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들의 가르침
세상적인 일과 영적인 일, ‘함께 손을 잡고’


제 22 장

세상적인 일과 영적인 일, “함께 손을 잡고”

가족을 강화하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세상적으로나 영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윌포드 우드럽의 생애에서

교회 초기에, 선지자와 사도들은 자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노력에는 영적인 일과 세상적인 일이 요구되었다. 기도, 경전 공부 및 복음을 나누는 일과 같은 일 이외에도, 성도들은 가정과 도시를 세우고, 공립 학교를 설립하고, 단단한 땅을 경작하고 그곳에 물을 대었으며, 솔트레이크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 산에서 화강암을 날라 왔다. 후기 성도 개척자들이 처음으로 솔트레이크 계곡에 들어온 지 10년이 지난 1857년에, 우드럽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나아가서 자신의 일을 하는 대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할 경우, 수로를 짓든, 성전을 짓든, 복음을 전하든, 땅을 경작하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든,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돕고 지원하시며,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에 도움을 주시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

우드럽 회장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그 원리를 자신의 삶에 실제로 적용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신권에서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했을 뿐 아니라,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일에도 부지런했다. 후기 성도 역사가인 앤드류 젠슨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근면은 그의 존재에서 너무나 두드러진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가 구십 세 때, 야채 밭에서 괭이질을 하다가 손자 가운데 한 명이 그보다 겨우 조금 더 일을 한 것을 보고 창피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내 생애에 손자 중에서 나보다 괭이질을 잘하는 아이는 이번이 처음이오.’” 2

우드럽 회장과 동시대에 살았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일을 좋아했습니다. 단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단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나, 자신은 물론 자신이 부양하는 사람들의 편리함과 편안함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일은 그의 부름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자신을 활용할 축복이요, 특권이요, 기회였습니다. … 땀을 흘리는 것은 기도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계명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가장 높은 차원에서 단순한 기독교인의 삶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및 도덕적 복지에 필요하다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신체적인 노동의 도덕적 우위를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일을 좋아했으며 일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3

윌포드 우드럽의 가르침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할 때, 우리는 수행해야 할 세상적인 의무도 갖고 있다.

우리의 회장님[브리검 영]은 우리에게 자주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으며, 그것들은 함께 손잡고 가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와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4

일부 사람들은 이 교회의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들이 세상적인 문제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적인 문제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5

우리는 지상에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수행해야 할 세상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육신을 갖고 있으며, 세상적인 음식을 먹고, 세상적인 집을 짓고, 세상적인 가축과 세상적인 밀을 키우고, 세상적인 잡초와, 세상적인 원수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자연적으로 세상적이고 힘든 많은 의무를 수행하게 하며, 그것에는 물론, 우리의 종교도 포함됩니다. 6

우리는 나무 판자 위에 앉아서 영원한 행복의 노래나 부르며 시온을 건설할 수는 없습니다. 땅을 갈고, 산에서 돌을 골라 내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성전들을 지어야 합니다. 이 세상적인 사업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죽음으로써 세상을 구속하게 하시거나, 구세주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나아가서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요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7

세상적인 문제에서,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종들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업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문제보다, 주님께서 그들의 세상적인 일과 재물을 통제하고 관리하시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에서 점점 더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

