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6장: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제6장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우리는 구주의 속죄 희생과 부활 때문에 필멸의 죽음에서 일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생애에서

1934년 3월 20일에 하워드 헌터와 클레어 헌터의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아들의 이름을 하워드 윌리엄 헌터 이세라고 짓고 빌리라고 불렀다. 여름 동안 그들은 빌리가 무기력해 보이는 것을 느꼈다. 의사들은 빈혈증 진단을 내렸으며, 수혈을 위해 하워드가 두 번 헌혈을 했지만 빌리의 상태는 차도가 없었다. 그러나 추가 검사를 해 보니 창자에 큰 문제가 있어서 빌리에게 출혈이 일어났던 것이다. 의사들이 수술을 했고, 하워드가 아들 옆에 누워 피를 수혈해 주었지만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았다. 삼일 후인 1934년 10월 11일에 어린 빌리는 부모가 옆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하워드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밤중에 병원을 떠나면서 슬픔에 사로잡혀 망연자실했다.”1

빌리의 사망과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의 사망을 경험하면서 헌터 회장은 구주의 속죄와 부활에 대한 간증에서 지탱할 힘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다. “[속죄가] 실재하며 구원의 신성한 계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속죄로 인해 온다고 믿습니다. 속죄가 없다면 창조의 전체 계획이 헛될 것입니다. … 이런 속죄 희생이 없다면 현세적인 죽음이 끝이 될 것이고 부활도 없고 우리가 영적인 생활을 하는 목적도 없을 것입니다. 영생에 대한 희망도 없을 것입니다.”2

부활절 전후로 열리는 4월 연차 대회에서 헌터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종종 말씀했다. 1983년 4월 연차 대회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이 부활절에 저는 구주의 부활의 실재를 간증하는 저의 사명이 지닌 중요성을 강력하게 느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늘에는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시고 관심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육으로 난 독생자이자, 영의 자녀 중 맏아들을 보내시어, 지상에서 우리의 본보기가 되게 하시고, 세상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게 하시고, 그 뒤에는 세상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어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메시지입니다. 사망이 있고 난 뒤에는 생이 있게 될 것입니다.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고 계명에 순종하면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 살 수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부활절 아침에, 기독교계의 모든 생각이 잠시 동안이나마 예수의 부활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 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위대한 구원의 계획에 감사를 표해야 하겠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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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무덤

구주의 빈 무덤은 “온 세상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6)라고 알려 줍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의 가르침

1

속죄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지고한 사랑의 행동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타락한 상태가 된 후 그들을 구속하기 위해 예임하신 임무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에게 속죄 희생을 치르게 하신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또 그것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 속죄를 실행하도록 하기 위한 지고한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겟세마네 동산에 여러 차례 가 보았습니다. 구주의 고난과 고뇌,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그에게 온 인류의 고통과 죄를 직접 짊어지도록 하셨을 때 경험하신 고뇌를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커다란 희생에 대해 생각하면서 제 영혼은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해골의 장소, 즉 골고다 언덕 아래에 서서, 필멸의 세상에서 구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그분과 온 인류의 불멸을 가져다주었던 십자가에서 당하신 굴욕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다시 제 영혼이 압도되었습니다.

동산 무덤 앞에 서서 구주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셔서 부활하신 불멸의 몸으로 나타나셨던 그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할 때 제 가슴은 기쁨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께서 영화로운 속죄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으로 제 영혼이 가득 참을 느꼈습니다. 찰스 가브리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에 놀라며 주 내리신 큰 은혜에 나 당황하네 이 죄인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 큰 사실을 알 때 맘 심히 떨리네 오 나를 사랑하여 죽으신 그 일 놀라운 일일세 주님의 업적은 훌륭하셔라”. …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의 계획이 운영되는 조건을 성취하시려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음을 간증드립니다. 속죄는 우리를 위한 그분의 커다란 사랑을 나타냅니다.4

2

구주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연약함, 슬픔, 고통을 직접 짊어지셨다.

