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3장: 역경—우리의 영원한 진보를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


제3장

역경—우리의 영원한 진보를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

“[필멸의 세상에 있는 어려움들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순화하고 가르치고 축복할 때, 그것들은 하나님의 손에 놓인 강력한 도구가 되어 우리가 더 나은 사람들이 되게 해 줍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생애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인 1980년 4월 연차 대회에서 하워드 더블유 헌터 장로는 사모아의 롱보트 대회를 많은 관중과 함께 관람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씀했다. “흥분한 관중들은 들어오는 [보트들]을 먼저 보려고 시선을 바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서 보트가 시야에 들어 오자 관중들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각 배에서 오십 명의 힘센 장정들이 나란히 앉아 리듬에 맞추어 노를 저으니 배가 파도를 헤치고 물거품을 일으키면서 쏜살같이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보트와 노 젓는 사람들이 결승선을 향해 들어오자 그 모습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이 힘센 장정들이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오십 명을 태운 보트의 무게 때문에 물의 저항력이 생겨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관중들의 환호성은 첫째 배가 결승선을 넘어서자 절정에 달했습니다.”

경주가 끝난 후에 헌터 장로는 배가 정박한 곳으로 걸어가서 한 선수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선수는 롱보트의 뱃머리는 “보트의 속력을 떨어뜨리는 저항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도록 물을 가를 수 있는 모양으로 건조되었다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또 물의 저항을 이용해서 노를 저으면 보트가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항을 이용해서 진행 방향을 반대로, 또는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1

헌터 장로는 사모아에서 있었던 보트 경주를 이용해서 역경의 목적에 관한 말씀을 전했다. 사도로서 성역을 베푸는 동안 그는 역경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며 권고와 희망, 격려를 전해 주었다. 그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기타 어려움을 겪어 낸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말씀을 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수고를 덜어 주시고 짐을 가볍게 해 주실 권능을 갖고 계심을” 확고한 신념을 갖고 간증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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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못에 계시는 그리스도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 구주께서는 베데스다 못에 있던 사람에게 하셨던 다음 권유를 우리 각자에게도 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한복음 5:6)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가르침

1

역경은 우리의 영원한 진보를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이다.

저는 삶이, 모든 사람의 삶이 오르내림의 기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기쁨과 슬픔을 봅니다. 많은 사람이 계획을 바꾸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또 축복처럼 보이거나 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많은 축복을 봅니다. 그러한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인내와 신앙을 향상시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것들을 가끔씩 경험한 적이 있으며, 그리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자신의 능력으로 다스릴 수 없는 고통과 실망과 상황에 대해 잘 아셨던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은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뇌를 몰아내고 계속해서 평안하면서도 무사한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슬픔과 재난의 문들을 닫아 버린다면, 우리의 훌륭한 친구와 은인들도 제외시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인내와 오래 참음과 자제심을 배울 때, 그 사람은 고난을 통해 성도가 됩니다.”[Faith Precedes the Miracle(1972), 98]

그 말씀에서 킴볼 회장님은 인생에서 겪는 어떤 특정 경험에 대해 문을 닫는 것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의 삶에서 문은 정기적으로 닫힙니다. 어떤 경우에는 문이 닫힐 때 커다란 아픔과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문이 닫힐 때 우리 인생의 다른 곳에서 소망과 축복이 임하며 또 다른 문이 열린다고 진정으로 믿는데 이는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 [매리온 지 롬니 회장님은] 몇 년 전에 … 가장 충실하고 신앙심이 강한 사람을 위시해 모든 사람이, 조셉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시온 산에 오르고 하늘에서 승영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어야”[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230쪽; Conference Report, Oct. 1969, 57 참조]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에서 역경과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니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난이 오기를 고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고난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입고 태어나기로 되었을 때, 이곳에서 역경과 시련 가운데 시험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현재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당신의 자녀를 시험하고 [정화시키는] 아버지의 계획에서는 구주도 열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통은 온 인류의 고통을 한데 합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통에 떨며 피를 흘리고 쓴 잔을 물리치려 하셨던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셨고 사람의 자녀들을 위한 나의 준비를 마쳤느니라.’(교리와 성약 19:18~19)”(Conference Report, Oct. 1969, p. 57)

