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제5장: 신앙과 회개


제5장

신앙과 회개

“교회 안팎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강한 신앙과 주님을 섬기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조셉 필딩 스미스의 생애에서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죄를 용서받으려면 신앙과 진심 어린 회개가 필요합니다.”1 그는 “우리는 단지 믿기만 해서는 안 되며 회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신앙으로 끝까지 선을 행할 때 “충실한 사람에게 주는 상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해의 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2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모두가 이 상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동안 회개를 외쳤다.

사도로 봉사하던 초기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지금이 바로 회개할 때라고 말하고, 후기 성도들에게 그들이 맺은 성약, 곧 그들이 주님과 한 약속을 기억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이 경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선지자인 이스라엘 장로들이 준 가르침과 지침을 따르라고 외치는 것을 제 사명으로 여겨 왔습니다. 저는 시온의 스테이크를 방문하면서 주님의 영으로부터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주님 앞에 겸손하고 신중히 행하여 그분의 성령으로부터 축복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이 바로 경고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선지자가 맨 처음 하늘로부터 시현을 받아 복음이 회복되었던 그때부터 경고의 날은 시작되었습니다.”3

어느 일요일 성찬식 모임에서 스미스 회장은 그가 경고의 음성으로 말하는 이유를 회중에게 들려주었다. 그 모임에 참석한 그의 아들 조셉은 훗날 이렇게 적었다. “그날 [아버지가] 하신 말씀 몇 구절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회중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여러분의 친구는 누구이며,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시온에서 모든 것이 잘되고 있으며 번영이 코앞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음 원리를 실천하지 않을 때 받으리라 약속된 재앙과 시련을 경고해 주는 사람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저는 교회 회원들을 사랑하며, 우리가 현세의 휘장을 넘어갈 때 그중 누군가가 저를 가리키며 “당신이 내게 경고해 주기만 했다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요.” 하고 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 형제 자매들이 영광의 왕국을 받을 준비를 갖췄으면 하는 마음에서 경고의 음성을 높입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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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Joseph Fielding Smith sitting in his office, wearing a white shirt, a dark suit, a dotted tie, and glasses.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그가 후기 성도에게 회개를 외친 까닭을 밝혔다. “저는 교회 회원들을 사랑[합니다.]”

스미스 회장 가까이에서 일한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엄중한 경고 뒤에는 죄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 어린 염려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일회장단 비서로 봉사한 프랜시스 엠 기븐스 장로는 스미스 회장이 교회 선도 문제를 고민할 때 그와 함께하는 일이 잦았다. 기븐스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분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최대한의 친절과 사랑과 드넓은 자비심을 발휘하셨다. 몹시 심각한 상황에 관해 들으실 때면 그분은 으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왜 매사에 신중하지 못할까요?’ 여기에는 비난이나 힐난이 아니라 슬픔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5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으로서 스미스 회장과 함께 봉사한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차피 십이사도가 이스라엘의 판사가 될 것이라면 그분 손에 떨어지는 사람은 누구라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분은 친절하고 자비롭고 공의롭고 거룩하게 판단하실 테니까요.”6 감독을 성임할 때 스미스 회장은 종종 그들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으며 모든 경우에는 적어도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혹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것 같으면, 차라리 사랑과 자비의 편에 서서 그렇게 하십시오.”7

조셉 필딩 스미스의 가르침

1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며, 또한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며 침례의 물속에서 그분의 이름을 받들었습니다.8

항상 어디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살리려고 자신의 생명을 버리러 세상에 오신 분임을 마음속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깁시다. 그것은 진리이며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그 위에 우리의 신앙이 세워집니다. 그 진리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르침이나 인간의 사상에 맞서 이 가르침을 고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최고의 원리이며 우리가 구원받는 데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항상 그분을 기억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조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지킨다면 구원받을 것이며 인간의 사상과 어리석음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9

우리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주님이나 그분의 속죄를 믿는 신앙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신앙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 진리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고 주님을 섬기려는 소망을 마음속에 품은 것입니다. ……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물론 그분의 아버지를 믿는 신앙 없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닐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신앙이 있고, 지당하게도, 우리가 성신의 인도를 받는다면, 우리는 주님이 대변자로 세우신 그분의 종들도 믿을 것입니다.10

2

신앙은 행위를 의미한다.

