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에서의 희생과 축복

우리의 유산, 1996


일리노이 주로 간 말일성도들은 퀸 시의 친절한 주민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리버티 감옥에 갇혀 있었던 예언자 요셉 스미스가 돌아오자 성도들은 미시시피 강 북쪽으로 약 35마일 정도 올라갔다. 그들은 그 곳에서 커다란 늪지대의 물을 빼내고, 강이 굽어지는 곳 옆에 나부 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과 캐나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성도들이 모여듦에 따라 그 도시는 이내 활기있고 상업적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4년 내에 나부는 일리노이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Nauvoo

교회 회원들은 예언자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교적 평화롭게 안전하게 생활했다. 예언자를 통해 부름 받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나부를 떠나 복음을 전파하러 갔다. 성전이 건축되었으며 성전 엔다우먼트가 집행되었고, 최초로 와드가 만들어졌으며 스테이크가 세워졌고, 상호부조회가 조직되었으며 아브라함서가 출판되었고, 또 중요한 계시들이 주어졌다. 자신들의 도시가 산업과 진리의 등대가 됨에 따라 성도들은 6년이 넘도록 놀라울 정도로 단결하여 신앙을 나타내 보였고 행복하게 지냈다.

나부 선교사들의 희생

집을 짓고 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많은 성도들이 오한과 열을 동반한 전염병인 학질을 앓게 되었다. 십이사도들도 대부분 그 병에 걸렸으며 요셉 스미스 자신도 그 병에 걸렸다. 1839년 7월 22일, 예언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권세로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권의 권세를 통해 자신과 집안에 있던 환자들의 병을 치유한 다음 앞마당의 텐트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낫도록 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었다. 그는 텐트에서 텐트로,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모든 사람을 축복했다.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그것은 놀라운 신앙과 병고침의 시기 중 하나였다.

이 기간에 예언자는 십이사도 정원회에게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가도록 부름을 주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올슨 하이드 장로는 유대인과 아브라함의 다른 자녀들의 집합을 위하여 팔레스타인 땅을 헌납하도록 예루살렘으로 파송되었다. 선교사들은 미국 전역과 캐나다 동부로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되었으며 애디슨 프랫과 다른 사람들은 태평양 제도로 가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 형제들이 주님께 봉사하라는 부름에 응하여 가정과 가족을 등지고 떠날 때 그들은 참으로 큰 희생을 치르었다. 영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십이사도 중 많은 사람들이 학질에 걸려 있었다. 병이 아주 심했던 윌포드 우드럽은 먹을 것과 생필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아내인 피비를 두고 떠났다. 가장 나이 어린 사도였던 조지 에이 스미스도 너무나 심하게 아파서 마차에 실려가야 했다. 그를 본 어떤 사람이 마부에게 무덤에서 꺼내 가느냐고 물었다.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떠난 팔리 피 프랫과 그의 형인 올슨 프랫 그리고 존 테일러만이 나부를 떠날 때 건강한 상태였다. 그러나 테일러 장로는 후에 뉴욕으로 여행할 때 몹시 심하게 앓아서 거의 죽을 뻔하였다.

브리감 영도 병이 심해서 도움을 받지 않고는 짧은 거리조차 걸을 수 없었으며 그의 동반자였던 히버 시 킴볼 역시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아내와 가족들도 병에 걸려 누워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언덕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마차 안에 누워 있던 사도들은 둘 다 그렇게 비참한 상태로 가족들과 헤어질 수 없다고 느꼈다. 히버의 제안으로 그들은 간신히 일어서서 머리 위로 모자를 흔들며 “이스라엘 만세, 만세!”라고 세 번 외쳤다. 그들의 아내, 메리 앤과 바이렛트는 일어설 정도 기운을 얻어서 문가에 몸을 기대고 “다녀오세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거예요.”라고 외쳤다. 두 사람은 병상에 누워 있는 대신 서 있는 아내들을 보면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며 마차에 누웠다.

뒤에 남은 가족들은 선교사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희생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나타내 보였다. 애디슨 프랫이 샌드위치 제도로 선교 사업을 하러 가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그의 아내인 루이자 번즈 프랫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가르치고, 입혀야 할 애들이 네 명이나 있었고 돈도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마음이 약해졌으나 주님을 의지하고 어려운 상황에 용감하게 맞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복음을 전파하러 갈 수 있을 만큼 합당하게 헤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뻐하였습니다.”