이에 대해 뭔가 생소한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입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영원한 것 사이에는 장막이 있으며, 만일 그 장막이 걷힌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있는 영원한 것들을 사실 그대로 보게 되고, 아무도 금과 은이나 이 세상 재물에 대해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주님께서 인간을 다스리게끔 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택의지를 갖고 있으며, 시험의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영원한 것, 우리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영의 세계 사이에는 장막이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자녀들이 처해 있는 이곳의 상황에서 그분의 율법을 지킬 것인지의 여부를 증명하게 하는 주 하나님의 현명하고 적절한 목적입니다. 후기 성도들은 이것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온 마음으로, 조셉 스미스와 브리검 영과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우리의 영원한 관심사에 대해 우리를 인도하고 감독하게 해야 하며, 그들의 권세로 우리에게 인봉된 축복이 장막 저편까지 계속되며 죽음 후에도 효력을 미치고, 영원한 세상에서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예수와 사도들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새롭고도 영원한 성약의 모든 축복과 더불어, 왕국과 왕위와 주권과 권능이 그들에게 인봉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원한 축복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이 축복들은 많든 적든 우리의 세상적인 부만큼 가치가 있습니까? 구원과 영생은 마차를 끄는 한 쌍의 소나 말, 집과 백 헥타르의 땅, 혹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지니고 있는 어떤 것만큼 가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상적인 모든 일에서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제하시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사람은 죽을 때, 소나 말, 혹은 집이나 땅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육신의 안식처인 무덤으로 갑니다.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의 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임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22 참조] 우리는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도 곧 우리보다 앞서간 세대를 따라가겠지만, 언제 우리의 차례가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저는 모두 기꺼이 세상적인 문제에 있어서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복음대로 생활하는 것에는 정직하게 일하는 것과 더불어 영적이고 세상적인 교육이 포함된다.

제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꽤 여러 번 들은 격언이 있는데, 그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리는 힘이 있으며 승리한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세상적으로 적용되든 혹은 영적으로 적용되든, 국가나 가족 또는 개인에게 적용되든, 세상이나 하나님의 왕국에 적용되든, 진리가 되는 모든 상황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9

후일에 하나님의 시온을 건설하는 일에는, 참으로, 세상적이든 영적이든 우리가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일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합법적인 일체의 주제로서 우리의 종교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수용하고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모든 진리, 인간의 합법적인 모든 부름과 직책이 포함됩니다. 10

우리는 자녀들에게 소홀해서는 안 되며, 그들은 영적이고 세상적인 면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부모라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11

소위 학문을 좋아하는 경향이 증가하더라도, 육신의 노동이 소홀히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정신과 육신의 교육은 함께 손잡고 가야 합니다. 숙련된 두뇌는 숙련된 손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노동은 우리 가운데서 고상하게 취급되어야 하며 늘 존중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너무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약간의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기계나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을 우리 가운데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은 단순히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되는 것에 긍지를 느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자신의 근면과 기술로써 스스로를 부양하고, 이렇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부양하도록 돕고, 정직한 노력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신 가장 영예로운 방법의 하나라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시온의 젊은이들이 적절하게 교육 받는 것에 관한 주제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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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er and students

“시온의 젊은이들이 적절하게 교육 받는 것에 관한 주제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재정적인 노력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십일조의 법에 순종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후하게 사용하고, 부채를 청산해야 한다.

우리의 세상적인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일을 해서 자신을 부양해야 합니다. 13

부와 재물에 관해, 저는 그것들이 저를 비난한다 해도, 그것들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주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얻을 수 있다면, 가족을 입히고, 신기고, 먹이고, 그들을 편안하게 해줄 만큼만 갖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재물을 소유하고 멸망하기보다는 가난 가운데서도 저와 가족이 모두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재물은 우리가 자신을 망치지 않도록 사용하지 않는 한 위험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위해 사용하지 못할 경우라면, 그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습니다. 14

일부 사람들은 십일조의 법을 우리에게 부과된 일종의 세금이나 부담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의 십일조, 우리의 노력,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 우리가 내는 십일조, 노력, 우리가 하는 일은 전능하신 분의 승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 이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합시다.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고, 우리를 승영에 이르게 하고 선을 행하도록 주어진 모든 율법에 순종할 때, 그것은 우리 개인의 유익과 우리 자녀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그분의 자녀들의 충실함을 기쁘게 여기시고,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을 걷는 그들을 보는 데서 기쁨을 얻는 것 이외에, 주님께 특별한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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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ple paying tithing

십일조는“우리가 선을 행하고 승영에 이르게 하기 위해 주어진 율법”이다.