“신앙은 모든 행위의 동기이다.”[Lectures on Faith, lecture 1] 이 말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신다면 그것이 현세적인 면에서나 영적인 면에서 두루 참되다는 점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도 적용됩니다. ……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달리 말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야고보가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행함이 없는 네 [신앙]을 내게 보이라, [거기에는 아무것도 맺히지 않을 것이나,] 나는 행함으로 내 [신앙]을 네게 보이리라, [거기에는 무언가가 맺힐 것이니라.]”[야고보서 2:18 참조] 신앙은 행위를 의미합니다. …… 그러므로 신앙은 믿음보다 강합니다. ……

신앙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이것은 신앙에 관한 매우 훌륭한 논문과도 같은 히브리서 11장과 주님이 계시를 통해 교리와 성약과 여러 경전에서 주신 경전 가르침입니다. 행함 없이, 혹은 무관심이나 수동적인 믿음만으로는 신앙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배우고 익히는 행위 없이, 잘하고 싶어하는 소망만으로는 음악이나 미술에 능숙해질 수 없듯이, 신앙이 생기기를 바라기만 한다고 신앙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관한 간증을 얻고, 조셉 스미스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 원리를 믿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

만일 우리가 살아 있고 변치 않는 신앙을 원한다면 이 교회 회원으로서 모든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

우리에게 니파이가 보여 준 것과 같은 신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니파이전서 17장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니파이의 형들은 그에게 맞섰으며 배를 만들려는 그를 다음과 같이 조롱했습니다.

“우리 동생은 바보로다, 이는 그가 배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함이라, 그뿐 아니라 그는 또한 이 큰 물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도다.”[니파이전서 17:17]

니파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만사를 다 행하라고 명하셨다면 내가 능히 행할 수 있으리이다. 만일 그가 나에게 명하사 이 물더러 이르기를, 너는 육지가 되라 하게 하신다면 그것은 육지가 되리니, 내가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이루어지리이다.”[니파이전서 17:50]

그것이 바로 그가 지닌 신앙이었습니다.11

우리가 이 지상에 올 때 그랬듯이, 우리는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십니다.[고린도후서 5:7 참조]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계명에 충실하고 신앙으로 행한다면 의로움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12

아무리 입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시라 고백하고 아버지께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진리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계명을 지키는 가운데 교리를 고수하고 신앙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서 떨지만]” 회개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 야고보의 말이 옳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19 참조]13

3

회개는 복음의 둘째 되는 원리로서 우리가 구원받고 승영하는 데 꼭 필요하다.

회개는 복음의 둘째 되는 기본 원리로서 신앙의 발로입니다.14

교회 안팎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강한 신앙과 주님을 섬기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15

우리 중에 죄를 지어도, 그 죄가 무서운 죄, 곧 치명적인 죄가 아닌 한, 하나님 왕국에서 구원받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니파이는 오늘날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니파이후서 28:7~9 참조] 그러나 우리가 진리와 의의 길에서 돌아선다면, 결코 주님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없음을 말씀드립니다.16

시온에는 고의로 죄를 지은 사람이 거할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 곧 악으로부터 돌아서고 영생과 복음의 빛을 찾는 사람이 거할 곳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죄를 조금도 허용해서는 안 되며 주 앞에서 올바르고 온전하게 행해야 합니다.17

사람은 오직 의 안에서만 하나님 왕국에서 구원받고 승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요한1서 1:7 참조]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그분의 피로 깨끗하게 되어, 주님과 친분을 맺고 그분의 영광과 승영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18

우리는 회개해야 하며, 회개하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19

4

회개의 원리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구현되어 있다.

회개는 복음에서 가르치는, 우리에게 가장 위안을 주고 영광스러운 원리 중 하나입니다. 이 원리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가 그 어떤 원리보다 더 강하게 구현되어 있는 듯합니다. 겸손하게 회개하는 사람이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구제될 길이나 방법 없이 우리가 저지른 범법에 대한 형벌이 속절없이 영원무궁토록 계속된다고 할 때 우리가 겪을 공포는 이루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형벌에서 어떻게 구제될 수 있습니까? 누구를 통해 벗어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17, 또한 18~21절 참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다면 죄 사함은 없었을 것이며, 우리는 회개를 통해 죄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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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young man kneeling in prayer at his bedside.