루이자와 아이들은 애디슨 프랫을 배웅하기 위해 부두로 나갔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의 상황에 대해 루이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오래지 않아 큰 소리로 천둥이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길 건너편에 살던 어떤 가족은 집이 새서 불안하였습니다. 그들은 곧 폭풍우를 피해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로해 주었고 찬송가를 불러 주었으며 그 형제님은 우리와 함께 기도해 주었고 폭풍우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1

애디슨이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린 딸이 천연두에 걸렸다. 그 병은 너무나 전염성이 강해서 신권 소유자가 프랫 가정으로 오는 것조차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었으므로 루이자는 신앙을 갖고 기도한 후 “그 열을 꾸짖었다.” 아이의 몸에 열한 개의 구진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병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며칠 내에 열은 사라졌다. 루이자는 “나는 천연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그 아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아이가 병에 걸렸었으며 내가 신앙으로 그것을 이겨냈다고 말했다.”2

그러한 희생을 치르면서 나부를 떠났던 선교사들은 수천 명을 교회로 데려왔다. 또한 그 개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신앙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메리 앤 웨스튼은 양재를 배우는 동안 영국에서 윌리암 젠킨스 가족과 함께 살았다. 젠킨스 형제가 개종해서 윌포드 우드럽이 그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그 집에 왔다. 메리 앤은 그때 혼자 집에 있었다. 윌포드 우드럽은 불 곁에 앉아 “연약한 인간이라 두렵사오나 영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라고 노래를 불렀다. 메리 앤은 그가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분이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해 보여서 분명히 좋은 사람이며 그 분이 전하는 복음은 틀림없이 참될거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3

메리 앤은 교회 회원들과 사귐으로써 이내 개종하여 침례를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 중 회복된 복음에 응했던 유일한 회원이었다. 그녀는 교회 회원과 결혼했으나 4개월 후 남편과 사별하게 되었다. 교회 모임을 방해하기 위해 몰려온 폭도들에게 매를 맞은 것도 그의 사인 중 일부였다. 완전히 혼자가 된 메리 앤은 고향과 친구와 불신자인 부모를 떠나 말일성도들로 가득 찬 나부행 배에 올랐다. 그녀는 그 후 가족들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녀의 용기와 헌신은 결국 많은 사람들의 삶을 축복해 주었다. 그녀는 유타 북부의 캐치 밸리에 살던 홀아비 피터 모건과 결혼했다. 그 곳에서 그녀는 대가족을 충실하게 양육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교회와 그녀의 이름을 명예롭게 해 주었다.

표준 경전

나부에서 지내는 동안 훗날 값진 진주가 된 기록들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모세 기록의 일부와 아브라함서 및 마태의 간증 중 일부 그리고 요셉 스미스의 역사에서 발췌한 내용과 신앙개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기록은 요셉 스미스가 주님의 지시 하에 기록하거나 번역한 것들이었다.

이제 성도들은 교회의 표준 경전이 될 경전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성경, 몰몬경, 교리와 성약 및 값진 진주였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 주며 성실하게 탐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주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명하시는 대로 추가적인 계시들이 현대의 경전에 삽입되어 왔다.

나부 성전

나부를 세운 지 불과 15개월 만에 대관장단은 계시에 순종하여 “기도의 집, 질서의 집,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의 집, 그분의 신성한 뜻에 일치하는 의식을 받을 집”4을 지을 시기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궁핍하여 가족들을 부양하기에도 힘들었으나 말일성도들은 지도자의 부름에 응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데 시간과 재산을 바쳤다.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두 열흘에 하루씩 일하였다. 어린 소녀였던 루이자 데커는 어머니가 성전을 짓는 데에 보태려고 도자기 접시와 좋은 침대 덮개를 파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5 다른 말일성도들도 성전 건축을 돕기 위해 말과 마차와 소와 돼지와 곡물을 바쳤다. 나부의 여인들은 성전 기금으로 그들의 푼돈을 기부하도록 요청 받았다.