우리 모두는 “사람의 자녀들을 위한 [우리의] 준비를”[교리와 성약 19:19] 마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준비는 우리의 것과는 아주 다르지만, 우리가 마쳐야 할 준비,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이 있습니다. 그렇듯 중요한 준비를 마치기 위해 때로는 고통, 기대하지 않던 삶의 변화, 그리고 “아이가 참으로 그 아버지에게 복종함같이”[모사이야서 3:19]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성한 준비를 마치고 승영의 문을 여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3

우리는 저항을 받고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걷는 영원한 진보를 위한 계획에 속합니다. 유혹, 아픔, 고통, 슬픔이 없다면 선함, 미덕, 평온을 인식하거나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우리의 발전을 막는 바로 그 저항력이 한편으로는 이겨 낼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4

2

필멸의 세상에 있는 환난은 우리의 성장과 경험을 위한 것이다.

[필멸의 세상에 있는 어려움들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순화하고 가르치고 축복할 때, 그것들은 하나님의 손에 놓인 강력한 도구가 되어 우리가 더 나은 사람들이 되게 하고, 더 감사하게 하고, 더 사랑스럽고, 어려운 시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우리 모두는 개별적으로, 또 공통적으로 어려운 시기들이 있지만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가장 혹심한 시기에서도 그런 문제들과 예언들은 의로운 사람들을 축복하고 덜 의로운 사람들이 회개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경전에는 그분이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라는 구절이 있습니다.5

몰몬경의 위대한 축복사 리하이는, 고난과 적대 속에서 광야를 여행할 때 태어난 아들 야곱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했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그가 기대했던 삶이나 이상적인 인생 여정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역경과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리하이는 그러한 고난이 아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니파이후서 2:2 참조)

그런 다음 리하이는 고전이 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이 있음이 꼭 필요함이라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 의로움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간악함도 그러하며, 거룩함이나 비참함이나, 선이나 악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니라.”(니파이후서 2:11)

저는 삶의 고통과 절망에 대한 이러한 해석으로 지난 몇 년간 위로를 받아왔습니다. 저는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을 위시해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한 역경에 처해 의와 악, 거룩함과 비참함, 선한 것과 나쁜 것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더 큰 위안을 얻습니다. 어둡고 습기 찬 리버티 감옥 안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우리가 환난과 시련을 헤쳐 나가도록 부름을 받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장하고 경험을 얻게 되며, 그것은 다시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교리와 성약 122:5~8 참조)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감옥에 있는 선지자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늘 모든 입구와 출구를 적절히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거나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집에는 특정 복도와 난간, 특별한 카펫이나 커튼이 있을지 모르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그 집을 거쳐 가도록 그분이 마련하신 것입니다. 

우리 생애에서 여러 시기에, 때로는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이사야 55:8)

빗나간 자녀 때문에 가정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거나 재정적인 곤란과 감정적인 긴장으로 가정과 행복이 위협당하고 있더라도, 또는 생명 혹은 건강을 잃게 된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영혼에 평안이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험을 받지는 않습니다.[고린도전서 10:13; 앨마서 13:28; 34:39 참조] 우리가 거쳐야 하는 우회하는 길과 절망이 … 주님께 이르는 협착하고 좁은 길일 수 있습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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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있는 조셉 스미스

리버티 감옥에 갇힌 조셉 스미스에게 주님께서는 역경이 우리에게 경험과 유익을 주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계시하셨다.

3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낙관적이고 자신감을 가질 이유가 충분히 있다.