유월절을 지키고자 모였을 때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그분이 마지막 만찬을 함께 들면서 시작하신 성찬의 상징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감람산으로 갔습니다.

언제든지 그리고 끝까지 선생님이셨던 그분은 희생양을 주제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같이 될 것이며, 그들은 목자 잃은 양같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31 참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태복음 26:32).

그 이후 여러 시간 동안 그분은 핏방울을 흘렸으며, 그분의 율법의 관리자로 자처하는 바로 그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받고 도적의 무리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몰몬경에서 베냐민 왕은 이같이 예언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것을 제외하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과 육신의 고통, 주림, 갈증과 피로를 겪으리니, 이는 보라, 피가 모든 땀구멍에서 나옴이라, 그의 백성의 사악함과 가증함으로 인한 그의 고뇌가 그처럼 크리라. …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시나니, 이는 … 구원이 사람의 자녀들에게 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이 모든 일 이후에도 그들은 그를 사람이라 생각하여, 그가 귀신 들렸다 말할 것이요, 그를 채찍질 할 것이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리라.”(모사이야서 3:7, 9)

우리는 주님께서 어느 정도 고난을 받으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 선지자 앨마에게 감사드립니다. “그가 나아가사, 온갖 고통과 고난과 시험을 당하시리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의 고통과 질병을 짊어지리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또 그가 사망을 짊어지시리니, 이는 그의 백성을 결박하는 사망의 줄을 푸시려 함이요, 또 그들의 연약함을 짊어지시리니, 육체를 따라, 그의 심정을 자비로 충만하게 하사, 육체를 따라, 자기 백성을 그들의 연약함을 좇아 어떻게 도울지 아시고자 하심이니라.”(앨마서 7:11~12)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떼어 빌린 무덤에 급히 뉘었을 때,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회개하는 모든 인간의 죄와 유혹만이 아니라 온갖 병고와 슬픔과 고통까지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따르는 고난을 겪는 것처럼 그분은 이러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겪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상의 모든 고난에서 떼어 내는 그의 자비와 능력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이러한 것을 겪으셨습니다.5

우리는 그릇된 선택, 잘못된 선택, 해를 끼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자비가 큰 힘과 영광을 갖게 됩니다. … 그는 우리가 하는 잘못된 선택을 중재하기 위해 속죄를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앞에서의 우리의 대변자로서, 우리가 자유를 행사하는 데 있어 자주 보게 되는 잘못과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이미 치르셨습니다. 이러한 구속으로 인한 온전한 혜택을 받으려면 우리는 그분의 은사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잘못을 회개하고 그분의 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 제안은 항상 유효하며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있고 가장 비참한 실수를 했더라도 항상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고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6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성지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벌어지던 시대로 되돌아가 봅시다. 우리 주님의 지상 생활의 끝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그분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언을 포함해 경전을 해석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태복음 20:18~19

삼 일째 되는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을 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생명이 끊긴 그분의 육신이 뉘어 있던 무덤으로 왔습니다.[마태복음 28:1; 또한 마가복음 16:1; 누가복음 24:10 참조] 그보다 앞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마태복음 27:64)라고 전하지 않도록 빌라도에게 가서 무덤의 입구에 보초를 둘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힘센 두 천사가 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렸고 보초들은 그것을 보자 겁에 질려 달아났습니다.

무덤에 온 여인들은 무덤이 열리고 텅 빈 것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은 남아 있다가 인간이 귀로 들어 본 가장 큰 소식을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태복음 28:6).7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에 대한 교리는 기독교 경전에 있는 어떤 교리보다도 모든 인간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그분을 통해서 모든 인간, 즉 이제까지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또한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간에게도 부활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교리에서 부활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영적인 중요성과 영원한 위대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식했다면 니파이의 동생 야곱과 같이 그 훌륭함에 경탄했을 것이며, 이 신성한 은사를 받지 못했다면 당했을 상황에 놀라 떨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썼습니다.