캐롤린 버틀러는 기부할 푼돈이 하나도 없었지만 무언가를 꼭 주고 싶었다. 어느 날 그녀는 마차를 타고 나부 시로 가던 도중에 죽어 있는 두 마리의 버팔로를 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바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녀와 아이들은 버팔로의 털을 뽑아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잘 씻고 곧게 펴서 굵은 실을 꼬았다. 그런 후 그녀는 매서운 겨울 추위에 성전에서 일하는 석수들에게 줄 두꺼운 벙어리 장갑 여덟 벌을 짰다.6

하이람 스미스의 아내인 메리 필딩 스미스는 영국의 말일성도 여성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들은 1년 안에 434파운드의 무게에 달하는 50,000페니를 모아서 배편으로 나부에 보내 주었다. 농부들은 말과 마차를 바쳤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 중 일부를 팔아서 건축 위원회에 돈을 헌금했다. 많은 시계와 총들이 기부되었다. 일리노이 주 노르웨이의 성도들은 성전 위원회에서 사용하도록 100마리의 양을 나부로 보내 주었다.

브리감 영은 “우리는 나부 성전을 짓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때 일꾼들에게 먹일 빵과 음식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대관장은 주님께서 주실거라고 확신하면서 성전 기금을 맡은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밀가루를 모두 다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실리에서 최근에 개종했던 조셉 터론토 형제가 금화 2,500불을 가지고 나부로 와서 그것을 형제들에게 내놓았다.7 터론토 형제가 평생을 모은 재산은 밀가루를 사고 다른 많은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성도들이 나부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주님은 예언자 요셉 스미스를 통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조상들을 위해 침례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시해 주셨다.(교리와 성약 124:29~39 참조) 많은 성도들이 죽은 자들도 세상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똑같은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그 약속으로 인해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예언자는 현재 성전 엔다우먼트로 불리는 가르침과 성약과 축복에 관해 중요한 계시들을 받았다. 이 거룩한 의식은 성도들이 “영원한 세상에… 계신 엘로힘의 면전에 나아가도록”8 그들을 준비시켜 주는 “충만한 축복들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엔다우먼트를 받게 되면 남편과 아내는 신권의 권세로 말미암아 현세와 영원을 위해 함께 인봉될 수 있었다. 요셉 스미스는 지상에서 자신의 생명이 짧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성전이 건축되고 있는 중인데도 붉은 벽돌집 가게의 2층에서 선택된 충실한 성도들에게 엔다우먼트를 베풀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예언자 요셉 스미스가 살해당하고 자신들이 단기간에 나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성전을 완공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했다. 완공되지 않은 성전의 다락방이 엔다우먼트를 집행할 곳으로 헌납되었다. 성도들은 브리감 영과 히버 시 킴볼 및 다른 십이사도들이 밤낮을 성전에 머물면서 밤에도 네 시간 이상 자지 않고 베푼 이 거룩한 의식을 열심히 받았다. 머시 필딩 톰슨은 성전복을 세탁하고 다리는 일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요리도 감독했다. 그녀도 역시 성전에 머물러 살았으며 때로는 다음 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해 밤에도 일했다.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로 헌신적이었다.

왜 이 성도들은 곧 그들이 두고 떠나야 할 건물을 완공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거의 6,000명의 말일성도들이 나부를 떠나기 전에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았다. 그들은 서부를 향해 이주할 때 신앙으로 강화되었으며 자신의 가족이 영원히 인봉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들은 그 성전에서 의식을 받을 때 얻었던 확신 때문에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자녀나 배우자를 아메리카의 거대한 평원에 묻고 곧바로 떠날 때도 그렇게 의연할 수 있었다.

상호부조회

나부 성전이 건축되고 있을 때, 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였던 하이람 킴볼의 아내 사라 그랜저 킴볼은 마아가렛 에이 쿡이라는 이름의 바느질하는 사람을 고용했다. 사라는 주님의 사업에 대한 헌신으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셔츠를 만들 천을 기증했으며 마아가렛은 바느질을 하기로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의 이웃들도 셔츠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자매들은 킴볼 가의 거실에 모여 공식적으로 조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엘리자 알 스노우는 새로운 단체의 규약과 세칙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엘리자가 완성된 문안을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게 보여주자 그는 자신이 본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성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여성들의 시야를 넓혀 주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여성들에게 다른 모임에 참석하도록 부탁하여 그 곳에서 나부 여성 상호부조회를 조직했다. 예언자의 아내인 엠마 스미스가 그 단체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요셉은 자매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권의 반차를 통하여, 또 이끌도록 임명된 자들을 매개로 해서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위해서 열쇠를 사용코자 하니, 이 상호부조회에 기쁨과 지혜와 지식이 이제부터 넘쳐 흐를 것입니다. 이것은 이 단체에 있어 더 좋은 날의 시작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다.9