필멸의 생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늘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살아야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염세주의에 빠지거나 절망할 이유나 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두 번의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포함해서 여러 전쟁을 지켜봐 왔습니다. 경제 대공황도 헤쳐 나왔고, 신혼 가정을 이끌면서도 법과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주식 시장과 세계 경제가 정신 없이 돌아가는 것도 보았고, 소수의 독재자와 압제자들의 만행도 보았는데, 그러한 모든 것은 그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이 여러분 시대에만 일어난 것이라거나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일어난 일들보다 더 나쁜 일들은 없다거나 앞으로 도무지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믿음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일들이 악화되어 왔다면 앞으로는 늘 더 좋아질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 일들은 항상 그렇게 돌아갑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생활하고 복음을 사랑하며 복음이 우리 삶을 축복할 수 있도록 할 때 더욱더 그렇습니다. …

일부 사람들의 말과는 반대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낙관적이고 자신감을 가질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모든 세대는 극복할 일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7

4

우리가 구주께 나아가면 그분이 우리 짐을 덜어 주고 우리 부담을 가볍게 하실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

하나님의 아들께서 몸소 제시하신 이 놀라운 도움의 손길은 그 당시의 갈릴리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쉬운 멍에를 메고 가벼운 짐을 지라는 부름은 한 세대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과 도시와 국가 및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호소입니다.

이 어려움이 가득한 시기에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에 대한 이 확실한 해결책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곳에 개인적인 평화와 보호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곳에 온 세대의 죄를 사해 주는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수고를 덜어 주시고 짐을 가볍게 해 주실 권능을 갖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얻어야 합니다.

물론 이 약속에는 의무도 따릅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라]”고 당부하십니다. 고대의 성경시대에 멍에는 밭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도구였습니다. 이 멍에를 두 마리의 소에 함께 메어 주면, 한 마리가 감당해야 할 힘이 두 마리에게 똑같이 배분되기 때문에 쟁기나 짐마차를 끄는 데 그만큼 힘을 덜 들여도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겹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짐이라도, 두 사람이 함께 멍에를 메면 둘 다 똑같이 쉽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의 멍에를 메기 위해서는 어렵고도 성실한 노력이 요구되지만, 진실로 개심한 사람들에게는 이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왜 삶의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하며 쉽사리 걸려 넘어질 세상적인 도움만으로 그 짐을 옮기려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통해 그리고 하나님과 나란히 설 때 오는 권능과 평화를 통해, 이곳 필멸의 세상에 있는 개간되지 않은 딱딱한 땅에서 어려움을 이겨 내고 과업을 견뎌 낼 도움과 균형,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모두에게 삶의 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 물론, 하나님 아버지의 권고를 따르지 않아 오는 세상의 죄에서 기인한 슬픔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삶의 역경을 모두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짐을 지고 멍에를 메어야 한다면, 내 것을 지고 메지 않겠느냐? 내가 약속하나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마태복음 11:28~30 참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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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젊은이

“모든 세대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으로 충만해지라는 권유, 아니 명을 받습니다.”

5

후기 성도들은 마지막 날의 환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경전에는 온 세상이 어떤 어려움에 처할 때가 올 것이라고 나옵니다. 아쉽게도 우리 경륜의 시대에는 불의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고 그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 형벌이 닥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시간에 그 불의를 끝내시겠지만, 우리가 할 일은 충분히, 또 충실하게 생활하고 세상의 고통에 대해, 또 세상에 종말이 오는 시기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복음을 지니고 산 위에 있는 동네를 비추는 불빛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아름다움, 그리고 노소를 막론하고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라면 늘 받게 되는 기쁨과 행복을 발산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 마지막 경륜의 시대에는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마태복음 24:21 참조)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고(교리와 성약 45:26 참조) 또 온 땅이 동요하게(교리와 성약 45:26 참조) 될 것임을 압니다. 모든 경륜의 시대에는 그 시대만의 위험천만한 시기가 있었지만 우리 시대는 진짜 위험이 있게 될 것입니다.(디모데후서 3:1 참조) 악인들이 번영하겠지만(디모데후서 3:13 참조) 악인들이 번영했던 때가 이미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재앙이 닥치고 간악함이 넘칠 것입니다.(교리와 성약 45:27 참조)

불가피하게 이런 류의 예언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두려움이 생기며, 그것은 젊은 세대에 국한된 두려움은 아닙니다. 노소에 상관없이 우리가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그런 두려움을 다 느낍니다.

