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16단원: 성도들이 미주리 북부에 집합하다


“16단원: 성도들이 미주리 북부에 집합하다”, 『후기 성도 역사: 1815~1846년 교사 자료』(2018)

“16단원”, 『후기 성도 역사: 1815~1846년 교사 자료』

16단원

성도들이 미주리 북부에 집합하다

소개 및 연대표

1838년 1월 12일, 주님께서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에게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떠나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이주할 것을 지시하셨다. 파웨스트에 도착한 선지자는 얼마 전에 열린 평의회에서 내린 결정을 승인했는데, 이는 데이비드 휘트머, 존 휘트머, 윌리엄 더블유 펠프스로 구성된 미주리주 스테이크 회장단을 재조직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 세 사람은 교회 지도자에 대한 불순종과 반항으로 이후에 파문되었다. 당시 교회 회장 보조로 봉사하던 올리버 카우드리 또한 불순종과 반항으로 후에 파문되었다. 1838년 봄과 여름에 걸쳐 조셉 스미스는 교회 명칭에 관한 중요한 계시를 받았으며, 아담-온다이-아만을 포함해 성도들의 집합 장소에 대해서도 중요한 계시를 받았다.(교리와 성약 115~116편 참조)

1838년 1월 12일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이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떠나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이주하다.

1838년 3월 14일조셉 스미스가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도착하다.

1838년 4월 12일올리버 카우드리가 불순종과 반항으로 파문당하다.

1838년 5월 19일조셉 스미스가 후기 성도 정착지로 한 부지를 선택하다. 이곳은 후에 아담-온다이-아만이라고 밝혀지다.(교리와 성약 116편참조)

학생 읽기 과제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1권, 진리의 표준, 1815~1846년』(2018), 제26~28장

교수 제언

조셉 스미스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급히 떠나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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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틀랜드 성전

교재에 수록된 커틀랜드 성전 사진을 보여 준다. 1831년 9월에 주님은 조셉 스미스에게 주신 계시에서 “오 년간 커틀랜드 땅에 견고한 거점을 보유하고자” 하신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64:21) 그 계시가 주어진 지 약 4년 반이 지난 1836년 1월부터 4월까지 커틀랜드의 성도들은 놀라운 영적 경험을 했다. 여기에는 1836년 3월에 있었던 커틀랜드 성전 헌납식도 포함된다.

  • 1836년 후반기와 1837년에 걸쳐 커틀랜드 성도들은 어떤 변화에 직면했는가?(커틀랜드 성도들은 교회 회원이 아닌 지역 주민들과 교회 내부의 반대자들이 가하는 반대에 부딪혔고, 이는 점점 더 심해졌다.)

한 학생에게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이 전한 다음 말과 조셉 스미스 역사에 기록된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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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검 영

“1837년 12월 22일 아침, 나는 폭도들의 증오와 변절자들의 적개심 때문에 결국 커틀랜드를 떠났다. 나는 조셉 스미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그들이 말한 것과 달리 범법을 저지르거나 타락하지 않았음을 성신의 권능을 통해 알고 있다고 공언했다. 공개적인 자리이든 사적인 자리이든 나는 그렇게 공언했고, 이러한 이유로 변절자들은 나를 파멸시키겠다고 협박했던 것이다.“(Brigham Young, “History of Brigham Young,” Millennial Star, Aug. 1863, 518)

“배교자들이 우세를 떨쳐 비통함이 가득 드리운 커틀랜드의 교회에 새해가 밝아왔다. 그들이 계속해서 맹위를 떨치며 상황이 악화된 탓에 [시드니] 리그돈 장로와 나는 결국 그 위험천만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B-1, p. 780, josephsmithpapers.org)