“오 하나님의 지혜 그의 자비와 은혜여! 이는 보라, 만일 육체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진대, 우리의 영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타락하여 악마가 된 저 천사에게 복종하게 되지 않을 수 없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것임이라.”(니파이후서 9:8)

분명히 부활은 모든 기독교인의 신앙의 중심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구주께서 행하신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참으로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빌려 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린도전서 15:13~15, 17).8

부활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혜로운 말씀이나, 외견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연속, 즉 궁극적인 승리가 없는 말씀과 기적의 연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승리는 궁극적인 기적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죽은 사람이 불멸로 다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불멸의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며, 그분의 육체적, 영적인 죽음을 극복한 승리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입으로 말해야 할 좋은 소식입니다.

영원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3 참조) 이 위대한 사건에 대한 증인들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된 증인들 중에는 주님의 사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거룩한 사도의 직분에 부름받는 것은 세상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종교의 기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간증, 즉 그분은 돌아가셨고, 매장되셨으며,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는 간증입니다. 우리 종교에 관한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그것에 부속되어 있을 뿐입니다.”(History of the Church, 3:30) …

그리스도는 사도들을 가르치실 때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마가복음 8:31) 알렸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셋째 날에 그분은 온 인류의 구주이며 부활의 첫 열매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속죄의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은 무덤에서 구원을 받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은 항상 사도들의 간증이 되어 왔습니다. 이 간증에 저의 증언을 … 더해 드립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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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직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요한복음 20:1~18 참조)

4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이후에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다섯 군데의 특별한 상처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들과 함께 걷고 말하고 식사도 하셨습니다. 마치 부활한 육신은 사실상 만질 수 있는 살과 뼈의 육신이라고 확실히 증거해 주시는 듯했습니다. 후에 그분은 니파이인들에게 나타나셨고 경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어나 내게로 나아와서 너희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고, 또 내 손과 내 발의 못 자국을 만져 보아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온 땅의 하나님이며,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였음을 알지어다.

이에 … 무리가 나아갔느니라. 그리고 그들의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았느니라. 또 그의 손과 그의 발의 못 자국을 만져 보았으니, 그들이 이를 행하되 하나씩 나아가 이윽고 그들이 모두 나아가기까지 그리하였느니라. 또한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손으로 만져 보았으매, 그가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기록한 그이심을 분명히 알고 증거하였느니라.”(제3니파이 11:14~15)

온 세상 사람들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증거]한 이 예수를 구하여”(이더서 12:41) 그분의 거룩하심에 대해 영적인 증거를 갖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요 기쁨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겸손히 구하며 아버지와 부활하신 아들에 대한 증거를 갖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리요 축복입니다.10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그분]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았던 사람들의 간증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적어도 열 번 또는 열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동산에서 막다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에게,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도마가 없을 때 사도들에게 또 그가 있을 때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갈릴리 바다에서 사도들에게, 산에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한 번,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승천하실 때에도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11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도록 부름받고 성임된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심을 이 부활 절기에 간증드립니다. 그분은 영화로운 불멸의 살과 뼈의 육신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그분은 구주이시며, 세상의 빛과 생명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그분은 부활하신 몸으로 마리아와 베드로와 바울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니파이인들에게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소년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우리 경륜의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2

5

우리는 죽음에서 일어나서 영생을 갖게 될 것이다.

부활절은 모든 인류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불멸의 은사와 생명의 회복과 모든 고통의 치유를 경축하는 행사입니다. 모든 인간이 성장과 발전을 위한 영원한 계획의 일부로 죽더라도 우리 모두는 시편 작가의 이런 말씀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 30:5).