그러나 충실한 후기 성도들에게 그런 두려움은 불필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 느낌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위대하신 여호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명기 31:6, 8)

현대 이스라엘에 속한 훌륭한 세대인 여러분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선을 행하라. 땅과 지옥이 연합하여 너희를 대적하게 하라. 이는 만일 너희가 나의 반석 위에 세워져 있을진대, 그들이 이기지 못할 것임이니라. 

무슨 생각을 하든지 나를 바라보라. 의심하지 말며, 무서워 말라.”(교리와 성약 6:34, 36)

이런 권고는 우리 현대 경전에 연이어 나옵니다. 우리를 안심시키는 이 훌륭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두려워 말라. 어린아이들아, 이는 너희가 나의 것임이요,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며, 너희는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 중에 있음이니라.”(교리와 성약 50:41) “진실로 내가 너희, 나의 친구들에게 이르노니, 두려워 말라. 너희 마음에 위로를 얻으라. 참으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교리와 성약 98:1)

이런 훌륭한 권고가 주어진 것을 비추어 볼 때, 저는 우리가 조금 더 기뻐하고, 조금 덜 절망하며, 우리가 가진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많은 것에 감사하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또는 이 세대 내지 어떤 세대나 시련의 시기에 으레 느끼는 불안에 대해서는 조금 덜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큰 희망과 흥분의 시기

후기 성도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큰 희망과 설렘을 느끼는 때이자 회복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 중 하나이며, 그리하여 이 시대는 모든 경륜의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시기 중 하나입니다. 우리 경륜의 시대가 모든 경륜의 시대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희망을 품을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보이는 커다란 기본 덕성에 속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에서 가장 우선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권능이 있으며,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사업은 우리의 생활에서나 세상에서나 멈추지도, 좌절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늘 보호하시고 보살펴 주시리라는 사실을 주님의 종인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우리는 모든 세대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경험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여러분은 분명한 희망과 약속과 재확신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성도를 지킬 권능이 있으시며, 자신의 백성을 위한 평안과 방어, 안전의 장소를 항상 준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을 때, 우리 자신과 온 인류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옛적에 (곤란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선지자 이더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더 나은 세상, 곧 참으로 하나님 우편의 처소를 바랄 것이요, 이 소망은 신앙에서 비롯하여, 사람의 영혼에 닻이 되어, 그들로 확실하고 굳건하며, 늘 선행이 넘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 하였더라.”(이더서 12:4)

모든 세대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으로 충만해지라는 권유, 아니 명을 받습니다.(니파이후서 31:20 참조)

두려움을 쫓아내려 노력함 …

… 우리 신앙과 소망이 그리스도에게, 그분의 가르침에, 계명에, 약속에 고정되어 있다면, 참으로 눈에 띄는, 진정으로 기적과 같은 것들을 의지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홍해를 가르고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할]”(찬송가, 1985, 16장) 곳으로 현대의 이스라엘을 인도해 줄 것입니다. 두려움, 즉 힘든 시기에 사람들에게 엄습하는 이 두려움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사탄이 무기고에 비치하여 사용하는 주된 무기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악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인생의 고난을 헤치고 나갈 힘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그들의 영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도록 항상 애씁니다. 모든 시대와 시기에 사람은 두려움에 직면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후손으로서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려움을 쫓아내려 애써야 합니다.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일을 잘 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사업도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후기 성도들은 신성하게 지명받아 성취해야 할 사명이 있는데 두려움과 걱정을 이겨 내야만 합니다.