  • 이러한 내용은 1836년부터 1837년 말에 이르기까지 커틀랜드 상황의 변화 정도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이 커틀랜드를 떠난 것은 1838년 1월 12일에 주님께서 주신 계시에서 영감을 받은 결정이었음을 설명한다.(이 계시는 교리와 성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한 학생에게 다음에 나오는 그 계시의 일부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회의 회장단은 실행할 수 있게 되고 방편이 마련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가족을 데리고 방법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로 속히 서쪽으로 이동할지어다. 내가 그들과 함께할 것이니 그들의 마음이 평안할지어다[.] …

너희의 충실한 친구들 역시 가족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서 시온에 집합하게 하라.”(in “Journal, March–September 1838,” 53, josephsmithpapers.org)

  • 주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주님의 권고에 귀 기울이는 것에 관하여 우리는 어떠한 원리를 배울 수 있는가?(학생들의 대답을 들은 후, 다음 원리를 칠판에 적는다. 우리가 주님의 권고에 귀 기울일 때,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다.)

교재에 수록된 “초기 교회사에서 중요한 장소” 지도를 보여 주고, 주님께서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에게 커틀랜드를 떠나라는 계시를 주셨으며, 이들은 그 명에 순종하여 이 계시를 받은 날 밤에 커틀랜드를 떠났다고 설명한다. 조셉과 시드니는 밤새 말을 몬 뒤 길을 멈추고 가족이 합류할 때까지 기다렸다. 가족이 합류한 뒤에 그들은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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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서 중요한 장소들이 표시된 지도

학생 한 명에게 조셉 스미스 역사에 기록된 다음 내용을 읽어 달라고 한다. 여기에는 선지자와 그의 가족이 파웨스트로 이동하며 겪었던 일들이 묘사되어 있다.

“날씨는 극도로 추웠으며, 우리는 뒤쫓는 추격자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때로 마차에 몸을 숨겨야만 했다. 추격자들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 권총으로 무장하고는 커틀랜드에서부터 3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뒤쫓아왔다. 우리는 이동하는 중에 그들과 자주 마주쳤으며, 그들은 두 번이나 우리와 같은 집에 머무르기도 했다. 한 번은 밤새 그들과 같은 집에서 묵었던 적도 있다. 그때 벽 너머로 우리를 욕하고 저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우리를 잡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적인 말을 퍼부었다. 늦은 저녁, 그들은 우리 방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시험삼아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으나 우리가 자신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한 번은 거리에서 서로 스쳐 지나가며 서로를 응시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B-1, p. 780, josephsmithpapers.org)

  • 이 경험은 제일회장단과 그 가족이 이동하는 동안 그들과 함께해 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어떻게 잘 보여 주는가?

  • 주님의 계명에 순종할 때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언제 그런 경험을 해 보았는가?

조셉 스미스가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도착해서 교회의 질서를 세우다

한 학생에게 1838년 3월에 조셉 스미스가 가족과 함께 파웨스트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다음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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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미스

“파웨스트시를 13킬로미터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형제들을 만났다. … 그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하며 그들의 공동체 안으로 우리를 받아들여 주었다. 파웨스트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자신들의 상속의 땅으로 온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는 성도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Letter to the Presidency in Kirtland, 29 March 1838,” in “Journal, March–September 1838,” 23–24, josephsmithpapers.org)

  • 여러분이 만약 조셉 스미스의 상황이었다면 커틀랜드에서 겪었던 적대심을 뒤로하고 파웨스트에 도착했을 때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들었겠는가?

파웨스트에서 조셉 스미스는 더 따스한 태도로 그를 대하는 교회 회원들과 함께 있었지만, 아직 교회에는 그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안들이 남아 있었다고 설명한다.

  • 『성도들 제1권』 제26장에서 여러분이 읽은 내용에 따르면, 올리버 카우드리와 존 휘트머, 윌리엄 더블유 펠프스는 교회 내에서 자신들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가?(교회에서 지도자로 봉사하고 있던 이들은 모두 주님께 헌납했던 미주리주 땅을 사익을 위해 매각했다. 또한 그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을 캐내며 반항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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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카우드리

교재에 수록된 올리버 카우드리의 초상화를 보여 준다. 학생 한 명에게 교리와 성약 23편 1절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반원들에게 함께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1830년에 주님께서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하신 경고를 찾아보라고 한다. 이 구절을 읽기에 앞서, 이 경고는 교회 지도자들이 올리버 카우드리의 지위를 심의하기 8년 전에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학생들에게 찾은 것을 발표해 달라고 한다.

