻을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신앙으로 간구하면 그분의 사랑을 느끼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모로나이 7:48 참조)

이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 차면 생각하고 행동할 때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때로 논쟁이 초래될 수 있는 정치 분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정치를 주제로 토론할 때, 특히 종교적 자유가 그 주제가 될 때는 긴장이 고조되기 쉽습니다. 이런 순간에 자신을 다잡지 못하면 가족과 친구, 이웃, 지인들에게 기독교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말 것입니다.

구주께서 어려운 질문과 도전적인 견해를 어떻게 다루셨는지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평정심을 유지하시고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시며 진리를 가르치셨으나, 누구에게도 그분이 가르치신 방식대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인종과 계급, 상황을 개의치 않으시고 간단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요한복음 4:5~30 참조), 로마인 백부장(마태복음 8:5~13; 누가복음 7:1~10 참조), 그리고 평판 나쁜 세리(누가복음 18:9~14 참조)를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모범을 따르라고 명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며, 너희가 본 바 내가 행하는 것을 행하라.”(니파이후서 31:12) 사람들이 나와, 혹은 우리와 다른 죄를 짓는다고 해서 그들을 판단하거나 불공평하게 대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다른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기가 가장 어려울 때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친구나 가족들 사이에서 종교적 자유를 지지하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할 때일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공개적이고 자유롭게 신앙을 행사하는 것을 보장받으려 하는 것이 편협하고 비협조적인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구주의 생애를 공부하고 그분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구주께서는 진리로 알고 있는 것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사랑과 격려로 손을 내미는 법을 완벽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두시고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앞으로 나와 먼저 그녀를 정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자, 무죄하신 우리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한복음 8:11)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보여 주신 용서와 친절은, 성적인 관계는 합법적으로 결혼한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역시 옳은 것과 참된 것을 단호히 지키면서도 친절하게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구들과 추종자들이 당신을 등지자 슬퍼하시고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불편해했던 탓이지 그분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해하셨던 탓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려면 반드시 선택의지의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존중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종교적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도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어렵거나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만으로 이런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대화를 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도움을 구하며 기도할 수 있으며, 구주께서 우리가 당신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도와주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볼 때, 공평을 주장하십시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엘 톰 페리(1922~2015) 장로님은 남녀 간의 결혼을 확고히 믿으시면서도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수호하는 위대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법이 편파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실 때면 그들의 권리가 반드시 보호받게 하는 모범을 남기셨습니다.

조셉 스미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교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어긋나고 상처 난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유산이 있었습니다. 교리는 우리가 정한 것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인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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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에 둘러앉아서

이제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관해 여러분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의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지지하는 가운데, 우리는 여러분 세대의 연민과 존중, 그리고 공평에 관한 자연스러운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런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을 헤쳐 나가려면 낙천적이고 확고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구주께 의지하는 한편, 믿음이 다른 사람도 공평하게 대하며 그들에게 사랑을 보이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함을 알고 있으며, 여러분은 굴하지 않으며 협력할 줄 아는 세대임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 문제의 복잡성을 다루는 대화에 참여하여 어떻게 하면 신앙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는 학교와 집에서,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 사이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대화를 나눌 때는 다음과 같은 원리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공평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그 대가로 여러분도 똑같은 대우를 바라십시오.

커지는 사랑

마지막으로, 제 간증을 전하겠습니다. 공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권고를 따를 때, 여러분은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 모두를 위한 구주의 사랑을 더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이를 존중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모범을 보일 때 문이 열릴 것이며, 살아가는 내내 소중히 여길 돈독한 우정이 쌓일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시고, 그분은 여러분을 알고 계시며,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사랑하심을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돌아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세에도 축복을 받고 행복할 수 있다는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사랑과 배려로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때, 우리는 그분의 권능과 사랑을 훨씬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1.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년), 345쪽.

  2.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345쪽.

  3. “인간이 선택의지로”, 찬송가, 175장.

  4. “Transcript of News Conference on Religious Freedom and Nondiscrimination”, Jan. 27, 2015, mormonnewsroom.org.

  5. Dallin H. Oaks, in “Transcript of News Conference on Religious Freedom and Nondiscrimi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