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어떻게 하면 좀 더 구주와 같이 가르칠 수 있을까?
2018년 2월호


구주께서 보여 주신 방법으로 가르침

제가 좀 더 구주처럼 가르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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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시는 예수님

그림: 저스틴 쿤즈

제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던 어느 날, 제 보조 하나가 저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회장님, 제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제 첫 번째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지금도 자넨 잘 하고 있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사코 묻길래,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제 생각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이 단순한 경험을 다른 선교사들과 나누었습니다. 곧이어 다른 장로와 자매들도 접견을 하러 와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 제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한 선교사의 이 단순한 질문은 선교부 전체에 더 나은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열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지도자들께 “제가 좀 더 구주처럼 가르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단순하고 진지하게 질문한다면, 그들도 건설적인 권고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손을 잡고 너를 인도할 것이요, 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네게 주리라.”(교리와 성약 112:10)

온 마음을 다해 매달림

영국의 소설가 제이 비 프리스틀리는 재능이 있던 또래들은 아무도 뛰어난 성공을 거두지 못한 터에 어떻게 그토록 유명한 작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프리스틀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들과 저는 재능 면에서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 그 친구들은 … [글을 쓴다]는 매혹적인 일을 재미 삼아 했던 데 반해, 저는 온 마음을 다해 매달렸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1

우리는 교사로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교사로서 현재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역량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구주처럼 가르치고자 온 마음을 다해 매달리는가?” 우리는 과연 교만한 마음을 기꺼이 모두 버리고, 가르침을 기다리며, 나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구하고 있습니까?

겸손이 열쇠입니다

이 교회에는 훌륭한 교사가 많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랜 경험을 쌓았고 얼마나 많은 학위가 있으며 반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와 관계없이, 겸손한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교사이신 주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교사의 자질을 규정하는 것은 아마도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입니다. 겸손은 영을 불러들이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소망을 키워 주는 자질입니다.

이따금 저는 자기가 속한 와드나 지부의 몇몇 교사들이 자신은 숙련되고 뛰어난 교사이므로 더 많은 가르침을 받거나 교사 평의회 모임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탓에 실망스러워하는 주일학교 회장님들을 만나곤 합니다. 저는 아직 어떤 면에서도 향상할 여지가 없는 교사는 본 적이 없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아무리 숙련된 교사일지라도 겸손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교사 평의회 모임에 참석한다면, 어떻게 하면 자신이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신성한 통찰력과 느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는 교사 평의회 모임에 수십 차례 참석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통찰력을 얻거나, 교수법을 더욱 가다듬고 완성해야겠다는 소망과 성품을 향상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교수법을 향상할 필요성

간혹 어떤 이들은 교수법을 단순히 기계적 또는 세속적인 도구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기술을 향상하면, 영은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도 개별 학습자의 필요 사항에 가장 알맞은 것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자를 때 주머니칼을 쓰는 것과 전기톱을 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생산적일까요?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사람의 힘과 특성은 같지만, 더 효과적인 도구를 손에 든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생산적입니다. 교수법은 영의 손에 들리면 신성한 도구가 됩니다.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교수법의 수준과 관계없이, 훈련과 실습, 역할극, 학습, 관찰은 영을 불러들이는 교수법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주님처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수법 중에는 교사 평의회 모임에서 계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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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서 서 있는 청녀

주님은 우리의 틀을 잡아 주시고 형태를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구주처럼 가르칠 수 없으며, 그런 일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역량 밖이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저 어부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마태는 자신이 멸시받는 세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주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강력한 지도자요 복음 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틀과 형태를 만드시는 주님의 능력은 많은 사람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여기는 다비드상을 조각하던 당시 미켈란젤로의 경험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과업을 맡기 전에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와 안토니오 로셀리노라는 두 조각가도 조각상을 제작하도록 의뢰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똑같은 문제와 맞닥뜨렸습니다. 이 907kg짜리 대리석 기둥은 높이와 너비는 적당했지만 심한 결함이 있었습니다. 디 두치오와 로셀리노는 이 기둥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보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기둥에 흠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2 마침내 두 사람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미켈란젤로도 똑같은 결함을 보았지만, 그는 그 너머에 있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날 구경꾼들이 첫눈에 경외심을 느끼는, 살아 숨 쉬듯 장엄한 다비드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충만함이 “연약한 자들과 단순한 자들에 의하여 세상 끝까지 … 선포되게”(교리와 성약 1:23)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함과 약점도 보시지만, 그 이상도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연약함을 극복하도록 도우실 뿐 아니라 그런 연약한 것들을 강한 것으로 바꾸어 줄 수도 있으십니다.(이더서 12:26~27 참조) 그분은 우리가 좀 더 구주처럼 가르치기 위해 교수법과 성품을 가다듬어 완벽해지도록 도와줄 수 있으십니다.

좀 더 구주와 같이 가르칠 수 있는 방법

다음은 좀 더 구주처럼 가르치기 위해 우리가 모두 노력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 요소입니다.

  • 영이 우리의 가르침에 생명과 호흡, 실체를 가져다준다는 점을 알고 영으로 가르친다.(교리와 성약 43:15 참조)

  • 삶을 변화시키는 본질적인 힘은 경전과 살아 있는 선지자가 가르치는 교리에 있음을 인식하고 교리에 초점을 맞춘다.(앨마서 31:5 참조)

  • 이상적인 교사란 이상적인 학습자임을 알고 열성적인 학습자가 된다.(교리와 성약 88:118 참조)

  • 가르치는 부름을 받을 때마다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계시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고 계시를 구한다.(교리와 성약 42:61 참조)

  • 각 반원의 이름을 익히고, 그들을 위해 개별적으로 기도하며, 그들에게 (특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고,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반원에게 의미 있는 방법으로 다가가며 사랑을 보인다.(모로나이서 7:47~48 참조)

개인적인 평가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린도후서 13:5) 교사들을 위해 이 권고를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구주께서 보여 주신 방법으로 가르치는가, 아니면 너희의 방법으로 가르치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1년의 시작은 이러한 부분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본 기사에 수록된 개인 평가 설문에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리스도와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집중해야 할 것과,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성품과 기술을 습득하고 계발할 방법을 알도록 영이 여러분을 도와줄 것입니다.

  1. J. B. Priestley, Rain Upon Godshill (1939), 176.

  2. “Michelangelo’s David,” accademia.org/explore-museum/artworks/michelangelos-david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