상호부조회가 조직된 직후, 위원회는 나부의 모든 궁핍한 가정을 방문해서 필요 사항을 조사한 다음 그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에게 기증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들은 음식과 침구를 팔아서 생긴 이익금과 기부금으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켜 주었다.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마직, 모직, 실, 판자, 비누, 양초, 주석 그릇, 보석, 바구니, 누비 이불, 담요, 양파, 사과, 밀가루, 빵, 크래커, 고기 등을 기부하였다.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것 외에도 함께 예배를 보았다. 엘리자 알 스노우는 한 모임에서 “거의 모든 자매들이 일어나서 말씀했으며 정화시키는 시냇물 같은 주님의 영이 모든 마음을 새롭게 해주었다.”10고 보고했다. 이 자매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했으며 서로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었고 시온의 대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의 생활과 자원을 헌납했다.

순교

나부에서의 몇 년 동안은 성도들에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곧 다시 박해가 시작되어 결국 요셉과 하이람 스미스는 살해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둡고 슬픈 시기였다. 루이자 번즈 프랫은 순교 소식을 듣고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기록했다. “고요한 밤이었고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마치 죽음의 밤처럼 보였으며 모든 것이 그 밤을 엄숙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들을 소집하는 역원들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치 장례식의 종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자들은 함께 모여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살인자들에게 무서운 벌이 내리기를 바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11

많은 말일성도들은 루이자 번즈 프랫과 마찬가지로 그 사건이 일어난 1844년 6월 27일을 슬프고 애통스러운 날로 기억했다. 예언자의 순교는 초기 교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 밖의 일이 아니었다.

초창기였던 1829년부터 시작하여 최소한 열아홉 번 정도 각각 다른 상황에서 요셉 스미스는 아마 자신이 이 생을 평화롭게 마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12 그는 적들이 언젠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리라고 느꼈지만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했다. 1844년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올 때, 교회 안팎의 적들은 요셉을 파멸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이웃 신문사의 편집인이었던 토마스 샤프와 헨콕 군의 한 반몰몬 정당 지도자는 예언자를 살해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주민들과 배도자들 그리고 시의 지도자들은 예언자를 죽임으로써 교회를 멸하려고 공모했다.

일리노이 주의 지사였던 토마스 포드는 요셉 스미스에게 나부 시의 평의회 회원들은 시에 소동을 일으킨 혐의로 비몰몬 배심원들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썼다. 그는 그런 재판만이 사람들을 납득시킬 것이라고 했다. 주지사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예언자는 그가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예언자와 그의 형 하이람 스미스 그리고 존 테일러와 다른 사람들은 아무 죄없이 죄인이 되었음을 통감하며 구속되기로 했다.

예언자는 나부 시에서 카테지 군으로 약 20마일 정도 갔을 때, 자신이 가족과 친구들을 보는 것이 그때가 마지막임을 알았다. 그는 “나는 도살장에 끌려 가는 어린 양과 같이 가노라. 그러나 내 마음은 여름 아침처럼 고요하도다.”13라고 예언했다.

예언자가 출발하자 요셉의 농장에서 3년 이상 일해 왔던 비 로저스와 다른 두 소년이 들판을 가로질러 가서 가로장 울타리에 앉아 그들의 친구이자 지도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요셉은 그 소년들 옆에서 말을 멈추고 같이 있던 민병 대원들에게 “신사 여러분, 이곳은 내 농장이고 이들은 나를 돕는 소년들이오. 그 애들도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 애들을 좋아하오.”라고 말했다. 요셉은 소년들 모두와 악수를 나눈 후, 말에 올라타고 자신이 죽을 곳을 향해 갔다.14

웨일즈인 개종자였던 단 존스는 카테지 감옥에서 예언자와 함께 있었다. 1844년 6월 26일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에 요셉은 총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일어나 존스 곁의 바닥에 누웠다. 예언자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까?”라고 속삭였다. 존스는 “이런 일로 죽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요셉은 “형제님은 죽기 전에 웨일즈에 가서 지명받은 선교 사업을 완수할 것입니다.”라고 예언했다.15 후에 단 존스가 웨일즈에서 명예롭게 성공적으로 선교 사업을 수행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수많은 충실한 말일성도들이 교회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1844년 6월 27일, 오후 5시가 지난 직후, 얼굴에 칠을 한 약 200명 정도의 폭도들이 카테지 감옥으로 돌격해 와서 요셉과 그의 형 하이람을 쏘아 죽이고 존 테일러에게는 심한 부상을 입혔다. 오직 윌라드 리차즈만 다치지 않았다. 폭도들은 “몰몬이 오고 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도망가 버렸다. 대부분의 카테지 주민들도 그랬다. 윌라드 리차즈는 부상 당한 존 테일러를 돌보았으며 그들은 모두 살해 당한 지도자들을 애도했다. 하이람은 감옥 안에 쓰러져 있었고 창문에서 뛰어 내렸던 요셉은 밖의 우물 곁에 쓰러져 있었다.