  • 1절에서 우리는 교만이 초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원리를 배울 수 있는가?(학생들의 답을 들은 후, 다음 원리를 칠판에 적는다. 교만에 굴하면 유혹에 들게 될 것이다.)

한 학생에게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이 전한 다음 말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반원들에게 벤슨 회장이 교만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는지 잘 들어 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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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태프트 벤슨

“우리는 대체로 교만을 자기 중심, 자만, 자랑, 거만함, 또는 오만함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죄의 요소이지만, 중심 또는 핵심이 여전히 빠져 있습니다.

교만의 핵심적인 양상은 적대감,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적대감이란 ‘증오의 감정, 적개심 또는 반목‘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힘으로 사탄은 우리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교만은 근본적으로 경쟁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우리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뜻대로’ 하려 들게 됩니다. …

하나님의 뜻보다 우리의 뜻에 더 치중하면 소망, 욕망,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앨마서 38:12; 제3니파이 12:30 참조)

교만한 사람은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힐라맨서 12:6참조)“(『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에즈라 태프트 벤슨』[2014], 232쪽)

  • 이 내용은 우리가 교리와 성약 23편 1절에서 찾은 원리를 더 잘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다음 질문을 칠판에 적는다.

올리버 카우드리가 교만 때문에 유혹에 빠지게 되었음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교만이 사람들을 유혹에 들게 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학생들을 두세 그룹으로 나눈 뒤 『성도들 제1권』 26장을 펴게 한다. 그룹별로 305쪽 “4월 12일, 에드워드 파트리지는 …”으로 시작하는 단락부터 같은 쪽 마지막에 있는 ”올리버는 그런 원리를 외면한 채 …”로 시작하는 단락까지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어 보게 한다. 학생들에게 그룹별로 칠판에 적힌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야기해 보게 한다.

학생들에게 칠판에 적힌 질문들에 관하여 의견을 나눌 시간을 충분히 준 후, 반원 한 명에게 윌포드 우드럽(1807~1898) 회장이 전한 말과 그 다음에 나오는 문단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올리버 카우드리가 교회를 떠난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들어 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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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포드 우드럽

“제가 올리버 카우드리를 보았을 때 그는 온 땅을 뒤흔들 권능을 지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영의 영향력으로 간증을 할 때 그보다 더 강력한 간증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왕국을 떠난 순간, 그 순간, 그의 권능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윌포드 우드럽[2004], 105쪽)

올리버 카우드리는 교회를 떠난 지 10년도 더 지난 1848년 10월 21일에 아이오와주 카운실블러프스에서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그날 열린 대회에서 올리버는 신권의 회복과 권세, 그리고 몰몬경의 참됨에 대한 진심 어린 간증을 전했다. 그는 또한 카운실블러프스에 머무르는 동안 조지 에이 스미스와 올슨 하이드에게 “조셉 스미스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충실하게 그의 사명을 완수했다”라고 간증했다.(George A. Smith, “Letters to the Editor,” Millennial Star, Jan. 1849, 14) 올리버 카우드리는 감리 역원들에게 교회에 다시 들어오고 싶다는 뜻을 겸손하게 전한 뒤, 아이오와주 카운실블러프스에서 재침례를 받았다.

  • 올리버 카우드리는 주님의 교회를 떠나기로 선택함으로써 어떤 축복들을 잃었는가?

  • 궁극적으로 올리버 카우드리는 자신의 교만을 회개했음을 어떤 방법으로 나타내 보였는가?

학생들에게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에 있을지도 모를 교만을 회개하도록 격려한다.