모든 세대의 의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질문을 제기한 사람은 바로 욥이었습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욥기 14:14). 그리스도의 대답은 바로 이 시간까지도 울려 내려옵니다.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한복음 14:19).13

죽을 때 영과 육이 분리됩니다. 부활은 영과 육을 다시 결합하는 것이며, 육체는 살과 뼈로 되어 있지만 피 대신에 영으로 소생된 몸인 영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 후에 영에 의해 소생된 우리 육신은 불멸이 되어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바,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그리고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고린도전서 15:44, 50 참조) 육의 몸은 살과 피이지만, 피 대신에 영에 의해 소생되면 그것은 왕국에 들어갈 수 있고 또 그럴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이 아주 오래 전에 그 부활절기에 서한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간증했듯이, 저는 우리가 구주의 속죄 희생과 부활 덕분에 필멸의 죽음에서 일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될 것이라는 간증을 더해 드립니다. 저는 다음 말씀을 듣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팔을 활짝 펼치신 주님을 마음 속으로 그려 봅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14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멸의 축복과 영생의 가능성을 가져다줍니다. 그의 빈 무덤은 온 세상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6)라고 알려 줍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가 시련받을 때 필요한, 그리고 때로는 슬픔으로 가득한 생활에서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데 필요한 모든 희망과 확신과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15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속죄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보이는가?(1편 참조) 이런 사랑의 은사에 대해 어떻게 감사를 나타낼 수 있는가?(교리와 성약 42:29 참조)

  • 2편을 복습하면서, 속죄가 우리를 축복하는 많은 방법을 찾아본다. 헌터 회장의 가르침과 경전의 사용은 속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강화시켜 주는가? 어떤 경험이 속죄에 대한 여러분의 간증을 강화시켜 주었는가? 시련을 겪을 때 속죄의 권능이 여러분을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는가?

  • 부활에 대한 헌터 회장의 가르침을 공부하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3편 참조) 부활의 중요성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

  • 헌터 회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많은 증인들을 자세히 설명한 4편을 복습한다. 이런 증인들의 간증이 왜 중요한가?

  • 부활은 “우리가 시련받을 때 필요한, 그리고 때로는 슬픔으로 가득한 생활에서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데 필요한 모든 희망과 확신과 믿음”을 제공한다는 헌터 회장의 가르침을 생각해 본다. 부활이 어떻게 여러분에게 희망과 위안의 근원이 되는가? 부활에 대한 간증이 어떻게 여러분 생활을 풍성하게 했는가?

관련 성구

요한복음 10:17~18; 니파이후서 2:6~9, 22~27; 9:19~25; 제3니파이 27:13~16; 교리와 성약 18:10~16; 19:15~20; 모세서 6:59~60

학습을 위한 도움말

“구주를 믿는 여러분의 신앙을 강화하[는] … 학습 활동을 계획한다”(나의 복음을 전파하라[2004], 22쪽) 예를 들어 공부할 때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다. “이런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이런 가르침이 더욱 구주와 같이 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1. Eleanor Knowles, Howard W. Hunter(1994), 88; 또한 86–87 참조.

  2. Conference Report, Oct. 1968, 139.

  3. “부활의 증거”, 성도의 벗, 1983년 7월호, 26~27쪽.

  4. “The Atonement of Jesus Christ”(선교부 회장 세미나에서 하신 말씀, 1988년 6월 24일), 2–3, 7, Church History Library, Salt Lake City; 또한 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ed. ClydeJ. Williams(1997), 8–9 참조.

  5.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성도의 벗, 1988년 7월호, 18~19쪽.

  6. “선택의 금실”, 성도의 벗, 1990년 1월호, 22~23쪽.

  7.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18, 20쪽.

  8.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18쪽.

  9. “부활에 대한 사도의 증거”, 성도의 벗, 1986년 7월호, 16~17쪽.

  10.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20쪽.

  11. Conference Report, Apr. 1963, 106.

  12.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20쪽.

  13. “부활에 대한 사도의 증거”, 16쪽.

  14. Conference Report, Apr. 1969, 138–39.

  15. “부활에 대한 사도의 증거”,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