“회개는 복음에서 가르치는, 우리에게 가장 위안을 주고 영광스러운 원리 중 하나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저지른 범법을 모두 회개하고 그분을 섬기려 할 것입니다.21

5

회개에는 죄를 진심으로 슬퍼하고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 포함된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주 네 하나님께 의롭게 희생을, 참으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의 희생을 바칠지어다.”[교리와 성약 59:8]

이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

사전에 나오는 정의에 따르면, 회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죄를 진심으로 슬퍼하고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 슬픔과 죄에서 벗어나려는 소망 없이는 진정한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뉘우침은 죄 때문에 상한 심령, 즉 겸손해진 마음과, 죄의 간악함을 진심으로 자각한다는 점, 그리고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에게 내려 주시는 자비와 은혜를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그런 까닭에 주님은 제가 이미 인용한 것처럼, 우리가 “의롭게 …… 참으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의 희생”을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회개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 어떤 이들에게는 회개가 쉽지 않지만, 회개와 신앙의 은사를 구하는 모든 사람은 이를 받을 것입니다.22

저는 제 경험을 통해서 진심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양심과 경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영원한 복리와 진보를 위해 어떤 습관을 바꿔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23

6

회개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해의 왕국으로 구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기를 원하지만 실족한 적이 있다면, 죄를 범하고 있다면, 주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회개하여 새사람이 될 적기입니다. 너무나 사소한 죄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매로 몇 번 치시고 약간의 형벌만 가하신 후에 용서해 주시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활을 고집하고 고수하다 보면 결국 쫓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24

복음 원리에서 미루는 행위는 영생, 즉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면전에서 사는 삶을 훔치는 도둑입니다. 우리 가운데, 심지어 교회 회원 중에는 복음 원리를 준수하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

[앰율레크]가 한 말을 잊지 맙시다. “이는 보라, 이 생은 사람들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시간이라. 참으로 보라 이 생의 날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수행할 날이니라.

또 이제 내가 앞서 너희에게 이른 것같이, 너희가 그처럼 많은 증거를 가졌은즉,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회개의 날을 끝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영원을 준비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이 날 후에는, 보라, 우리가 이 생에 있는 동안 우리의 시간을 활용하지 아니하면, 그 후에는 아무 일도 수행할 수 없는 어둠의 밤이 옴이니라.

너희가 저 참담한 위기에 이르게 되었을 때는 말하기를, 내가 회개하겠노라, 내가 내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노라 할 수 없느니라. 참으로 너희는 이렇게 말할 수 없나니, 이는 너희가 이 생을 떠날 때에 너희 몸을 소유하는 그 동일한 영, 그 동일한 영이 저 영원한 세상에서 너희 몸을 소유할 능력을 가질 것임이니라.”[앨마서 34:32~34]25

7

우리는 온 세상에 경고의 음성을 높일 책임이 있다.

주님은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하기를 거절하고 자신을 비참한 상태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기 방법이 낫다고 생각하며, 이기심과 탐욕과 사악함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입니다.26

이곳저곳을 다니며 살펴보고 언론 출판물을 통해 접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불가피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27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회개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백성에게, 후기 성도에게, …… 그리고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외칩니다.28

우리는 온 세상, 특히 교회 회원들에게 경고의 음성을 높일 책임이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88:81 참조]29

서로 돌보고 보호하며, 서로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왕국의 복음 원리를 가르치며, 서로 힘을 합쳐 세상의 죄에 맞서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30

저는 오늘날, 심지어 후기 성도들 사이에서조차 회개를 외치는 것보다 더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저는 비회원뿐 아니라 후기 성도들에게 우리 구속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외칩니다. 주님은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그분 면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충실함을 입증하고 신앙과 회개를 통해 그분의 피로 자기의 옷을 빤 자가 아니면 누구도 하나님 왕국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31

“보소서,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이 회개할진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안에서 안전히 거하게 되리이다.”[니파이전서 22:28] 저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안전히 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믿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와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으며,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속해 주셨고, 회개할 때 우리를 구원하고 죄를 사해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온 인류가 주님을 믿고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를 예배하며 주 우리 하나님을 아들의 이름으로 섬기어, 평화가 찾아오고 의로움이 만연하여 주님이 지상에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32

저는 세상 사랑들에게 회개하고 진리를 믿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그들의 삶을 비추며, 그들이 지닌 모든 선하고 참된 원리를 지키며, 여기에 오늘날 계시를 통해 주어진 빛과 지식을 더하라고 권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 속하여 복음 축복을 추수하라고 권합니다.

저는 교회 회원들에게 의의 일을 행하고, 계명을 지키며, 영을 구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생활에서 하나님 왕국의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 주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들의 구원을 이루라고 권합니다.[빌립보서 2:12 참조]33

학습 및 교수 제언

질문

  • 스미스 회장이 “경고의 음성을 높[이고자]” 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을 “조셉 필딩 스미스의 생애에서” 찾아본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어떻게 사랑의 표현이 되는가?