주님께서 아담-온다이-아만의 위치를 계시해 주시다, 성도들이 미주리주 주민들과 더 많은 갈등을 겪다

한 학생에게 다음 문단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1838년 4월, 선지자는 교리와 성약 115편의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에서 주님께서는 교회의 공식 명칭을 지정해 주셨다. 또한 그분은 성도들에게 파웨스트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하시고, 주변 지역에 더 많은 스테이크를 세우라고 지시하셨다. 1838년 5월 18일,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은 미주리주에 성도들이 정착할 수 있는 다른 지역들을 찾기 위해 파웨스트에서 북쪽으로 떠났다. 다음 날, 그들은 라이먼 와이트의 집에 도착했다. 라이먼은 스프링힐이라는 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선지자는 이 지역을 방문하는 동안 교리와 성약 116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학생 한 명에게 교리와 성약 116편 1절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반원들에게 주님께서 이 땅에 관해 무엇을 계시해 주셨는지 들어 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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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온다이-아만

교재에 수록된 사진을 보여 주며, 이곳이 아담-온다이-아만, 즉 “아담이 거하던 땅“(교리와 성약 117:8)이라고 설명한다. 아담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는 이곳에 의로운 후손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에게 축복을 주었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있을 때 “주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아담은 “마지막 세대에 이르기까지 자기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을 무엇이든지 다 예언”했다.(교리와 성약 107:54, 56)

  • 만약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아담-온다이-아만 땅에 대한 계시를 받을 당시 그곳에 있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 것 같은가?

  • 교리와 성약 116편 1절에서, 아담-온다이-아만은 “아담이 자기 백성을 방문하러 올 곳”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아담과 모든 경륜의 시대 성도들을 포함한 그의 의로운 후손들이 구주를 뵙기 위해 아담-온다이-아만에 모일 것이다.[다니엘 7:9~10, 13~14; 마태복음 26:29; 교리와 성약 27:5~18; 107:53~57 참조])

미주리 북부에 있는 성도들은 정착지가 늘어나고 선지자가 여러 계시를 받는 등 축복을 받기도 했지만, 미주리주 주민들과 그들 사이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다.

  • 『성도들 제1권』 27~28장에서 읽은 내용에 따르면, 1838년 여름부터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교회 회원들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 어떤 충돌들이 갈등일어났는가?(6월에 시드니 리그돈은 배교한 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7월에 시드니는 교회 회원들에게 적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경고했다. 8월, 미주리주 갤러틴에서 투표하려던 교회 회원들이 공격을 받고 싸움이 벌어졌다. 10월, 폭도들이 미주리주 디윗에 사는 성도들에게 집을 버리고 떠나도록 강요했다.)

학생 한 명에게 다음 문단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조셉 스미스는 불과 2년 전에 크나큰 희생을 치르며 완공한 성전이 있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공동체를 교회의 반대자들과 그 외 적대자들이 약화시키고 결국은 무너뜨렸다고 믿었다. 1838년 여름에 이르자 교회 지도자들은 미주리에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에 이와 같은 위협이 커지는 것을 목격했다.

파웨스트에 있는 후기 성도 정착지에서는 일부 지도자와 회원들이 단 단원으로 알려진 무장 단체를 조직했다. 이 단체의 목적은 미주리 주민들은 물론 배교한, 혹은 파문된 후기 성도들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려는 데 있었다. 역사가들은 조셉 스미스가 단 단원들을 승인하기는 했으나 아마 이들의 모든 계획에 대해 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며, 모든 범위의 활동을 승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19세기 후기 성도들이 경험한 평화와 폭력”, 복음 주제 관련 글, topics.ChurchofJesusChrist.org)

  • 성도들은 이미 미주리주 잭슨군과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도 그렇게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은 성도들이 미주리 북부에서 반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도록 영향을 주었겠는가?

학생들에게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성도들 제1권』 제29~31장을 읽어 오라고 권유한다. 학생들에게 갈등이 점차 깊어지고 폭력이 심화되자 교회 회원들이 각기 어떠한 방식으로 대처했는지 찾아보라고 한다.