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 및 공과
제12장: 속죄


“제12장: 속죄,” 복음 원리 (2009), 59–66

“제12장,” 복음 원리, 59–66

제12장

속죄

이미지
Jesus Christ depicted leaning on a rock in the Garden of Gethsemane. The image depicts the Atonement of Christ.

우리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속죄

  • 속죄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고, 그리고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그리고 세상을 성결하게 하시려고, 그리고 모든 불의한 것에서 세상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세상에 들어오셨나니 …… 모든 자가 그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교리와 성약 76:41~4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고 사망을 이기기 위해 하신 위대한 희생을 속죄라고 한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는 속죄가 이루어져야 마땅함이니,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따라 속죄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이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모든 인류는 필경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 참으로 모두가 타락하여 잃은 바 되었은즉 …… 속죄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반드시 멸망하리라.”(앨마서 34:9)

아담의 타락으로 이 지상에는 두 가지 사망이 있게 되었다. 그것은 육체적 사망과 영적 사망이다. 육체적 사망이란 영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이며, 영적 사망이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분리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이 두 가지 사망이 극복되지 않았더라면, 두 가지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즉, 우리 육신과 영은 영원히 분리되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다.(니파이후서 9:7~9 참조)

그러나 현명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육체와 영적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놀랍고도 자비로운 계획을 마련하셨다. 그분은 구주를 지상에 보내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기로 계획하셨다. 우리가 지은 죄와 육신이 가진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속죄할 수 없었다.(앨마서 34:10~12 참조) 우리의 구주가 되실 분은 죄가 없고 사망을 이길 권능이 있는 분이어야 했다.

우리 죄를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예수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주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구주로 택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사망을 이길 권능이 있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한복음 10:17~18)

또한 예수님은 지상에서 유일하게 죄를 짓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구주가 될 자격이 있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죗값을 치를 희생 제물이 될 수 있었다.

우리 죄를 속죄하기 위해 고통을 겪고 돌아가신 그리스도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이 겟세마네 동산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목격하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구주는 겟세마네에서 고통을 겪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버림으로써 우리 죄를 속죄하셨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으셨는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은 우리 죄가 짓누르는 무게 때문에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는 고통을 받으셨다.(교리와 성약 19:18~19 참조) 이후에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잔혹한 방법 중 하나로 고통스러운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영육의 고통을 겪으신 것은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독생자를 보내어 다른 자녀를 위해 고통과 죽음을 겪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속죄와 부활로 모든 인류가 부활하게 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삼 일째 되던 날에 그분은 육신을 다시 입고 인간으로서 최초로 부활하셨다. 친구들이 그분을 찾으러 갔을 때, 무덤을 지키던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태복음 28:6) 그분의 영은 다시 그분의 육신으로 들어갔으며 이제 다시는 분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육체적인 사망을 이기셨다.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이 지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부활할 것이다.(고린도전서 15:21~22)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영도 우리 육신과 재결합하여 “다시는 죽을 수 없겠고 …… 결코 나뉘지 아니할 것”(앨마서 11:45)이다. 이러한 상태를 불멸이라고 한다. 지상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늙은 자나 젊은 자,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 남자나 여자, 악한 자나 의로운 자”(앨마서 11:44)를 막론하고 모두 부활할 것이다.

  • 부활에 대한 지식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속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음

  • 이 부분에 나온 비유가 속죄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본다. 이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을 우리 삶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사람들이겠는가?

구주께서 치르신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인 사망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부활하겠지만, 속죄를 받아들이는 이들만이 영적인 사망에서 구원받을 것이다.(신앙개조 제3조 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은 그분의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침례와 성신을 받으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한다.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며, 용서 받고, 죄에서 깨끗해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함께할 준비를 갖춘다.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 그들이 …… 고난을 겪지 않게 하려고 나 하나님이 모두를 위하여 이러한 일을 겪었음이니라.”(교리와 성약 19:16~17)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맡으신 역할을 다하셨다. 그분의 속죄가 우리 삶에서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게 하려면 그분께 순종하고 죄를 회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십이사도 평의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만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다했을 때 어떻게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될 수 있는지를 다음 이야기로 설명했다.