  • 여러분의 신앙의 중심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두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1편 참조)

  • 참된 신앙이 늘 행함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몇 가지 예를 보려면, 2편을 참조한다.) 행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보여 줄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 어떻게 회개는 “신앙의 발로”인가?(3편 참조)

  •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느낀 때를 조용히 생각해 본다.(4편 참조) 구주의 속죄에 관해 느끼는 고마움 중 여러분이 나누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슬픔과 죄에서 벗어나려는 소망 없이는” 회개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5편 참조) 5편 마지막에 나오는 두 문단은 죄로 슬퍼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는가?

  • 미루는 행위는 어떤 면에서 “영생[을] …… 훔치는 도둑”인가?(6편 참조) 회개를 미루는 것은 왜 위험한가?

  • 7편을 복습하면서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친절과 사랑을 담아 사람들을 경고할 수 있을까?

관련 성구

히브리서 11:1~6, 모사이야서 4:1~3, 앨마서 34:17, 이더서 12:4, 모로나이서 7:33~34, 교리와 성약 18:10~16, 신앙개조 제4조

교사를 위한 도움말

“행동해야 할 사람은 학생이다. 교사가 주목을 받는다거나, 주역이 된다든가, 모든 말을 한다든가, 또는 모든 활동을 한다면, 이는 교사가 반원의 학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에쉘 디 우드럽, 복음을 가르침[1962], 14쪽; 버지니아 에이치 피어스, “평범한 교실-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훌륭한 장소”,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12쪽)

  1. Answers to Gospel Questions, comp. Joseph Fielding Smith Jr., 5 vols. (1957–66), 1:84.

  2. “Faith and Works: The Clearing of a Seeming Conflict,” Improvement Era, Oct. 1924, 1151; 또한 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전3권.(1954~1956), 제2권, 276쪽 참조.

  3. In Conference Report, Oct. 1919, 88; italics in original.

  4. Joseph Fielding Smith Jr., in Take Heed to Yourselves! (1966), v–vi.

  5. Francis M. Gibbons, Joseph Fielding Smith: Gospel Scholar, Prophet of God (1992), viii.

  6. Spencer W. Kimball, quoted by Bruce R. McConkie in “Joseph Fielding Smith: Apostle, Prophet, Father in Israel,” Ensign, Aug. 1972, 28.

  7. In Joseph Fielding Smith Jr. and John J. Stewart, The Life of Joseph Fielding Smith (1972), 10.

  8. In Conference Report, Apr. 1970, 113.

  9. In Conference Report, Oct. 1921, 186; 또한 구원의 교리, 제2권, 267쪽 참조.

  10. “Redemption of Little Children,” Deseret News, Apr. 29, 1939, Church section, 3; 또한 구원의 교리, 제2권, 267~268쪽 참조.

  11. “Faith,” Deseret News, Mar. 16, 1935, Church section, 3, 7.

  12. In Conference Report, Apr. 1923, 139.

  13. “Faith and Works: The Clearing of a Seeming Conflict,” 1151; 또한 구원의 교리, 제2권, 275~276쪽 참조.

  14.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1945), 196.

  15. “The Pearl of Great Price,” Utah Genealogical and Historical Magazine, July 1930, 104; 또한 구원의 교리, 제2권, 44쪽 참조.

  16. In Conference Report, Oct. 1950, 13.

  17. In Conference Report, Apr. 1915, 120.

  18. In Conference Report, Oct. 1969, 109.

  19. “A Warning Cry for Repentance,” Deseret News, May 4, 1935, Church section, 6; 또한 구원의 교리, 제3권, 39쪽 참조.

  20.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196–97.

  21.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199.

  22. “Repentance and Baptism,” Deseret News, Mar. 30, 1935, Church section, 6.

  23. “My Dear Young Fellow Workers,” New Era, Jan. 1971, 5.

  24. “Relief Society Conference Minutes,” Relief Society Magazine, Aug. 1919, 473, 또한 구원의 교리, 제2권, 15~16쪽 참조.

  25. In Conference Report, Apr. 1969, 121, 123.

  26. “A Warning Cry for Repentance,” 6; 또한 구원의 교리, 제3권, 31쪽 참조.

  27. In Conference Report, Oct. 1966, 58.

  28. In Conference Report, Oct. 1932, 91–92; 또한 구원의 교리, 제3권, 28쪽 참조.

  29. In Conference Report, Apr. 1937, 59; 또한 구원의 교리, 제3권, 44쪽 참조.

  30. In Conference Report, Apr. 1915, 120.

  31. In Conference Report, Oct. 1960, 51.

  32. In Conference Report, Oct. 1919, 92.

  33. In Conference Report, Oct. 1970,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