우리는 오직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 …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후하게 헌금하는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만족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경험한 일이며,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헌금하는 것에 대해, 그와 관련하여 모든 귀중한 약속들이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부주의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은 이 일에 정확하게 참여하는 확실한 습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 의무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의무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순종을 통해 받은 많은 큰 기쁨과 보상에 대해 간증할 수 있습니다.

후하게 바치라는 이 율법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에 따르는 악한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정하신 안전 장치의 하나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부는 그분의 것이지만, 고대의 니파이인들처럼 되지 않도록 교만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교성 38:39 참조] 우리는 부가 그들에게 가져온 멸망을 압니다. 우리는 재물이 우리에게 미치는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주의를 다 기울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을 견뎌 내고 겸손해질 수 있으며, 주님 가까이에서 생활하지만, 부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교만해지고, 탐욕스러워지며,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그 주민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꾸준히 기억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자들을 돕고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하는 일을 돕기 위해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재물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잘 통제하고, 사탄에게 자신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도록 힘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16

우리는 후기 성도들이 부채를 지고 종종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부채을 지는 나쁜 습관을 기르고, 마침내 집과 다른 재산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해 경고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사용 한도액까지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시대의 유행이라는 것을 압니다. … 이것은 커다란 악이며 한 백성과 개인으로서, 신중하게 피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구입하는 것은 바로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자원의 한계 내에서 구입해야 합니다. 투기와 요행을 바라는 경향은 억제되어야 합니다. … 적절한 소득에 만족하고, 한 번에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적인 소망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잠언 28:20 참조]는 현자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절약하는 습관과 빚지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에 빠지지 않게 합시다. 17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해야 한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위해 재물을 얻으려는 일반적인 소망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도 하지 않고 가서 재물을 얻는다면 여러분이나 제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 자신의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사람이 장막 저편으로 갈 때 무엇과 자기 목숨을 바꾸겠습니까? [마가복음 8:36~37 참조]

저는 지상의 주민들이 미래의 상태에 대해 일반적으로 거의 관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 것을 놀랍게 여깁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가 장막 저편 영원한 세상에서 사시는 것처럼 살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자신이 육신을 입고 있는 이 세상에서 몇 년 동안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유행이 여러분과 제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금이나 은, 혹은 이 세상의 재물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일을 중단하고 세상 재물을 좇아가는 일에 열중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마치 소유하고 있는 돈에 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후기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올 때 얼마나 갖고 있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갖고 왔으며 그것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 저는 우리 중 누구도 말 등이나 마차에서 태어나거나, 주식과 가축과 집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욥처럼 빈손으로 태어났으며, 빈손으로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욥기 1:20~21 참조] 그렇다면 이 세상의 물질과 관련하여 그것들은 우리에게 얼마만한 가치가 있기에, 그것을 위해 구원을 포기하도록 권유합니까? 차라리 저는 그렇게 하기보다 평생토록 가난하기를 바라고, 재물이 저를 저주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영광을 제게서 앗아간다면, 저는 하나님께 제가 결코 부를 소유하지 않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부를 그분의 손안에 갖고 계십니다. 금과 은, 가축과 땅은 모두 그분의 것이며,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산꼭대기에 계실 때, 악마인 루시퍼는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 주고, 그분이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마태복음 4:8~9 참조] 그러나 여러분은 그 불쌍한 악마가 온 세상에서 한 치의 땅도 소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육신, 즉 장막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땅은 주님의 발등상이며, 우리가 그 중에 다만 얼마라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우리가 수십 억의 돈을 갖고 있더라도 마치 한 푼도 없는 것처럼 우리 종교에 충실해야 합니다. 영생은 우리의 현재의 상태이자 이후에 되어야 할 상태이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상태와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의 첫번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