martyrdom scene at Carthage

그 장소에 처음 당도한 말일성도 중 한 사람은 순교자의 형제였던 사무엘이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윌라드 리차즈를 도와서 나부로의 길고 슬픈 귀환을 위해 시신을 준비시켰다.

한편 일리노이 주 와샤에서는 교회 회원이었던 제임스 코울리 가족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열네 살이던 마티아스는 시내에서 심상치 않은 축하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듣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주연사가 어린 코울리를 보더니 집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마티아스가 이웃집 마당을 통해 그 곳을 벗어나기 전까지 교회 회원이 아닌 소년들이 그에게 쓰레기를 던지며 따라왔다.

소동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한 마티아스는 물을 긷기 위해 강으로 갔다. 폭도 중 한 명이 그를 발견하고 술 취한 재봉사에게 그를 강에 던져 넣으라고 돈을 주었다. 마티아스가 물을 푸려고 멈추자 그 재봉사는 마티아스의 목덜미를 잡고 “몰몬 꼬마야, 널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라고 했다. 마티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왜 나를 빠뜨려 죽이려 하는지, 그리고 내가 그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면서 ‘너를 빠뜨리지 않겠다.… 넌 착한 애야. 집으로 가거라.’라고 말했다.” 그날 밤 폭도들은 코울리 형제의 집에 불을 지르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그 가족은 신앙과 기도를 통해 보호 받았다.16 마티아스 코울리는 성장해서 끝까지 교회에 충실하였으며 그의 아들 마티아스와 손자 매튜는 후에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봉사했다.

일리노이 주지사 토마스 포드는 예언자의 순교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스미스 형제를 살해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믿은 것처럼… 몰몬을 끝장내고 그들을 흩어버리기는 커녕 그들을 그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결합시키고 그들의 신앙에 대해 새로운 확신을 안겨 주었다.”17 또한 포드는 “바울처럼 은사를 타고난 사람들과 웅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뛰어난 연사들은… [몰몬 교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순교 당한 요셉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포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 자신의 이름이 빌라도와 헤롯의 이름처럼 “후세에 불명예스럽게”18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살았다. 그의 염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존 테일러 대관장은 상처가 회복되어 후에 살해당한 지도자에 대한 조사를 썼다. 현재 그것은 교리와 성약 135편이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의 예언자요, 선견자인 요셉 스미스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다만 예수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살았던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많은 일을 수행하였도다.… 그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 앞에서 위대한 생애를 보냈고 또 위대하게 죽었으니, 옛적에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 대부분이 그러하였듯이 자기의 사명과 사업을 자신의 피로써 인봉하였고 그 형 하이람도 그러하였도다. 두 사람은 생전에 떨어져 있지 아니하였고 죽을 때에도 갈라져 있지 아니하였도다.… 이 두 사람은 영광을 위하여 살았고 영광을 위하여 죽었으니, 그 영광은 두 사람에게 주는 영원한 보상이 되리라.”(교리와 성약 135:3,6)

대관장단의 계승

예언자 요셉과 하이람 스미스가 카테지 감옥에서 살해되었을 때, 십이사도 정원회의 많은 회원들과 다른 지도자들은 나부를 떠나 선교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며칠이 지나서 그 소식을 들었다. 브리감 영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신권 지도자의 열쇠가 여전히 교회에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 열쇠들은 십이사도 정원회에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회원들은 주님의 예언자요 선견자요 계시자로서 누가 요셉 스미스의 후임자가 될지 전혀 몰랐다.

