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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목적은 승영이라고 옥스 장로가 말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유타 카운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자 페이슨과 인근 도시에 연고가 많은 사람으로서, … 저는 몬슨 회장님이 이 페이슨 성전 건립을 발표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뻤습니다. 이곳에 성전을 짓고, 그 이름을 유타 페이슨 성전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몬슨 회장님의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선지자가 내린 이 결정에 우리 모두가 기뻐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유타 페이슨 성전 기공식 연단에 서 있는 옥스 장로

유타 페이슨 성전 기공식장에서 가진 비공식 모임에서 옥스 장로가 참석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2011년 10월 8일 토요일에 거행된 유타 페이슨 성전 기공식에서 옥스 장로는 유타 페이슨 성전 건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고 성전이 완공되면 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간증했다.

화가가 그린 유타 페이슨 성전 그림

유타 페이슨 성전 완공 모습을 담은 화가의 그림.

특별한 장소에 세워진 특별한 건물

옥스 장로는 기공식에 참석한 교회 지도자, 현지 공무원 및 성도들에게 말씀했다. “페이슨은 제가 자란 네 도시 중 한 곳입니다. 1940년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저는 페이슨과 스프링레이크 사이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해리스 할아버지 농장에서 조부모님과 살았는데, 그 농장이 있는 위치는 제가 서있는 곳에서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보입니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저는 페티네트 학교에서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을 마쳤지요. 또 그 학교 바로 북서쪽에 있는 와드 건물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옥스 장로는 말을 이었다. “10대 초반에는 여름마다 페이슨 농장에 돌아와 할아버지를 도왔지요. 그 시절 저는 페이슨 밴드의 일원으로 공원에서 열린 여름 음악회와 시가행진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제 가족은 이곳 페이슨 시내에 있는 파크 와드에 참석했는데 그 와드는 1st South 3rd West에 여전히 있습니다. 저는 파크 와드 스카우트단과 함께 스카우트 활동에 참여했으며 교회에서 말씀을 처음으로 한 곳이 바로 이 파크 와드입니다. … 그러다가 1951년 페이슨 고등학교에서 열린 농구 대회에서 스페니시포크 출신으로 후에 제 아내가 된 준 딕슨을 만났지요. …

유타 페이슨 성전 기공식에 참석한 옥스 장로와 스테이크 회장들

유타 페이슨 성전 관내 스테이크 회장들은 옥스 장로와 함께 기공식에 참석했다.

“그런 사연을 아신다면 페이슨에 성전이 건립된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또 몬슨 회장님이 저더러 이 기공식을 감리하라는 지명을 주셨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이 가시리라 믿습니다.”

만민을 위한 등불

교회 및 시 지도자들과 함께 첫 삽을 뜨는 옥스 장로

바람이 거센 날, 옥스 장로 (모자를 쓴 사람)가 교회 및 시 지도자들과 함께 성전 부지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옥스 장로는 성전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고 가르쳤다. “유타 페이슨 성전은 주야로 이곳을 지나는 수백만 행인들에게 우뚝 솟아 눈에 띄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옥스 장로는 “하지만 우리는 이 성전이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고 유타 카운티 내 이 고장 성도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 성전을 이용하는 스테이크의 회원들은 모두 성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되고, 의식 참여를 통해 주님의 집에서 축복을 받고 강화되는 영향력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옥스 장로는 다음과 같은 간증으로 말씀을 마쳤다. “이 성전은 주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주신 거룩한 신권 의식이 이곳에서 베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주님의 사업이자 주님이 만드신 계획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이 성전이 세워지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녀들의 승영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