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오래된 가족 앨범: 가족에 얽힌 이야기의 힘
2017년 4월호


오래된 가족 앨범: 가족에 얽힌 이야기의 힘

글쓴이는 미국 뉴욕 주에 산다.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은 내 안에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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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행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어느 여름날 아침,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날이 밝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증조할아버지는 푸른 계곡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루마니아의 어느 언덕에 사셨다. 집 밖으로 나가 아침 이슬에 젖은 풀숲에 앉아 할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그 생각이 또 떠오른 것이다. 많이 공부한 만큼 호기심도 많고 맘씨도 좋은 증조할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아하고 존경했다.

할아버지가 살던 마을은 오래된 올트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루마니아 마을 이미지의 원형과도 같은 곳이었다.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풍경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그 마을은 언제나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유물과 유산을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해 줄 책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동이 트자, 할아버지는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불러 놓으시고는 그동안 당신의 장례식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며 진짜 장례식처럼 모든 것을 준비해서 예행연습을 해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날짜를 정하고 관을 사고 목사와 전문 문상객을 고용했으며, 그리스 정교회의 전통에 맞추어 장례식에 필요한 다른 물품들을 준비하셨다. 예행연습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마을 한복판에 장례식 추도 만찬에 쓰일 식탁이 차려졌고 가족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목사가 도착했고, 할아버지는 바깥이 잘 내다보이도록 베개의 위치를 바꿔 놓은 관에 누워 계셨다. 그렇게 장례 행렬이 시작되었다. 장례식이 끝나자 마을 사람 모두가 만찬에 초대되었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소원대로 본인의 장례식에서 춤을 추셨다. 할아버지는 그 후로 20년을 더 사셨고 그러는 동안 종종 아직도 관이 몸에 잘 맞는지를 확인하곤 하셨다.

단순히 이름과 날짜가 아니다

나는 증조할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이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참 좋았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매일같이 우리 형제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조상들이 어디서 오셨고, 성품은 어떠하셨으며, 그분들이 어떤 가치관과 꿈, 소망으로 사셨는지 등을 들려주셨다. 매주 일요일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래된 가족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세대를 오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그러면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올올이 엮여 세월의 흐름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수 놓인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분들은 그저 뒷면에 이름과 날짜가 적힌 오래된 사진 속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우리 가족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형제와 자매였다. 우리에게 그분들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고난과 실의로 괴로워하며, 성공과 실패를 겪었던 실존 인물들이었다. 비록 그분들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는 살아 있고, 그분들이 남기신 유산은 여전히 빛나며, 그분들의 얼굴은 사랑으로 여섯 세대의 마음을 엮어 주는 오래된 가족 앨범 속에서 미소 짓고 있다.

힘겨운 시기에 얻은 힘

내가 열아홉 살 무렵, 부모님을 비롯한 내 직계 가족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나는 물려받은 재산 중 많은 부분을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터였다. 그러나 시간과 자연재해, 심지어 죽음조차 무너뜨리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그분들이 부지런했던 덕분에 우리의 마음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는 어떤 필멸의 고난도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강해졌으며, 힘겨운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나는 얼마나 슬펐던지 과연 내가 그분들 없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휘장 너머에 계신 조상들의 영향력을 느꼈고, 그 덕에 나는 죽음 너머의 삶과 성전 의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간증이 생겼다.

비록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나는 오래된 가족 앨범을 꺼내 들 때마다 그분들의 눈에서 나를 마주한다. 나보다 앞서 세상에 오신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분들의 경험과 지혜는 내 됨됨이의 밑거름이 되었고 내 삶을 인도해 주기도 했다.

때때로 나는 휘장 너머에 있는 내 가족들과, 그들이 내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치른 희생을 생각한다. 또한, 언젠가 다시 가족이 함께할 길을 열어 주는 성전 의식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생각한다. 그분은 우리가 다시 살 수 있게 하시려 그 값을 치르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