대관장단 제1보좌였던 시드니 리그돈은 1844년 8월 3일에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나부로 왔다. 그 이전에 시드니 리그돈은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권고에 어긋나는 길을 걷기 시작하여 교회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는 이미 나부에 도착해 있던 세 명의 사도와 만나기를 거절하고 그 대신 일요일 예배에서 성도들이 모였을 때 말씀했다. 그는 성도들에게 아무도 요셉 스미스를 대신할 수 없다고 알게 된 자신이 받았던 시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교회의 보호자가 지명되어야 하며 그 보호자는 시드니 리그돈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를 지지하는 성도들은 거의 없었다.

1844년 8월 6일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이었던 브리감 영이 나부로 돌아왔다. 그는 누가 교회를 이끌어야 하는가에 관해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만을 원한다고 선언했다.19 십이사도 정원회는 1844년 8월 8일 목요일에 모임을 소집했다. 시드니 리그돈은 아침 모임에서 한 시간 이상 말씀을 했다. 소수의 사람 만이 그의 입장을 지지했다.

다음으로 브리감 영이 일어나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간결하게 말했다. 브리감이 말씀을 할 때 조지 큐 캐넌은 “바로 요셉의 음성이었으며 사람들의 눈에 예언자 요셉이 직접 그들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20고 회상했다. 윌리암 시 스테인즈는 브리감 영이 예언자 요셉의 음성과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고 간증했다. 스테인즈는 “나는 그가 바로 요셉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말씀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21라고 말했다. 윌포드 우드럽 역시 그 놀라운 순간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만일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가 요셉 스미스가 아니었다고 확신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을 간증할 수 있다.”22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이 기적적인 징후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주님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브리감 영을 요셉 스미스의 후계자로 선택하셨음을 확신했다.

오후 모임에서 브리감 영은 다시 말씀했으며 예언자 요셉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열쇠를 갖도록 십이사도를 성임했다는 것을 간증했다. 그는 십이사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번성하지 못할 것이며 오직 사도들만이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영 회장은 말씀을 마친 후, 시드니 리그돈에게 말씀을 부탁했으나 그는 하지 않았다. 윌리암 더블류 펠프스와 팔리 피 프랫이 말씀을 한 후 브리감 영이 다시 말씀했다. 그는 나부 성전을 완공하는 것, 광야로 가기 전에 엔다우먼트를 받는 것과 경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그는 요셉 스미스에 대한 사랑과 예언자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했다. 그런 후 성도들은 만장일치로 십이사도를 교회의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소수의 다른 사람들이 교회 대관장단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말일성도들에게 승계의 고비는 지나갔다. 선임 사도이자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이었던 브리감 영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이끌도록 선택한 사람이었으며 사람들은 일치하여 그를 지지하였다.

참조 보이기

    주석

  1.   1.

    “루이자 반즈 프랫의 일지”, 서부의 심장의 고동, 케이트 비 카터 편, 12권 (1939~1951년), 8:229

  2.   2.

    “루이자 반즈 프랫의 일지”, 8:233

  3.   3.

    “메리 앤 웨스턴 모건의 일지”, 우리의 개척자 유산, 케이트 비 카터 편, 9권 (1958~1966년), 2:353~354

  4.   4.

    교회 정사, 4:186

  5.   5.

    루이자 데커, “나부의 회상”, 여성의 대표자, 1909년 3월, 41쪽

  6.   6.

    “몰몬과 인디언들”, 서부의 심장의 고동, 7:385

  7.   7.

    비 에이치 로버츠, 교회사 요해, 2:472

  8.   8.

    교회 정사, 5:2

  9.   9.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의 의사록, 1842년 4월 28일, 40쪽

  10.   10.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의 의사록, 1842년 4월 28일, 33쪽

  11.   11.

    “루이자 반즈 프랫의 일지”, 8:231

  12.   12.

    교회 정사, 4:587, 604; 6:558

  13.   13.

    교회 정사, 6:555

  14.   14.

    케네스 더블류 갓프리, “살기가 가득했던 그때 그시절”, 몰몬 유산, 1994년 7/8월, 35~36쪽

  15.   15.

    교회 정사, 6:601

  16.   16.

    매티스 카울리, “회상”(1856년), 3쪽, 말일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17.   17.

    토마스 포드, 일리노이스의 역사, 밀로 밀튼 콰이프 펀, 2권(1946년), 2:217

  18.   18.

    토마스 포드, 일리노이스의 역사, 2:221~223

  19.   19.

    교회 정사, 7:230

  20.   20.

    교회 정사, 7:236에서 인용

  21.   21.

    교회 정사, 7:236에서 인용

  22.   22.

    교회 정사, 7:236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