일찍이 주님의 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려움을 정복하는 열쇠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어졌습니다. ‘너희가 준비되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교리와 성약 38:30) 이 신성한 메시지는 오늘날 모든 스테이크와 와드에 다시금 필요합니다.”(Elder John A. Widtsoe, Conference Report, Apr. 1942, p. 33)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우리를 맡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이겨 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의로운 율법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질문에 예라고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 생활에서 두려움이 떠나도록 명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의롭게 생활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로 우리 마음에 있는 두려움의 정도를 잘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시대와 시기에 모든 후기 성도의 생활에서 특징이 되어야 하는 생활 방식입니다.

후기에 생활하는 특권과 명예, 책임

자신의 생애에서 엄청난 어려움들에 직면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승리를 위해 궁극적인 값을 치렀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한 말씀 중에 제가 읽었던 가장 훌륭한 것 하나를 들려드리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를 거뒀으며, 행복하고 굳세고 낙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가장 어둡던 시기에도 그에게서 힘과 용기를 느꼈습니다. 그는 낙담하거나 오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분과 제가 사는 우리 시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과거에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왕들이 특별히 기쁜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시대]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며 고대해 왔습니다. 그들은 천국의 예감과 즐거운 예감으로 고취되어 우리가 사는 이날을 노래하고 글로 쓰고 예언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후기의 영광을 가져오도록 택하신 은총을 입은 백성입니다. 후기의 영광을 보고 그것에 참여하며 그것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돕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186쪽)

그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 얼마나 큰 명예입니까! 그 얼마나 큰 책임입니까! 그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우리는 현세와 영원에서 기뻐하고 우리 삶의 우수함과 우리가 받은 약속들에 대해 감사드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9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역경이 영원한 진보를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임을 아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1편 참조) 역경이 왜 필멸의 세상에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가?

  • 2편에서 역경의 몇 가지 목적에 대한 헌터 회장의 가르침을 복습한다. 역경이 어떻게 우리의 유익이 될 수 있는지를 목격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영원한 관점에서 역경을 볼 수 있게 되는가?

  • 헌터 회장이 가르치듯이 왜 어려운 시기에도 행복하고 낙관적이 되어야 하는가?(3편 참조) 그런 시기에도 어떻게 낙관적인 생각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는가? 가장 극심한 역경의 시기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축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우리의 짐을 구주께 지워 우리의 부담을 가볍게 하라는 그분의 권유를 어떤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4편 참조) 그분의 멍에를 우리가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려운 시기에 구주께서는 여러분을 어떻게 도와주셨는가?

  • 헌터 회장은 마지막 날의 환난에 대한 두려운 느낌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5편 참조) 두려운 마음을 품고서 생활하는 것은 어떻게 해로운가? 두려움보다는 희망과 신앙을 품고서 생활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관련 성구

요한복음 14:27; 16:33; 히브리서 4:14~16; 5:8~9; 니파이전서 1:20; 앨마서 36:3; 교리와 성약 58:2~4; 101:4~5; 121:7~8; 122:7~9

학습을 위한 도움말

“연구하는 데 가장 좋은 시간으로는 한 밤의 휴식 [후에] … 아침 시간을 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하루의 일을 끝내고 걱정거리를 한 옆으로 치워 놓은 한밤의 조용한 시간에 읽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 하루 중 어떤 시간을 정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읽을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 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하워드 더블유 헌터, “경전 읽기”, 성도의 벗, 1980년 3월호, 94~95쪽)

  1. “단련받는 백성”, 성도의 벗, 1980년 11월호, 35쪽.

  2.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성도의 벗, 1991년 1월호, 91~92쪽.

  3. “문을 여는 것과 닫는 것”, 성도의 벗,1988년 1월호, 62~63쪽.

  4. “단련받는 백성”, 36~38쪽.

  5. “An Anchor to the Souls of Men,” Ensign, Oct. 1993, 71.

  6. “문을 여는 것과 닫는 것”, 64쪽.

  7. “An Anchor to the Souls of Men,” 70.

  8. “내게로 오라”, 19~20쪽.

  9. “An Anchor to the Souls of Men,” 7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