“비유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것을 몹시 원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큰 빚을 지는 것과 특히 그의 채권자가 행사하는 권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원하는 것을 당장 갖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나중에 그 돈을 갚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용증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그 돈을 갚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만기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고, 돈을 갚는 것에 대해 별로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제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채권자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으며, 가끔 조금씩 빚을 갚았습니다. 그러나 부채를 [완전히] 청산해야 할 날이 닥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약이 만료되는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부채는 완전히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채권자는 그에게 부채를 모두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채권자가 자기 소유물을 모두 가져갈 권리뿐만 아니라 자신을 감옥에 보낼 권리까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빚을 갚을 수가 없군요. 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실토했습니다.”

“채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약대로 당신의 재산을 차압하고 당신을 감옥으로 보내겠소. 당신은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소. 그건 당신이 선택한 것이오. 당신이 이 차용증서에 서명했으니, 이제 그대로 이행해야겠소.’”

“그 말을 들은 채무자는 ‘지불 기한을 연장해 주든지, 아니면 빚을 탕감해 줄 수는 없겠습니까?’라고 애원했습니다. ‘제 소유물을 빼앗기지 않고 감옥에도 가지 않도록 조처해 주십시오. 자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나 채권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비란 언제나 편파적인 것이라오. 그것은 당신에게만 좋은 게 아니겠소. 내가 당신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나는 빚을 못 받게 될 것이오. 내가 요구하는 것은 공의요. 당신은 공의를 인정하시오?’”

“‘차용 증서에 서명할 때만 해도 나는 공의를 인정했습니다.’라고 채무자는 말했습니다. 그때는 공의가 나를 보호해 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의가 내 편이었습니다. 그때는 자비 같은 것은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았지요. 공의가 우리 두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의가 요구하는 것은 당신이 계약대로 부채를 갚든가, 아니면 형벌을 받는 것이오.’라고 채권자는 대답했습니다. ‘그게 바로 법이오. 당신이 그것에 동의했으니 그대로 이행해야 하오. 자비는 공의를 빼앗을 수 없소.’”

“한 사람은 공의를 주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비를 호소했습니다.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로울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빚을 탕감해 주지 않는다면 자비가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채무자는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채권자는 ‘그렇게 한다면 공의가 없게 될 것이잖소.’라고 맞섰습니다.”

“두 가지 법은 성립될 수 없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것은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영원한 이념입니다.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성립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공의의 법을 완전히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자비를 충분히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채무자에게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가 친구를 도우러 왔습니다. 그는 채무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채무자인 친구가 근시안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런 궁지에 빠진 친구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를 사랑했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채권자에게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내 친구가 재산을 빼앗기지 않고 감옥에도 가지 않도록 당신이 내 친구를 계약에서 자유롭게 해주신다면 내가 그 빚을 갚아드리겠습니다.’”

“채권자가 그 제의를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중재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당신은 공의를 요구했지요. 그가 갚을 수 없으니, 내가 갚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공정하게 받을 것이니 더 이상은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채권자는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중재자는 채무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빚을 갚아 준다면 나를 당신의 채권자로 받아들이겠소?’”

“채무자는 ‘네, 그러고 말고요.’ 하고 외쳤습니다. ‘당신은 나를 감옥에서 구해 주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정하는 조건대로 나에게 빚을 갚아야 하오.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할 것이오. 내가 방법을 가르쳐 주겠소. 당신은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오.’”

“이렇게 하여 채권자는 빚을 다 받았습니다. 그는 공의롭게 대우받았습니다. 계약은 전혀 위반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채무자에게는 자비가 베풀어졌습니다. 두 가지 법칙이 모두 성립된 것입니다. 중재자가 있었기 때문에 공의도 제 몫을 다 주장하게 되었고, 자비도 충족되었습니다.”(Conference Report, 1977년 4월, 79~80쪽; 또는 Ensign, 1977년 5월호, 54~55쪽)

우리의 죄는 우리가 가진 영적인 빚이다. 우리의 구주이자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영적인 사망을 겪음으로써 우리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분께서 정하신 조건, 즉 회개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 함께 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가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함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내게로 오는 그는 내가 영접하리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러한 자의 것임이라. 보라, 그러한 자를 위하여 내가 내 목숨을 버렸고, 또다시 취하였노라. 그러므로 너희 땅 끝에 거하는 자들아, 회개하고 내게로 와서 구원을 받을지어다.”(제3니파이 9:21~22)

  • 속죄의 은사에 감사를 보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보충 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