… 저는 부를 얻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재물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과 은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짓기 원하면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옳은 일입니다. 저는 사람이 부를 얻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육신의 욕망과, 인생의 교만과 세상의 유행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왕국과, 장자의 명분을 팔고, 복음을 팔고, 영생을 잃게 되는 것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참조] 형제 자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온 생애 동안 그것을 시험해 볼 수 있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길과 모든 원리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성도로서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 의를 구하지 않고는 어떤 형태로든 번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는 축복과, 선함과, 승영, 은사, 은혜, 소망 혹은 선한 사람이 원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유익한 것과, 현세와 영원을 위해 유익한 어떤 것이라도 주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는 것과 동떨어진 행복을 구하려고 애썼습니다만, … 그들은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우리가 그것을 구한다면 우리도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9

우리의 목표는 높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사 중 가장 큰 은사인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해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예, 영광과 재물은 우리 아버지의 집을 포함하여, 모든 선지자와 사도와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과 어린양의 면전에서 받는 유산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자는 곧 사라져버리지만, 후자는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20

학습과 가르침을 위한 제언

본 장을 공부하거나 가르칠 준비를 할 때 다음 제언을 고려한다. 도움이 더 필요할 경우, v~ix쪽을 참조한다.

  • 이 장에서 제시된 원리들에 따르기 위해 윌포드 우드럽 장로는 무엇을 했는가? (225, 227쪽 참조)

  • 우리가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227~228쪽 참조; 또한 교성 29:34~35 참조)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 진리를 적용할 수 있는가? 교회 봉사에서는 어떠한가?

  • 우드럽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일에서 주님의 권고에 따르지 않는다고 말씀했다. 이것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228~229쪽 참조) 현재의 교회 회장은 세상적인 문제에 대해 어떤 권고를 주셨는가?

  • 230쪽에 있는 두 번째 단락을 복습한다. 육체 노동에는 어떤 유익한 것들이 있는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 우드럽 회장은 돈에 대해 어떤 경고를 했는가? (231~235쪽 참조) 그는 부채와 외상에 대해 어떤 권고를 주었는가? 우리는 올바른 안목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어떤 면에서 십일조와 헌물은 “우리 개인과 자녀들의 유익”이 되는가? (231쪽 참조)

  • 마태복음 6장 33절에 있는 구세주의 가르침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또한 233~235쪽 참조)

  • 장 전체를 훑어보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원리들을 찾아본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 원리들을 가르치기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관련 성구: 말라기 3:8~11; 마태복음 6:19~21; 야고보서 2:14~26; 야곱서 2:12~19; 교성 42:42; 58:26~28

  1. Deseret News, 1857년 3월 4일, 411쪽.

  2. Latter-day Saint Biographical Encyclopedia, 4권 (1901~1936년), 1:26.

  3. J. M. Tanner, “Character Sketch”, in Matthias F. Cowley, Wilford Woodruff: History of His Life and Labors as Recorded in His Daily Journals (1964년), 644~645쪽.

  4. Deseret News, 1862년 7월 30일, 33쪽.

  5. Brian H. Stuy, comp., Collected Discourses Delivered by President Wilford Woodruff, His Two Counselors, the Twelve Apostles, and Others, 5권 (1987~1992년), 4:126.

  6. Deseret News, 1872년 5월 22일, 216쪽.

  7.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sel. G. Homer Durham (1946년), 164~165쪽.

  8. Deseret News: Semi-Weekly, 1874년 6월 23일, 1쪽.

  9. Deseret News: Semi-Weekly, 1884년 1월 22일, 1쪽.

  10. Deseret News, 1872년 5월 22일, 216쪽.

  11.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267쪽.

  12. “An Epistle to the Members of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Millennial Star, 1887년 11월 14일, 733쪽.

  13. Collected Discourses, 4:127.

  14. The Discourses of Wilford Woodruff, 173~174쪽.

  15. Deseret News, 1857년 2월 4일, 379쪽.

  16. Millennial Star, 1887년 11월 14일, 727쪽.

  17. Millennial Star, 1887년 11월 14일, 728~729쪽.

  18. Deseret News: Semi-Weekly, 1876년 2월 29일, 1쪽.

  19. Deseret News, 1857년 3월 4일, 410쪽.

  20. “Epistle”, Contributor, 1887년 4월, 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